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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좋아
노에미 비야무사 그림, 하비에르 소브리노 글, 배상희 옮김 / 행복한아이들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11
좋은 마음으로 함께 놀자
― 난 좋아
노에미 비야무사 그림
하비에르 소브리노 글
행복한아이들 펴냄, 2005.5.19.
여름날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으며 시원합니다. 가방이 젖고 옷이 옴팡 젖지만, 바로 이렇게 온몸을 적시기에 시원하면서 즐겁습니다. 소나기 지나가면 언제 그랬느냐는듯이 활짝 갭니다. 구름이 사라집니다. 파랗게 하늘이 빛납니다. 우산 없이 놀다가 비를 쫄딱 맞고서 머리카락을 텁니다. 다시 하하 웃으며 길을 걷고, 젖은 몸과 옷이 마를 때까지 동무들과 뛰어놉니다.
가을밤 쏟아지는 별빛을 올려다보며 눈을 맑게 틔웁니다. 이처럼 많은 별들처럼 지구도 우주에서 빛나겠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기쁩니다. 저 먼 별나라에서는 지구를 어떤 별자리에 넣어 이야기할까요. 저 멀디먼 별누리에서는 지구를 어떤 별빛으로 맞아들일까요.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풀과 나무와 내와 바다와 마을이 한데 어우러진 빛이 되어 우주를 밝히겠지요.
봄날 찾아오는 풀바람이 싱그러워 고맙습니다. 추위가 한풀 꺾이며 온갖 봄풀이 돋고 봄꽃이 핍니다. 겨우내 그립던 푸른 잎사귀를 톡톡 뜯어서 먹습니다. 냉이와 달래를 캐고 씀바귀와 고들빼기를 새로 뜯습니다. 유채도 민들레도 갈퀴덩굴도 맛난 봄나물 됩니다. 딸기잎 돋는 모습을 보며 늦봄과 첫여름 딸기를 그립니다. 딸기알 맺힐 무렵 피어날 찔레꽃을 그립니다. 반짝반짝 아리따운 봄은 모든 목숨을 깨우는 아침해와 같습니다.
겨울날 내리는 눈송이는 차가우면서도 해맑아 반갑습니다. 어른이 된 나도 눈놀이를 하고, 아직 어린 아이들도 눈놀이를 합니다. 입을 헤 벌려 눈을 받아먹습니다. 눈이 쌓이면 뭉칩니다. 눈송이 내려앉은 동백나무와 후박나무를 바라봅니다. 한겨울에 따순 볕 며칠 이어지면 일찌감치 봉오리 터뜨리는 동백꽃에 살포시 앉은 눈을 호호 붑니다. 춥지? 춥지만 너는 이 추위를 타고 깨어나지? 추위가 너를 부르고, 추위가 너를 한결 야무지며 튼튼하게 돌보지?
.. 난 사는 게 좋아. 얼굴엔 시원한 공기와 등 뒤엔 네 웃음소리와 함께 .. (2쪽)
밥을 끓입니다. 밥내음 솔솔 집안에 퍼집니다. 국을 끓입니다. 국내음 살살 마당으로 번집니다. 밥과 국을 끓이는 동안 아이들은 ‘아하, 이제 곧 밥이 다 되는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한결 신나게 놀고, 언제쯤 ‘자, 배고픈 사람은 이리 와서 밥 먹자!’ 하고 부를까 하고 기다립니다.
빨래를 합니다. 충청북도 멧골집에서 지낼 적에는 시월 끝무렵부터 손이 매우 시려서 따순물을 써야 했는데, 전라남도 시골집에서 지내는 요즈음은 십일월 한복판이지만 시린 손으로도 씩씩하게 빨래를 비비고 헹굽니다. 다만, 새벽이나 밤에는 빨래를 못 합니다. 새벽과 밤에는 물이 너무 차갑습니다. 해가 꼭대기에 오른 한낮에 비로소 빨래를 척척 비비고 헹굽니다.
다 마친 빨래를 들고 마당으로 내려서면서 해를 올려다봅니다. 나도 웃고 해도 웃습니다. 늦가을 되어 시든 풀도 웃고, 가을바람 선들선들 웃습니다. 늦가을에는 봄이나 여름처럼 빨래가 잘 마르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해가 하늘에 걸린 동안 말리고 집안으로 들이면, 밤새 보송보송 잘 말라요. 곧 겨울이 닥치면, 겨울에는 아주 짤막히 밖에 널었다가 다시 들여요. 때로는 아예 밖에 널지 못해요. 두꺼운 겉옷이나 이불을 빨 적에만 바깥에 널지만, 너무 추운 날에는 옷이 꽁꽁 얼어붙습니다.
겨우내 얼어붙는 빨래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이렇게 추운 겨울에도 동백나무와 후박나무는 짙푸른 잎사귀를 달아요. 겨울에도 푸른 빛을 나누어 줍니다. 너희 참 대견하구나, 아주 대단하구나 하고 생각하며 두꺼운 줄기를 어루만집니다. 너희는 이 겨울 이렇게 씩씩하게 나니, 새봄에 더 싱그러우며 푸른 빛을 나누어 주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 난 맡는 게 좋아. 장미향 떠도는 공기와 비 온 뒤 촉촉한 흙 냄새를 .. (6쪽)
아침밥 맛나게 먹은 우리 집 두 아이가 마당에서 놉니다. 찬바람 불며 딱딱한 흙바닥을 호미와 괭이로 콕콕 쪼면서 놉니다. 아이들이 흙연장 갖고 놀기에 부러 처마 밑 잘 보이는 자리에 호미와 괭이를 놓습니다. 언제라도 들여다보고, 언제라도 손에 쥐어 갖고 놀도록 합니다.
내 어버이가 모두 시골 흙일꾼이었으면 나도 흙일을 하고 놀면서 자랐겠지요. 내 어버이가 늘 시골 흙밭에서 흙빛 되어 일하는 사람이었으면, 나도 어린 날부터 흙내음 맡고 흙바람 쐬면서 컸겠지요.
도시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모두 흙을 먹습니다. 흙에서 난 것을 먹습니다. 흙에서 난 것으로 지은 옷을 입습니다. 흙에서 자란 것으로 집을 지어 살아갑니다. 흙이 있어야 마을이 있고, 흙이 있어야 사람이 있습니다. 흙이 있어야 숲이 있으며, 흙이 있어야 이 지구별이 있어요.
아이들은 흙을 갖고 놀면서 흙기운을 받아먹어요. 어른들은 흙을 갖고 일하면서 흙숨을 쉬어요. 흙하고 동떨어지거나 흙하고 멀어지거나 흙을 잊을 때에는, 삶하고 동떨어지거나 멀어집니다. 흙하고 사귀지 않거나 흙을 못 배우거나 흙을 안 사랑할 적에는, 흙을 잊다가는 삶을 잊고 맙니다.
.. 난 심는 게 좋아. 여기엔 꽃 한 송이, 저기엔 나무 한 그루, 아무데나 .. (20쪽)
노에미 비야무사 님 그림과 하비에르 소브리노 님 글이 어우러진 《난 좋아》(행복한아이들,2005)라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좋아 좋아 노래를 하는 그림책입니다. 어머니 품이 좋고, 동무들과 노는 하루가 좋습니다. 무엇보다, 바람이 좋고 하늘이 좋으며 나무가 좋아요.
조곤조곤 좋은 삶 노래하는 그림책이로구나 싶습니다. 그래요, 좋아요. 좋은 마음으로 함께 놀기에 즐거워요. 좋은 마음으로 함께 일하기에 아름다워요. 좋은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기에 사랑스러워요. 삶은 늘 좋은 마음에서 자랍니다. 사랑은 늘 좋은 생각에서 싱그럽습니다. 이야기 한 자락은 늘 좋은 눈빛에서 태어납니다. 4346.11.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