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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1
네무 요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8월
평점 :


만화책 즐겨읽기 288
뭐가 즐거울까
― 일단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1
네무 요코 글·그림
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3.9.15.
시골에서 살아가는 우리 식구한테 이웃들이 곧잘 묻습니다. 시골에 무엇 볼 것 할 것 있다고 이렇게 지내느냐고. 그러면 언제나 한 마디 말만 들려줍니다. “즐겁거든요.” 무엇이 즐겁느냐 되물으면 “무엇이든 다.” 하고 덧붙입니다. 허허 하고 너털웃음 지으면 두 가지 빼고 다 좋다고 덧붙입니다. “농약 퍼붓는 모습, 쓰레기 아무 데에서나 태우는 모습.” 이 두 가지만 없으면 시골살이가 아주 아름답다고 이야기합니다.
시골로 오기 앞서 인천 골목동네에서 살던 때에도 우리 식구한테 이웃들이 곧잘 물었습니다. 왜 아파트에 안 살고 골목집에서 사느냐고. 그러면 늘 한 마디 말만 들려줍니다. “즐거워요. 재미있고요.” 무엇이 즐겁고 재미있느냐 되물으면, 한 걸음만 나가면 골목이고, 두 걸음만 나가면 자동차 못 다니는 골목이며, 세 걸음만 나가면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함께 누리는 골목꽃과 골목나무가 흐드러진 데가 바로 이곳, 아파트 아닌 골목동네라고 이야기합니다. 호호 하고 웃으면 두 가지 빼고 다 좋다고 덧붙입니다. “아무 데나 선 자동차, 갑자기 미친 듯이 지나가는 오토바이.” 이 두 가지만 없으면 골목살이가 아주 사랑스럽다고 이야기합니다.
- “여고생은 곧 죽잖아.” “알아듣기 쉽게 말해.” “어? 어라? 못 알아들었어? 으음. 여고생이란 건, 금방 죽잖아.” “…….” “졸업하면 여고생이 아니게 되니까, 그건 곧 여고생으로서의 내가 죽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어?” (20∼21쪽)
- “그래, ‘현모양처’란 건 장난으로 적은 거냐? 그런 거면 정말 센스가 없구나. 아니면 진심인가?” (25쪽)

아이들은 나무막대기 하나로도 즐겁게 놉니다. 아이들은 나무작대기 하나로도 하늘을 납니다. 아이들은 빈손이나 맨손이어도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려요. 저희 빈손에 사탕이 있고 얼음이 있으며 떡이나 포도나 밥이 있다고 얘기해요.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문득문득 손바닥을 곱게 펼쳐 들고 다가와서 말합니다. “자, 여기 맛있는 밥이 있어요. 맛있게 드셔요.” 그러면, “네, 잘 먹겠습니다!” 하고 말하며 냠냠 먹습니다. 아이들은 히히 웃으며 뒤돌아섭니다.
소꿉놀이란 소꿉이 있어야 하는 놀이가 아닙니다. 소꿉으로 삼을 무언가 잔뜩 늘어놓아야 소꿉놀이를 하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살림살이 하나조차 없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소꿉놀이를 해요. 한 사람은 어머니 되고 한 사람은 아버지 될 수 있어요. 학교놀이를 할 적에 번듯한 건물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학교 교사 노릇 맡는 아이가 교사자격증 있어야 하지 않아요. 이런 놀이를 누리건 저런 놀이를 즐기건, 늘 마음으로 합니다. 마음으로 그리며 누려요. 마음으로 웃으며 즐겨요.
마음이 있기에 놀이가 돼요. 마음으로 놀이를 새로 빚어요. 마음을 모아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즐겁게 뛰고 달리고 구르고 날지요.
마음이 있어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면, 이 아이들은 마음으로 일을 합니다.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살찌우는 일을 해요. 돈을 바라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가꾸는 일을 찾아요.
마음이 없는 채 논다면, 아니 마음이 없는 채 놀 수 없어요. 마음이 없는 채 끌려다니며 레크리에이션이나 체험학습이나 무슨무슨 캠프에 간대서 놀이가 되지요. 마음이 없이 이곳저곳 다닌들 모두 힘들 뿐입니다. 마음을 열어 어디에서나 놀 수 있으면 됩니다. 마음을 모아 다 같이 어깨동무할 수 있으면 됩니다.


- “가사 동아리에 남학생이라니 이상하지 않아?” “가, 가사 동아리가 뭐 어때서?” “천만에! 남자는 뭐니뭐니 해도 수영부지!” “카네타카는 손재주가 좋고 뭐든 잘해. 가사 동아리의 에이스란 말야. 동아리 인기남이라고!” (44쪽)
- “다들 강해지고 싶은 마음은 있는 거니?” “아, 죄송해요. 지금 바로 스트레칭 시작할게요.” “아, 아냐. 아냐.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그래. 다들 농구에 대한 마음가짐이 어떤지.” (77쪽)
우리 삶터 둘레에 꽃이 흐드러진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꽃을 느낍니다. 마음으로 바라볼 줄 모른다면, 우리 눈길이 닿는 자리가 꽃밭이라 하더라도 꽃밭인 줄 알아채지 못해요. 자가용을 몰든 버스나 기차를 타든, 꽃잔치 이루어진 가을길 여름길 봄길 지나가면서 마음을 열어야 비로소 꽃내음 맡고 꽃빛을 바라봅니다.
바쁜 사람 눈에는 아무것도 안 들어와요. 바쁜 나머지 꽃내음을 못 맡아요. 바쁘니 꽃빛을 들여다볼 겨를이 없어요.
힘들 적에도 그래요. 힘든 사람한테 꽃이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가난에 쪼들리는 사람한테도, 돈은 많지만 구두쇠로 지내는 사람한테도, 꽃이든 풀이든 나무이든 들여다볼 틈이 없어요.
살림이 넉넉할 때에도 즐거울 텐데, 무엇보다 마음이 넉넉해야 즐겁습니다. 마음이 넉넉하지 않으면 살림이 넉넉하거나 말거나 아무것도 아니에요. 마음이 넉넉하지 않으면, 대학졸업장이 있건 은행계좌 넉넉하건 서울 한복판에 아파트를 거머쥐었건, 무슨 보람이나 웃음이나 설렘이나 기쁨이 있겠어요. 마음이 넉넉할 때에, 스스로 삶을 즐겨요. 마음을 넉넉하게 두면서, 스스로 삶을 지어요. 마음을 넉넉하게 가꾸고 돌보고 아끼고 북돋우면서 웃음꽃과 이야기꽃 피울 수 있어요.

- ‘키스 같은 걸 하면 세상이 달라질 거라 생각했다. 그랬는데.’ (98쪽)
- ‘미츠요의 키스는 미츠요의 세계를 바꾸었니? 그래?’ (113쪽)
네무 요코 님 만화책 《일단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대원씨아이,2013) 첫째 권을 읽습니다. 하느님들이 모여 놀다가 ‘지구 운명’을 ‘멸망’으로 찍고 말아, 그만 ‘지구 멸망’으로 나아가는데, ‘애써 예쁘고 멋지게 만든 이 지구를 멸망하게 둘 수 없’어서 여러 하느님이 땅으로 내려와 ‘지구가 멸망하지 않을 길’을 보여주려고 한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여느 동네 여느 고등학교 여느 여자농구부 아이들은 시큰둥합니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나, 제가 무슨 하느님이라고 깝죽을 떠는가, 뭔 썰렁한 우스갯소리를 하나, 하고 여겨요.
그런데, 이 아이들, 여느 동네 여느 고등학교 여느 여자농구부에 찾아온 이가 참말 하느님인 줄 천천히 알아챕니다. 그러고는 저희 삶이, 저희 꿈이, 저희 사랑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가를 깨닫습니다. 거의 아무 뜻이나 생각 없이 흘려보내던 하루하루가 이제부터 예전처럼 흐를 수 없습니다.
- ‘저 애, 뭐가 저렇게 즐거운 걸까?’ (145쪽)
- “내 말 명심해.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영국은커녕 지구 자체가 없어지고 말아. 그 애들이 진심이 되게 하려면 약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해.” (180쪽)
오늘 죽으면 꽤 서운할까요. 모레 죽으면 덜 서운할까요. 서른 해를 살면 안 서운할까요. 스물아홉 해 살 수 있으면 조금 서운할까요. 스물일곱 해 산다면, 스물여섯 해 산다면, …… 열다섯 해 산다면, 열네 해 산다면, 우리 삶은 어떠할까요.
어떤 빛을 누리는 삶인가요. 어떤 빛으로 가꾸는 하루인가요. 어떤 꿈으로 즐기는 삶인가요. 어떤 꿈으로 밝히면서 이루는 하루인가요.
우리 삶에서 무엇이 즐거운지는 누구나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남이 챙겨 줄 수 없는 삶이고, 즐거움이며, 사랑입니다. 남이 내 몫까지 겪거나 누려 주지 않는 삶이며, 즐거움이고, 사랑입니다. 스스로 짓고 일구는 삶입니다. 스스로 가꾸고 밝히는 삶입니다. 4346.11.2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