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씨앗 꽃대

 


  우리가 먹는 쌀은 볍씨이다. 우리들은 늘 볍씨를 먹는다. 볍씨에서 껍질인 겨를 벗기면 쌀이 되고, 쌀을 물에 불려 끓이면 밥이 된다. 오늘날 사람들은 흙을 만지지 않으니, 겨를 벗기고 씨눈까지 깎은 새하얀 쌀만 보고, 아이들은 아예 쌀조차 만질 일 없이 하얗게 고슬고슬 김이 나는 밥만 보기 일쑤이다.

 

  쌀을 심으면 싹이 안 난다. 쌀도 씨앗이지만, 씨눈을 깎은 쌀알은 씨앗 구실을 못한다. 더구나 껍질인 겨를 벗겼으니 싹이 틀 수도 없다. 볍씨란 씨눈뿐 아니라 겨까지 함께 있는 씨앗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밥을 먹지만, 정작 씨앗이 될 만한 열매가 아닌 씨앗이 되지 못하는 열매만 먹는 노릇이라 할 만하다.


  쌀도 밥도 벼도 볍씨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오늘날 사람들인 터라, 쌀이 될 벼가 어떻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줄 모른다. 쌀이 되는 벼알이 다닥다닥 수북하게 맺히는 줄기는 하나이다. 가느다란 줄기 하나에 벼알이 수북하게 맺히기에 줄기는 고개를 숙인다. 너무 무거우니까. 다른 웬만한 줄기는 씨앗인 열매가 맺혀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찬찬히 따지면, 씨알을 먹으려는 풀은 사람들 손으로 고치고 다스리면서 씨알이 더 굵도록 했고, 잎사귀를 먹으려는 풀은 꽃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잎사귀만 잘 퍼지도록 고치고 다스렸지 싶다.


  벼알을 벤 뒤에는 볏줄기가 꼿꼿하게 선다. 언제 그랬느냐는듯이 참말 꼿꼿하다. 예부터 사람들은 이 볏줄기, 곧 볏짚으로 새끼를 꼬고 신을 삼고 지붕을 이으며 바구니와 멍석과 섬을 짰다.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알뜰히 건사했다.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어느 것에도 마음을 안 두느라, 벼껍질인 겨도 벼꽃대인 볏짚도 아무렇게나 팽개친다. 소한테 먹이면 그나마 낫지만, 거의 모든 논이 농약과 비료로 흠뻑 젖으니, 소가 겨나 볏짚을 먹더라도 농약과 비료를 먹는 셈이다.


  늦가을 부추꽃대를 바라본다. 씨주머니 터지며 씨앗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안 떨어진 씨앗이 제법 많다. 꽃대도 씨주머니도 바싹 마르고 누렇게 시들었는데 안 꺾인다. 드세거나 모진 바람이 불어도 부추씨앗 꽃대는 쓰러지지 않는다.


  날마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생각한다. 저 가냘픈 꽃대는 씨앗을 모두 떨굴 때까지 꼿꼿하게 버틴다. 물기 하나 없고 누렇게 시들었지만 씨앗이 모두 흙으로 떨어질 때까지 씩씩하게 선다. 어버이 마음일까. 어머니 넋일까. 아버지 꿈일까. 누렇게 시든 부추꽃대 곁에 새로운 부추싹 돋는다. 가을볕 여러모로 따스한 남녘땅에서는 아마 지난해 흙땅에 드리웠음직한 씨앗에서 새 부추싹 돋는다. 얘들아, 너희는 참 놀랍구나. 너희는 참으로 야무지구나. 너희 잎사귀를 뜯어먹는 우리들도 너희한테서 놀랍고 야무진 기운 얻을 테지. 너희를 곁에 두고 언제나 지켜보는 우리들도 너희한테서 아름답고 싱그러운 사랑 얻을 테지. 4346.11.2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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