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을 읽으면서
밤에 잠들며 맞이하는 꿈이란 무엇인가 하고 며칠 앞서부터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오늘 꾼 꿈을 새삼스레 돌아보면서 더 생각해 본다. 오늘 꿈에서 나는 어느 전쟁터에서 전쟁 손길이 안 닿는 곳으로 떠나려 하는 어느 다섯 식구 집안에서 막내로 나왔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나, 아니 나쁜 일을 안 하고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이나, 평화로운 나라에 전쟁을 몰고 온 다른 나라에서는 ‘평화를 외치고 전쟁을 꾸짖는 내 어버이’ 같은 사람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갈기갈기 찢어죽인다. 게다가 우리 식구들 미처 집을 떠나지 못했는데 다른 나라 군인들이 우리 마을로 들어오고 말았다.
내 꿈은 여기에서 끝났다. 작은아이가 쉬 마렵다며 끙끙대는 소리에 잠을 깨어 쉬를 누인다. 다시 누워 보았으나 이 꿈이 이어지지 않는다. 이 꿈은 어디에서 왔을까. 내가 앞으로 맞이할 삶이 나타난 꿈인가, 아니면 나와 같은 삶을 잇는 지구별 다른 어느 곳에서 곧 벌어지거나 이제 막 벌어지는 모습인가, 아니면 내가 이 나라에 태어나 살기 앞서 다른 어느 나라에서 다른 목숨으로 살다가 겪은 모습인가.
어느 모로 헤아린다면, 나는 ‘꿈속에 나온 내 어버이와 형과 누나’와 함께 다른 나라 군인한테 붙잡혀 나란히 죽은 뒤에 이 나라에 다시 태어났는지 모른다. 이렇게 죽고 나서 다른 어느 곳에서 다른 삶으로 태어났다가, 이 나라에서 새로 태어났을 수 있다. 이리하여 내 꿈에 내 앞삶이 나타나고 내 뒷삶도 나타날 수 있으리라 느낀다.
잠이 깰 무렵, “희망이 없으니 전쟁을 생각한다”라는 말이 내 마음속으로 파고들었다. ‘꿈에 나온 우리 다섯 식구를 붙잡아 죽인 군인’들은 누가 시키는 대로 우리 다섯 식구를 붙잡아 죽인다고 말했다. 어디쯤이었을까. 폴란드쯤이었을까. 또는 칠레쯤이었을까. 내가 꿈속에서 죽은 그 나라 그곳은.
꿈을 깬 뒤, 꿈속에서 나한테 찾아온 “희망이 없으니 전쟁을 생각한다”라는 말을 더 돌아본다. 전쟁을 생각하더라도 나아질 일이 없다. 누군가를 잡아서 죽인다 한들 어둠이 더 커지지 않고, 빛을 잠재우지 못한다. 그러니까, 전쟁을 일으킨대서 나아지는 삶이란 없다. 스스로 희망을 싹둑 잘라서 버리려 하더라도 희망은 없어지지 않는다. ‘꿈속에서 함께 죽은 우리 다섯 식구’는 가슴에 빛을 안고 조용히 그곳을 떠났다. 나는 이곳으로 왔다면, 다른 네 식구는 어디로 갔을까. 저마다 어느 곳으로 가서 어떤 새 삶, 새 빛, 새 이야기를 일굴까. ‘내 어머니와 아버지와 형과 누나’로 함께 살던 꿈속 식구들은 오늘 이곳에서 내 동무로 함께 태어났을 수 있고, 내 동생으로, 어쩌면 내 아이로 함께 태어나 살아갈 수 있다. 모르는 일이리라. ‘꿈속에서 우리 식구를 죽인 군인들’도 곧 전쟁터에서 죽고 말아, 내 동무나 이웃으로, 어쩌면 내 아이로 함께 테어나 살아갈 수 있다. 이런 일은 하나도 모른다 할 만하다.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이한 군인과 정치꾼은 무언가 깨달을까. 죽으면서 몸을 잃고 넋이 빠져나가는 그즈음 무언가 알아차릴까. 전쟁으로는 오직 전쟁만 찾아올 뿐이며, 평화로는 늘 평화를 누리는 줄 느낄까.
어둠을 읽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어둠을 맞이한다. 빛을 읽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빛을 마주한다. 살아가고 싶은 대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사랑을 하고 싶으면 삶과 넋과 말 모두 사랑이요, 사랑을 하고 싶지 않다면 삶과 넋과 말 모두 사랑하고 동떨어진다. 4346.11.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