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한 줄, 재미나게 읽는 책

 


  사진책은 누가 읽는 책일까 생각해 봅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 읽는 사진책이라 할 테지요. 만화책은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읽을 테고, 시집은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읽을 테며, 소설책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읽을 테지요. 그런데, 사진을 좋아한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즐겁게 사진책을 장만해서 읽거나 나누는 사람이 뜻밖에 몹시 적습니다. 사진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정작 사진기를 새로 갖추거나 더 낫다 하는 장비로 옮기는 데에 사로잡힐 뿐, 사진책을 알뜰살뜰 헤아리면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좀처럼 늘지 못해요.


  시를 좋아하는 분들은 시읽기뿐 아니라 시쓰기도 해 봅니다. 소설읽기를 좋아하는 분들은 소설읽기를 하는 만큼 소설쓰기까지 나아가기는 어렵다 할 테지만, 글쓰기는 즐겁게 하곤 합니다. 그러니까, 사진을 좋아한다는 분은 여러 갈래로 나눌 만해요. 첫째, 사진기를 좋아하는 사람, 둘째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사람, 셋째 사진에 찍히기 좋아하는 사람, 넷째 사진책을 좋아하는 사람, 다섯째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 얼추 이렇게 나누어 봅니다. 이 가운데 넷째와 다섯째에 드는 사람이 가장 적지 싶어요. 그래서 사진책을 즐겁게 장만해서 읽거나 나누는 손길이 얕구나 싶습니다.


  2012년 12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나온 사진책 가운데 내 마음을 사로잡은 사진책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어느 사진책이라고 안 아름답지 않으며, 어느 사진책이라고 내 마음으로 안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사진책이든 재미난 삶을 보여줍니다. 어느 사진작가이든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느 사진이든 맑고 밝은 빛과 그늘을 보여줍니다.


  몽골에서 마주한 독수리사냥 이야기를 엮은 이장환 님 《독수리사냥》(삼인,2013)을 읽으며 눈과 마음을 탁 틀 수 있었습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일흔 고개를 넘으며 들려준 사진 이야기 《천재 아라키의 애정사진》(포토넷,2013)은 애틋한 사랑노래로 읽었습니다. 김민호 님이 차분한 빛으로 그린 《동백꽃 아프리카》(안목,2013)는 따사로운 볕살과 같았습니다. 호시노 미치오 님 사진과 삶을 어린이 눈높이로 엮어 아이들하고 함께 읽을 만한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이야기》(논장,2013)는 아이들 가슴을 부풀게 할 만하리라 느낍니다. 오오타 야스스케 님이 내놓은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책공장더불어,2013)과 같은 책을 읽으며 삶을 이루는 바탕과 우리 이웃을 새삼스레 돌아보았어요. 그레그 마리노비치·주앙 실바 두 사람이 쓴 《뱅뱅클럽》(월간사진,2013)은 인종갈등과 전쟁으로 얼룩진 삶터에서 사랑을 지키며 사진을 찍는 고단함과 보람을 알려줍니다. 탈북청소년과 이주노동자와 고려인에 이어 재일조선인과 어깨동무한 김지연 님이 선보인 《일본의 조선학교》(눈빛,2013)를 보며 나라이름이란 대수롭지 않고, 오직 마음속 빛을 볼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안에서 전주로 사진터를 옮긴 김지연 님이 지난 삶 갈무리한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눈빛,2013)은 우리한테 보배는 늘 곁에 있다고 보여줍니다.


  손승현 님 《밝은 그늘》(사월의눈,2013)과 강영희 님 《배다리 사진 이야기, 창영동 사는 이야기》(다인아트,2012)와 박진영 님 《Way of photography》(atelier Hermaes,2012)는 여느 책방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이 책들은 출판사에 연락하거나 특정 책방을 찾아가야 만날 수 있습니다. 손승현 님 사진에서는 빛을, 강영희 님 사진에서는 넋을, 박진영 님 사진에서는 숨을 찬찬히 느낍니다. 빛으로 삶을 읽고, 넋으로 삶을 마주하며, 숨으로 삶을 헤아립니다.


  올해에 비로소 알아보고 즐긴 사진책들을 하나씩 떠올립니다. 이 사진책들은 그동안 얼마나 사랑받았을까 궁금합니다. 인병선 님 《짚문화》(대원사,1989)는 삶과 밥과 꿈이 어우러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기식 님 《잉카의 웃음, 잉카의 눈물》(작가,2005)은 잉카 문명을 구경꾼이나 관광객이나 방관자 아닌 ‘이웃’으로서 만나는 이야기를 펼칩니다. 아베 사토루 님 《도시락의 시간》(인디고,2012)은 바로 우리 삶이 사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유진 스미스 님 사진책 《W. William Eugene Smith》(la Fabrica, 2011)와 《Minamata》(Holt, Rinehart & Winston,1972)를 드디어 올해 장만해서 읽습니다. 미국으로 배움길 다녀온 옆지기가 들고 온 유진 스미스 님 사진빛을 바라보며 참 따스하다고 느꼈어요. 유리 꾸이진 님은 《Kazakstan nuclear tragedy》(반핵 생물학 협회 폰드,1997로 핵무기와 핵발전소 문제를 낱낱이 밝힙니다. 시마 유키히코 님은 《無花果の木の下で》(美術出版社,1998)에서 바람과 같이 흐르는 삶과 사랑을 살며시 붙잡는 손길을 보여줍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빛을 느껴 다 다른 사진을 찍습니다. 이 다 다른 사진은 다 다른 출판사에서 다 다른 손길로 어루만져 다 다른 사진책으로 내놓습니다. 다 다른 이야기를 다 다른 사진책에서 읽으며 재미납니다. 나도 내 삶을 내 깜냥껏 찍고 엮어 내놓으면 이 재미난 사진책들 사이에서 새로운 이야기 하나 들려줄 수 있겠지요. 재미난 삶에서 재미난 사진 태어나고, 재미난 웃음 나누려는 손길에서 재미난 이야기 샘솟습니다. 4346.11.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여느 책방에서 만날 수 있는 사진책) **
이장환 님 《독수리사냥》(삼인,2013)
아라키 노부요시 《천재 아라키의 애정사진》(포토넷,2013)
김민호 《동백꽃 아프리카》(안목,2013)
호시노 미치오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이야기》(논장,2013)
오오타 야스스케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책공장더불어,2013)
그레그 마리노비치·주앙 실바 《뱅뱅클럽》(월간사진,2013)
김지연 《일본의 조선학교》(눈빛,2013)
김지연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눈빛,2013)


** (따로 출판사에 연락하거나 특정 책방에서 만날 수 있는 사진책) **
손승현 《밝은 그늘》(사월의눈,2013)
강영희 《배다리 사진 이야기, 창영동 사는 이야기》(다인아트,2012)
박진영 《Way of photography》(atelier Hermaes,2012)


** (올해 내가 새로 알아보며 좋아한 사진책) **
인병선 《짚문화》(대원사,1989)
이기식 《잉카의 웃음, 잉카의 눈물》(작가,2005)
아베 사토루 《도시락의 시간》(인디고,2012)
유진 스미스 《W. William Eugene Smith》(la Fabrica, 2011)
유진 스미스 《Minamata》(Holt, Rinehart & Winston,1972)
유리 꾸이진 《Kazakstan nuclear tragedy》(반핵 생물학 협회 폰드,1997)
시마 유키히코 《無花果の木の下で》(美術出版社,199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