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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김별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144
김별아처럼 죽고 싶다면
―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김별아 글
이룸 펴냄, 2001.9.3.
글지기 김별아 님이 쓴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이룸,2001)를 읽습니다. 어느새 새책방에 사라진 이 책을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읽습니다. 한 줄 두 줄 찬찬히 읽습니다. 김별아 님 글 한 꼭지 읽고 책이름을 생각합니다. 김별아 님 글 두 꼭지 읽고 책이름을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한참 읽는 동안, 또 책을 다 읽고 덮은 뒤로도, 오래도록 책이름을 떠올립니다.
톨스토이라는 분은 얼마나 대단한 빛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대단한 빛이기에, 러시아에서 먼 한국땅 글지기까지 이녁 이름을 빌어 책을 한 권 내놓을 만한가 하고 생각합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 땅에서 누군가, “김별아처럼 죽고 싶다”라는 이름을 붙여 책을 쓸까요? 열 해쯤 뒤에, 서른 해쯤 뒤에, 쉰 해나 백 해쯤 뒤에, “김별아처럼 죽고 싶다”뿐 아니라 “권정생처럼 죽고 싶다”라든지 “전우익처럼 죽고 싶다” 같은 이름을 붙여 책을 내놓을 글지기 있을까요?
.. 여성은 동물이 아ㅣㄴ고 가축이 아니다. 어린아이와 남성의 중간자도 아니고 말을 알아듣는 꽃이나 인공지능의 장난감이 아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표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를 낳아 길렀으며, 그와 사랑을 나누었으며, 그와 함께 생을 이겨낸 존재에 대한 애정이다. 그것은 남성 자신에 대한 긍정이기도 하다 … 나는 결국 극기 훈련을 통해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맹수처럼 살아남는 방법을 배운 것뿐이다. 나를 이겨야 한다지만 사실은 결국 나 자신을 강하게 단련하여 남을 이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 (40, 48쪽)
김별아 님은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하고 노래합니다. 이 노래를 가만히 읊습니다. 김별아 님이 쓴 글에 깃든 빛을 누리면서 함께 노래합니다. 이러다가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나는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로맹 롤랑 님이 쓴 톨스토이 평전을 헤아립니다. 로맹 롤랑 님이 쓴 글을 읽으면 톨스토이 님이 스스로 마무리지은 삶자락이 잘 나옵니다. 그래, 그런 죽음을 떠올릴 만할 테지만, 나는 달리 생각합니다. 내 삶이라면, 내 즐겁고 아름다운 삶이라면, 나는 “톨스토이처럼 살고 싶다” 하고 노래하겠어요. 내 이웃과 동무한테도 “아무개처럼 죽고 싶다” 하는 노래가 아닌, “아무개처럼 살고 싶다” 하고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그리고, 아무개처럼 사랑하고 싶다, 아무개처럼 꿈꾸고 싶다, 아무개처럼 춤추고 싶다, 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무엇보다도 “나는 나답게 살고 싶”어요. “나는 나답게 사랑하고 싶”어요. 내가 이웃과 동무한테 선물하고 싶은 책은 “아름답게 살고 싶다”예요. “사랑하며 살고 싶다”예요. “노래하며 살고 싶다”입니다.
.. 나는 남자로 살아 보지 못했기에 그들이 좋은 제자, 좋은 부하, 좋은 후배, 좋은 친구와 동료를 왜, 얼마만큼 성적 대상으로 보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왜 평소에 그 마음을 표현하거나 고백하지 못하는지 알 수 없다. 자신의 매력을 발휘하여 여성을 사로잡는 대신 어쩌다가 상명하복의 관계나 인간적인 친밀감을 이용하여 여성을 강제로 소유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 숱한 의문 중에 가장 풀리지 않는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정말 남성으로서 여성을 갈망하거나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 (85쪽)
글 한 줄에는 삶이 드러납니다. 글 한 줄에는 삶이 묻어납니다. 웃음을 꽃피운 삶과 눈물로 얼룩진 삶이 고스란히 글 한 줄에 스며듭니다. 기쁘게 노래한 빛이 글로 다시 태어나요. 고달프거나 고단했던 지난날이 글로 거듭 태어나요.
어떤 글을 쓸 적에 스스로 즐거운가요. 어떤 글을 써서 이웃한테 선물할 적에 서로 즐거운가요. 어떤 글을 쓰면서 삶꽃 피울 적에 우리 지구별에 따스한 사랑이 샘솟을까요.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생각합니다. 내 글은 나한테 어떤 빛이 되고, 내가 적은 글 한 줄은 내 이웃과 동무한테 어떤 꿈이 될 만한가 하고 생각합니다. 먼저 나 스스로 빛이 되지 못한다면 내 글은 아름답지 못합니다. 글을 쓰면서 내 삶을 스스로 가꿀 수 있을 때에, 이 글을 내 이웃과 동무한테 선물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나부터 맛나게 먹을 만한 밥을 우리 살붙이한테 차려 줍니다. 나부터 기쁘게 먹을 만한 밥을 우리 시골집으로 찾아오는 이웃한테 내놓아요.
사진 한 장 찍을 적에도 가장 고운 빛을 담습니다. 사진 한 장 찍어 살며시 건넬 적에도 가장 고운 빛이 드러난 사진으로 골라서 건네요.
.. 오로지 누군가의 ‘삶’ 그 자체인 삶을 소설을 위해 희생시키고자 했던 나의 치기 어린 시도가 너무도 어리석은 것으로 느껴졌다 … 아이를 통해 나의 결점은 낱낱이 공개되고 있었다. 나의 무지, 나의 이기, 나의 나약함과 철없음, 의존성과 무책임이 날것으로 드러났다. 나는 그제야 둔기로 뒤통수를 얻어맞듯 깨달았다. 나는 다시 태어나 아이와 함께 자라고 있구나!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그를 키우고 있구나 .. (212, 218쪽)
우리 아름답게 살아요. 우리 아름답게 노래해요. 우리 아름답게 어깨동무해요. 즐겁게 죽어도 될 테지만, 죽음보다는 삶을 생각해요. 톨스토이처럼 살고, 김별아처럼 살며, 나답게 살아요. 사랑스레 살고 눈빛 밝히며 살고 노래 부르면서 살고 알콩달콩 이야기빛 누리면서 살아요. 4346.1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