시골집에 닿아서
시골집에 닿는다. 읍내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군내버스가 없어 택시를 부른다. 택시를 부른 김에 읍내 가게에서 귤 한 상자를 장만한다. 작은아이는 벌써 잠들어 아버지 들어오는 모습을 못 본다. 큰아이는 어머니 곁에서 인터넷놀이를 한다. 서울과 인천을 돌며 장만한 큰아이 새 신 한 켤레, 네 식구 밥그릇이랑 국그릇 들을 하나하나 내려놓는다. 선물꾸러미 내놓기 앞서, 부엌을 치우고 방바닥을 쓸고 치운다. 큰아이더러 인터넷놀이 살짝 멈추고 함께 방바닥 치우자고 말한다. 차근차근 장난감을 치우고 갈무리한다. 이제 조금 말끔하다. 옷을 모두 벗는다. 씻는방 바닥에 옷가지를 깔아 놓는다. 도시를 돌며 몸에 낀 먼지를 찬물로 헹구고 머리를 감는다. 시골물로 씻으면서 물 한 모금 입에 머금는다. 차가운 물이 입안에서 따스한 기운으로 바뀐다. 골골거리면서 빨래를 한다. 따스한 기운이 좋구나 싶을 때에 물을 꼴깍 넘긴다. 다시 찬물을 입에 머금고 따스한 기운이 돌 때까지 머금다가 삼킨다. 인터넷놀이를 마친 큰아이가 새 신을 신고는 씻는방으로 와서 기웃거린다. “아버지 뭐 해요? 빨래 해요?” 그럼, 바깥일 보면서 옷과 몸에 들러붙은 먼지를 털고 씻고 헹구어야 하거든. 그래야 너희를 안고 볼을 쓰다듬을 수 있지. 빨래를 마치고 죽죽 짤 때까지 큰아이는 아버지 곁에서 콩콩 뛰면서 노래하듯이 조잘조잘 이야기꽃 피운다. 나는 큰아이가 읊는 말을 하나하나 되새긴다. 빨래를 마친 젖은 옷가지를 왼팔뚝에 걸치고 방으로 들어간다. 큰아이 말 적는 작은 공책을 꺼내어 큰아이가 나한테 들려준 예쁜 말을 모두 옮겨적는다. 이동안 큰아이는 새로운 예쁜 말을 들려주고, 이 말도 작은 공책에 모두 옮겨적는다. “아버지, 빨래 널게요? 내가 도와줄까요?” 고맙구나. 그런데, 아버지가 서울과 인천으로 일하러 이틀 다녀오는 동안, 너희 옷가지 다 빨고 말려서 갠 뒤 책상에 올려놓았는데, 이 옷가지는 옷장으로 안 옮기고 아직 그대로 있네. 아버지가 군내버스 때에 맞춰 부랴부랴 나가느라 미처 옷장으로 못 옮겼는데 네가 좀 옮겨 주었어야지.
큰아이와 함께 옷을 넌다. 서울에서 장만한 그림책 세 권을 꺼내 큰아이한테 내민다. 큰아이는 그림을 보면서 조잘조잘 스스로 이야기를 빚는다. 아직 한글을 못 읽으니 그림으로만 이야기를 엮는데, 아이가 엮는 이야기가 퍽 재미나다. 이러구러 해서 큰아이한테 그림책을 잘 안 읽어 준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해 내며 읽는 이야기가 재미있기에, 먼저 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책에 적힌 글을 깨끗한 한국말로 고쳐서 새롭게 읽어 준다.
큰아이는 아직도 새 신을 발에 꿰고 논다. 얼마나 재미있을까. 얼마나 즐거울까. 얼마나 신나는 하루일까. 4346.1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