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 글쓰기

 


  가계부를 쓰려고 했지만 이제껏 모두 두 손 들었다. 가계부 쓰기가 힘들어서 두 손을 들었다기보다, 가계부를 쓰는 데에 품과 겨를을 들이지 못했다. 가계부를 꼼꼼히 쓰자면 품과 겨를을 많이 들여야 한다. 섣불리 쓸 수는 없다.


  곰곰이 돌아본다. 가계부를 쓰는 만큼 살림을 알뜰살뜰 여밀 수 있다. 꼼꼼하게 쓰고 차근차근 살피는 만큼, 척척 이것저것 떠올릴 수 있다. 가계부에는 들고 나는 돈만 적지 않는다. 그동안 무엇을 장만했고, 어떤 밥을 차렸는가 하는 그림이 환하게 나온다. 저자마실을 하면서 무엇을 장만했는지 하나하나 읽기만 하더라도, 아하 이날 이렇게 밥을 차렸구나 하고 읽을 수 있다. 이러면서, 저번에는 이렇게 했으니 오늘은 저렇게 할까 하고 생각을 잇는다.


  읍내로 저자마실 나오면서 문득 가계부를 생각한다. 내 삶이 가계부를 쓰기 좀 벅차다면, 다르게 무언가 적자고 생각한다. 글공책을 꺼낸다. 오늘 저자마실을 하며 할 일을 적고, 무엇을 사야 하는가를 적는다. 읍내에서 군내버스를 내려 이 가게 저 가게 들르면서 글공책을 꺼내어 동그라미를 그린다. 하기로 한 일을 마치니 동그라미이다. 아무래도 오늘 못 하겠구나 싶으면 줄을 죽죽 긋는다. 글공책에 적지 않았으나 장만한 무언가 있으면 새로 적어 넣고 동그라미를 그린다.


  그러고 보면, 어릴 적에 어머니는 늘 쪽종이에 이것저것 적어서 심부름을 보냈다. 귀로만 듣고 심부름을 나서면 꼭 한 가지를 빠뜨리곤 한다. 쪽종이를 들여다보며 하나하나 고르면 한결 빠르게 고를 뿐 아니라 빠뜨리는 일이 없다. 어머니도 쪽종이에 안 적고 저자마실을 나오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차, 그것 안 샀네.’ 하면서 무릎을 친다. 버스를 타고 저자마실을 나왔으면 돌아가서 사지 못하지만, 동네 가게에서 빠뜨린 무언가 있으면 집앞까지 왔다가 머리카락 휘날리며 달려가서 사온다.


  그랬구나. 어릴 적에 어머니하고 그렇게 저자마실을 다녔구나. 우리 아이들도 한 살 두 살 더 먹으면, 아버지 곁에서 할머니하고 아버지가 어린 나날 어떻게 저자마실 다녔는지 살며시 그릴 수 있겠지. 4346.1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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