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중나무

 


  우리 집 돌울타리 건너편 밭을 일구는 면소재지 사람이 가끔 돌울타리를 타고 넘어온다. 볼일이 있으면 대문으로 들어올 노릇이지, 자꾸 돌울타리를 밟고 넘어온다. 이러면서 돌울타리가 자꾸 무너지는데, 꽃밭이자 텃밭으로 삼는 곳에서 자라는 푸성귀까지 밟힌다. 지난 늦여름에는 식구들 즐겁게 먹는 까마중을 밟아 넘어뜨렸다. 머리끝까지 뿔이 났지만 넘어진 까마중이 너무 애처롭다. 어쩌나 어쩌나 생각하다가 까마중줄기 살살 쓰다듬으면서 괜찮아 괜찮아 안 죽어 씩씩하게 잘 살 수 있어 하고 얘기해 주었다. 그 뒤 까마중은 죽지 않았다. 넘어진 채 새 줄기를 자꾸자꾸 낸다. 넘어진 뒤로도 야무지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찬바람 불며 이제 찬찬히 시들겠지 싶었으나, 이 까마중은 시들지 않는다. 새 잎이 돋고 새 줄기가 더 뻗으며 하얀 꽃망울 더욱 터뜨린다. 십이월이 코앞인 요즈막 까마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생각한다. 넘어진 이 까마중은 까마중‘풀’이라기보다 까마중‘나무’라 할 만하다고 본다. 나무와 같이 꽃을 수두룩하게 달고, 나무처럼 열매 또한 수두룩하게 맺는다. 그래, 너는 우리 집 까마중나무야. 푸른 바람과 숨결과 노래를 들려주는 우리 집 어여쁜 마당나무야. 4346.11.2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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