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해만에 읽는 책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 책 《사라진 나라》를 열 해만에 읽는다. 이 책을 처음 장만한 열 해 앞서는 두근두근 설렜다. 이야 이런 책을 쓰셨네, 이런 책이 한국말로 나오는구나,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쪽 읽다가 덮었다. 어쩐지 내 ‘오늘 넋’으로는 이 이야기를 가슴으로 포옥 안기 어렵겠다고 느꼈다. 이리하여 열 해 동안 묵힌다. 지난 열 해 동안 책상맡에 늘 이 책을 두면서 ‘이야기 읽어낼 만한 넋’으로 거듭날 때까지 기다린다.


  시골집에서 아이들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놀리는 틈틈이 몇 쪽씩 읽는다. 밥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몇 줄 읽는다. 볶음을 하다가 두어 줄 읽는다. 국을 끓이고 무와 오이를 썬 뒤 손에 물기가 가시면 서너 줄 읽는다. 문득 깨닫는다. 린드그렌 님이 《사라진 나라》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오롯이 ‘시골빛’이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며 누린 아름다운 시골빛이 이녁 가슴으로 촉촉히 젖어들었다는 이야기가 그득 흐른다.


  조금씩 읽고 읽었더니 어느새 끝이 보인다. 몇 줄씩 읽고 읽다가 드디어 막바지에 이른다. 책을 새삼스레 덮고 한참 생각에 잠긴다. 책이름을 왜 “사라진 나라”로 붙였을까. 스웨덴에서 처음 낸 책에 붙은 이름이었을까, 한국말로 옮기며 붙은 이름이었을까. 스웨덴에서도 린드그렌 님이 어릴 적 누리던 아름다운 시골빛은 그예 사라지고 없는 모습이 되었을까. 지구별은 이제 온통 문명과 물질이 넘쳐흐르면서 시골빛은 몽땅 쫓겨나고 말았을까.


  사라진 나라, 사라진 숲, 사라진 별, 사라진 해, 사라진 바람, 사라진 풀, 사라진 나무, 사라진 사랑, 사라진 사람, …… 하나하나 되씹는다. 윤동주 님이 읊은 〈별 헤는 밤〉에 나오는 이름들을 곰곰이 되짚는다. 사라진 것만큼 새로운 것이 태어나는 오늘날이라 할 텐데, 오늘날 이 땅 이 나라에서 넘치는 것들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얼마나 사랑스러운 것들이 곳곳에 있을까. 얼마나 즐거운 노래가 이 나라에 흐를까. 4346.11.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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