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8.26.
 : 여름바다, 잘 있어라

 


- ‘여름 휴가철’이 끝난다. 드디어 ‘여름 휴가철’이 끝난다. 여름 휴가철 내내 바닷가에도 골짜기에도 도시 손님들 넘쳐서 우리 아이들 느긋하게 놀지 못했다. 외진 골짜기까지 도시에서 온 손님에다가 다른 마을에서 술병 들고 찾아드는 어르신이 있어 여러모로 고단했다. 더운 여름날, 골짝물 흐르는 시원한 숲그늘에서 술 한잔 즐기고픈 마음은 알겠지만, 마치 잔치판이라도 벌이듯 골짜기 한켠에서 판을 크게 벌여 놀고는 쓰레기 잔뜩 버리는 짓은 하나도 안 반갑다. 도시사람도 놀 줄 모른다지만, 시골사람도 놀 줄 몰라서야 되겠는가. 시골 바닷가나 골짜기에서는 불을 피우거나 뭘 구워먹지 말아야 할 노릇이지만, 이를 지키는 사람이란 없고 이를 키져보는 사람 또한 없다.

 

- 들빛 푸르게 맑은 여름 막바지에 바닷가로 자전거마실을 간다. 여름 내내 아이들과 바닷가와 골짜기를 돌아다닌다. 도시 손님 넘치는 바닷가 말고 고즈넉한 바닷가를 찾아보려 했지만, 끝내 못 찾았다. 자전거를 달려 알아보기에는 내 다리가 너무 힘든가. 그래도 다음해 여름에는 조용하고 홀가분한 바닷가를 다시 찾아보고 싶다.

 

- 큰아이가 샛자전거에 앉아 손잡이를 거의 안 잡는다. 문득문득 느끼기는 하지만, 참말 손잡이 안 잡고 두 팔 벌리면서 놀든지 뭔가를 한다. 아직 어리니까 이렇게 놀아야겠지. 더 나이를 먹으면 샛자전거에서 발판 함께 구르며 아버지를 도와주겠지.

 

- 면소재지를 거쳐 발포바닷가까지 가는 동안 나무그늘이 없다. 시골 분들은 찻길 가장자리까지 밭을 일구느라 나무 한 그루 자랄 손바닥만 한 땅뙈기조차 내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시골 분들은 들일을 하며 다리를 쉬며 땀을 들일 나무그늘이 없는 셈이다. 스스로 이렇게 만든다. 나무열매 즐기는 맛이 없고, 나무그늘에서 나무노래 들으며 한갓지게 낮잠을 자거나 쉬려는 멋이 없다. 그런데, 나무 없이 어떤 마을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나무 없이 어느 집이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화덕마을 지나 상촌마을 못 닿아 발포바닷가 쪽으로 꺾는 옛길이 있다. 군내버스도 마을사람도 으레 새길로 다닌다. 나는 굳이 옛길로 달린다. 옛길에는 길가에 나무가 마주보며 자란다. 짧은 길이지만 나무를 누리며 달리는 길이다.

 

- 여름 휴가철 끝난 바닷가는 아주 조용하다. 이 바다는 온통 우리 차지가 된다. 큰아이는 헤엄옷으로 갈아입고 논다.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새근새근 잔다. 바닷가로 마실을 올 적에 작은아이는 으레 잠이 들고 만다. 큰아이가 신나게 놀고 쉴 즈음 비로소 작은아이가 깬다.

 

- 한참 놀고 나서 집으로 돌아간다. 늦여름 시골마을은 온통 푸른 물결이다. 이곳도 저곳도 푸른 물결이 싱그럽다. 그러나, 이 푸른물결을 마냥 싱그럽게만 바라보지 못한다. 어느 논이고 밭이고 죄 농약바람 맞는 들이기 때문이다. 겉보기로는 푸른물결이지만, 풀벌레 깃들지 못하고 제비와 멧새 모조리 죽이며 개구리 한 마리 살아남지 못하는 소리없는 푸른물결이다. 사람들이 새와 벌레와 짐승하고 벗삼으며 숲노래 부르던 지난날을 마음속으로 그리며, 뉘엿뉘엿 지는 해를 따라 집으로 돌아간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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