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다 소년사 1
이시키 마코토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81

 


산 사람들과 죽은 넋
― 하나다 소년사 1
 이시키 마코토 글·그림
 삼양출판사 펴냄, 2004.10.13.

 


  깊은 밤에 문득 깹니다. 작은아이 칭얼거리는 소리 듣고는 반듯하게 누이고 이불을 새로 여밉니다. 큰아이도 다독입니다. 쉬를 하려고 마당으로 내려서는데 고무신에서 철벅 소리가 납니다. 응, 뭔가? 발을 빼내고 들여다보니 고무신에 빗물이 고여 찰랑거립니다. 우리 식구 잠든 뒤에 비가 퍽 몰아쳤구나 싶습니다. 섬돌이 폭삭 젖고 신도 모두 젖었습니다.


  깊은 밤, 비가 그친 하늘에 별 몇 자그맣게 보입니다. 비는 그쳤는가 보구나. 늦가을 비가 내렸으니 앞으로는 날이 퍽 썰렁하겠구나 싶습니다. 이제부터 아이들과 자전거마실 다니려면 장갑을 끼워야겠습니다. 아이들 장갑이 제자리에 잘 있나 살펴야겠고, 아이들 겨울옷 모두 꺼내야겠습니다.


  아이들 여름옷을 언제 꺼냈고 겨울옷은 언제 치웠는가 돌아봅니다. 얼마 안 된 일 같습니다. 앞으로 몇 달 지나면 새삼스레 아이들 여름옷을 도로 꺼내고 겨울옷은 다시 집어넣겠지요.


  살아가는 동안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새로 맞이합니다. 살아가면서 아침과 낮과 저녁을 새삼스레 마주합니다. 시간과 날짜는 똑같다 할 만하지만, 언제나 다른 때와 곳입니다. 나는 올 2013년을 끝으로 서른아홉 살이 저뭅니다. 지난 2012년에는 서른여덟 살을 지났어요. 다가오는 2014년에는 마흔 살이 됩니다. 서른아홉 살도 서른여덟 살도, 또 마흔 살도 나한테는 꼭 한 번 찾아와서 누리는 나이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나와 같아, 여섯 살도 다섯 살도 일곱 살도 꼭 한 번만 누리는 나이예요.


- ‘아, 난 이대로 죽는 걸까? 아직 초등학교 3학년밖에 안 됐는데. 역시, 벌을 받은 거야!’ (6∼7쪽)
- “말도 안 돼. 그건 내가 봤을 때 이미 차에 깔려서 죽은 거였다고! 그치 소타?” “그러니까 네가 바보라는 거야. 죽은 생물을 가지고 장난치는 게 얼마나 큰 죄인 줄 알아?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난 모른다.” (11쪽)

 

 


  아이들을 아무런 시설이나 학원이나 학교에 안 보내는 뜻을 찬찬히 돌아봅니다. 이 아이들이 스스로 학교에 가고 싶으면 언제라도 갈 수 있습니다. 다만, 아이들은 교과서 지식이 아니라, 살아가는 넋을 물려받아야 합니다. 유치원도 어린이집도 ‘살아가는 넋’을 가르치지 못해요. 아니, ‘살아가는 넋’이 무엇인지 보여주지 못합니다. 유치원 교사는 교사로서 훌륭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교사이기 앞서 ‘한 사람’으로서 오롯이 설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지을 줄 아는,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교육에 기대지 않고서, 스스로 삶을 일굴 줄 아는 사람이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지 모르겠어요.


  오늘날에는 시골사람조차 스스로 우뚝 서지 못합니다. 시골사람 거의 모두 농약과 비료에 기댑니다. 시골사람 모두 기계와 자동차에 기댑니다. 시골사람 누구나 석유와 전기에 기댑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고작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아무것에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 삶을 지을 줄 알던 시골사람 있습니다. 1970년대까지 헤아리면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삶을 지을 줄 알던 시골사람 제법 많습니다. 1960년대까지 살피면 어떤 굴레나 틀이나 제도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삶을 지을 줄 알던 시골사람 무척 많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두 손과 두 다리로 삶을 지었어요. 우리는 누구나 머리와 마음과 가슴으로 삶을 일구었어요.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이야기를 짓고 노래를 지었어요.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말을 짓고 생각을 지었어요.


- “귀신이 나타나면 다 엄마 때문이라고요!” “네가 항상 나쁜 짓만 하니까 귀신 같은 게 무서운 거야.” (16쪽)
- “이치로.” “왜요, 귀신 누나. 난 지금 누구와도 얘기할 기분이 아니니까 방해하지 마요.” “이치로, 도와줘.” “시끄러워요. 난 누굴 도울 수 있는 애가 아니라니까요. 치로조차 구하지 못한 내겐 그 무슨 일도 무리라고요.” “새로운 생명을 구해냈잖아!” (50∼51쪽)

 

 


  학교를 다닌 아이들은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됩니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됩니다. 학교를 다닌 아이들은 가게를 차리거나 회사를 엽니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장사를 하거나 작가가 됩니다. 그런데, 학교를 다니거나 마친 아이들 가운데 시골에서 흙을 만지거나 바다에서 물을 만지는 아이는 없어요. 학교를 다니거나 마친 아이들 사이에서 삶을 스스로 지으며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하는 아이는 아직 찾아보기 어려워요.


  한국사람이니 한국말을 해요. 일본사람이니 일본말을 해요. 베트남사람이니 베트남말을 해요. 티벳사람이니 티벳말을 해요. 영국사람이니 영국말을 해요. 그렇지요? 그러나, 오늘날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하지 못합니다. 한국말도 중국말도 일본말도, 또 미국말이나 영국말도 아닌, 어설픈 뒤죽박죽 얄딱구리한 말을 합니다.


  교과서 아닌 책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요. 참고서 아닌 책은 무엇을 보여주는가요. 교재 아닌 책은 무엇을 밝히는가요. 자기계발서 아닌 책은 무엇을 드러내는가요.


  삶에서 빛을 읽을 때에 책입니다. 삶에서 꿈을 찾을 때에 사랑입니다. 삶에서 이야기를 엮을 때에 말입니다.


  머리나 생각이 아닌 손으로 숟가락을 쥐어 밥을 떠서 입으로 먹습니다. 온몸으로 살아내는 하루입니다. 온마음을 기울여 씩씩하게 살아내는 나날입니다. 모든 것은 삶에서 비롯합니다. 삶 아닌 죽음에서 비롯하는 것은 없습니다. 삶 아닌 지식이나 책이나 학교에서 비롯하는 것조차 없습니다.


- “태어났을 때부터 의사가 10살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했대요.” “그럼 지금으로도 꽤 득 본 거네.” “네?” “7년이나 더 살았잖아.” (70쪽)
- “고, 고마워요.” “수제품은 수제품이지만, 그래 봤자 그냥 잡동사니잖아.” “잡동사니가 아니에요!” “잡동사니야.” “아녜요.” (72∼73쪽)

 


  이시키 마코토 님 만화책 《하나다 소년사》(삼양출판사,2004) 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을 잇습니다. 《하나다 소년사》에 나오는 아홉 살짜리 머스마 ‘하나다’는 누구도 못 말릴 말썽쟁이입니다. 언제나 말썽을 일으킵니다.


  이 아이는 왜 말썽을 일으킬까요. 이 아이는 왜 즐겁게 웃거나 노래하는 삶 아닌, 말썽을 피우는 짓을 서슴지 않을까요. 아름다운 삶과 밝은 웃음과 사랑스러운 노래를 싫어하는 아이일까요.


  하나다네 어버이가 하나다와 함께 조용히 흙을 만지면서 흙을 사랑하는 나날이었으면 어떠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하나다가 이녁 어버이와 함께 시골마을에서 살가이 어깨동무하는 삶을 물려받아 찬찬히 나눌 적에도 말썽쟁이 짓을 똑같이 할까 궁금합니다.


  하나다는 왜 학교에서 시험을 봐야 하고, 시험은 으레 0점을 받아야 할까요. 하나다는 왜 짓궂은 짓을 일삼고, 텔레비전에 목을 매며, 집식구들한테서 걱정을 한몸에 살까요.


- “아냐! 나한테 부탁을 하려고 멋대로들 찾아오는 거라니까. 다른 사람들에겐 안 보이니까 말해 봤자 모르잖아. 그래서 나한테 오는 거라고.” (141쪽)

 

 


  온갖 잘못과 말썽을 일삼던 하나다는 이웃집 자전거를 훔쳐 꽁무니를 빼다가, 그만 외딴길에서 짐차와 박습니다. 하나다는 하늘로 붕 날며 죽는 길로 갑니다. 하나다는 참말 죽습니다. 그런데 함께 죽음길 저승나라로 가던 어떤 예쁜 누나가 ‘넌 아직 이 길로 오려면 멀었다.’고 말하면서 이승으로 돌려보냅니다. 그리고 바로 이때부터 하나다는 ‘죽은 넋’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겨요.


- “응? 이치로. 우리 엄마를 도와줘! 우리 엄마가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내 마음을 전해 줬으면 해.” (151쪽)
- “엄마, 제발 다시 건강해지세요! 나는 죽었지만 언제나 엄마 곁에 있으니까. 엄마가 건강하게 살아가시게 되면 나도 엄마가 계신 곳에 다시 태어날게요. 나는 엄마가 좋으니까 다시 엄마의 아이로 태어나고 싶어요. 그러니 건강하게 사세요! 난 괜찮으니까!” (170∼171쪽)


  하나다는 죽는 자리에서 ‘이제 죽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여태껏 저지른 엄청난 말썽 때문에 값을 치른다’고 깨닫습니다. 두 가지를 깨달은 하나다는 ‘예전 삶’이 죽어서 시나브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새로운 삶’이 깨어나 시나브로 나타납니다.


  죽은 넋은 그동안 하나다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 둘레에도 늘 있었지만, 하나다를 비롯해 어느 누구도 죽은 넋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어요. 죽은 넋을 알아볼 마음이 없기도 했고, 죽은 넋을 알아본들 무엇을 해야 할 줄 몰랐습니다.


  하나다는 이제까지 말썽만 저지르면서 ‘안 본 모습’을 새롭게 봅니다.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던 모습을 차분히 들여다봅니다. 잔꾀를 부리려는 마음에서 ‘생각하는 마음’으로 달라집니다. 아홉 살짜리 철부지가 열 살을 앞두고 철을 살살 벗습니다. ‘산 사람’을 돌아보고 ‘죽은 넋’을 뒤돌아봅니다. 살아가는 즐거움과 함께, 죽은 넋이 되었다고 해서 슬프거나 서운하거나 아프지 않구나 하고 찬찬히 깨닫습니다. 왜냐하면, 죽은 넋은 얼마든지 다시 태어날 수 있으니까요. 하나다부터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셈이니까요.


  목숨을 얻어야 삶이 아니라, 사랑을 얻을 때에 삶입니다. 목숨을 더 이어야 삶이 아니라, 사랑을 기쁘게 나눌 때에 삶입니다. 하나다를 저승나라에서 이승으로 돌려보낸 누나는 바로 이 대목을 하나다가 스스로 깨달으며 앞으로는 아름답게 삶을 일굴 수 있기를 바랐지 싶어요. 하루하루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가를 깨달아, 언제나 맑은 웃음과 밝은 노래 부를 수 있기를 바랐구나 싶어요. 4346.11.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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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1-10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만화책, 왠지 그림결부터 재밌어 보이고
이야기도 좋습니다. ^^

숲노래 2013-11-10 10:14   좋아요 0 | URL
그러나 절판되었답니다!
저도 1권과 2권만 사 놓고... 뒤엣권은 없어서 못 봐요 ㅠ.ㅜ

<피아노의 숲> 연재할 때에 함께 나온 책인데,
이 책이 이렇게 일찍 절판될 줄은 몰랐어요... 에구... ㅠ.ㅜ

<피아노의 숲>을 그린 분이 함께 그린 짧은 작품이랍니다.
모두 다섯 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