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혀 읽는 만화책
여러 해 묵힌 만화책 가운데 하나를 꺼내어 어젯밤 읽는다. 다 읽고 덮으면서 생각한다. 나는 왜 이 만화책을 여러 해 묵힌 채 비닐도 안 뜯었을까. 그런데, 여러 해 묵히고 안 읽은 만화책 바로 옆에, 똑같이 여러 해 묵히고 아직 비닐조차 안 뜯은 만화책이 다섯 권 더 있다.
읽자면 아주 빨리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만화책들은 즐겁게 읽고 나서 즐겁게 느낌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앞서 읽은 다른 만화책들을 놓고 느낌글을 다 쓸 때까지 안 읽기로 다짐했는데, 이러다 보니 이 만화책들은 그만 여러 해를 묵혔다.
곰곰이 생각하면, 만화책만 묵히지 않는다. 그림책도 사진책도 글책도 곧잘 묵힌다. 앞서 읽은 다른 아름다운 책에서 퍼져나오는 사랑스러운 빛물결을 찬찬히 내 가슴으로 받아들이느라, 막상 다른 책을 곧장 읽지 않기 일쑤이다. 기다린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어느 책이든 갓 나올 적에 읽으면 더 맛날 수 있다. 갓 구운 빵이나 갓 지은 밥이란 얼마나 맛있는가. 아무 양념도 간도 안 한 네모빵이라 하더라도, 갓 구워 나온 따끈따끈 김 오르는 네모빵을 살짝 뜯어서 먹으면, 대단히 달콤하면서 맛나다. 갓 지은 뜨끈뜨끈 김 피어나는 밥을 아무 반찬이나 국 없이 한 술 떠서 먹으면, 더없이 고소하면서 맛나다.
책을 묵혀서 읽으면, 몇 달이나 몇 해 뒤에 새롭게 느끼곤 한다. 이 책들을 몇 달이나 몇 해 앞서 읽었으면 내가 얼마나 깊거나 넓게 헤아릴 수 있었나 하고 살피곤 한다. 오래 묵혀서 읽는 만화책이 되면, 이 만화책을 놓고 느낌글을 쓸 때쯤 안타깝게도 절판되어 이웃사람한테 추천을 하기 어렵곤 하다. 그러나, 내 느낌글을 읽고 그 책을 만나고 싶어 하는 분이라면, 헌책방마실을 하면서라도 그 책들을 만나리라 믿는다.
책상맡에 있는 《여행하는 나무》는 언제쯤 마저 읽고 느낌글을 쓸 수 있을까. 1993년에 처음으로 다 읽고 나서 그 뒤로 여러 차례 되읽었으나 여태 느낌글을 안 쓴 《우리 글 바로쓰기》 이야기는 언제쯤 느낌글을 마무리지을 수 있을까. 아무래도 내 마음이 더 자라면, 이 책들 이야기를 쓸 수 있을 만큼 내 사랑이 더 크면, 그때가 되어서 이 책들 느낌글을 쓸 수 있으리라 본다. 웃으면서. 노래하면서. 4346.11.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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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상맡 묵힌 책들 몇 가지...
다 읽은 책은 얼른 느낌글로...
아직 안 읽은 책은 얼른 읽어...
집에서 서재도서관으로 옮겨 놓자...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