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달새 우는 아침 - 굴렁쇠동화 1
이오덕 지음, 김환영 그림 / 도서출판 굴렁쇠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이오덕을 읽는다 14

 


멧골서 나무와 노래하는 아이
― 종달새 우는 아침
 이오덕 글
 굴렁쇠 펴냄, 2007.9.10.

 

 

※ 책풀이 ※
1987년 종로서적에서 처음 나온 동화책으로, 2007년에 새롭게 옷을 입고 다시 나온다. 멧골마을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며 겪거나 느낀 이야기를 동화로 빚었다. 오늘날에는 이 동화책에 나오는 아이들과 같은 아이가 없다 할는지 모르나, 학교에서 거친 말을 일삼는 아이들은 똑같이 있고, 거칠고 메마른 학교와 마을에서 씩씩하며 꿋꿋하게 착한 마음 지키려는 아이들은 똑같이 있다.


..


  한 달쯤 앞서부터 딱새 두 마리가 우리 집을 꾸준하게 드나듭니다. 처음에는 초피나무 가지에 앉거나 마당을 쏘다니더니, 빨랫줄에도 앉고, 섬돌 앞까지 내려앉아 딱딱딱 노래합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제비집에 지푸라기를 물어 날라 엉성하게 둥지를 손질하는 듯했는데, 지푸라기 물어 나르기는 그만두었는지, 빈 제비집에 곧잘 찾아들기만 합니다.


  설마 빈 제비집에 알을 깠을까 궁금하지만, 부러 들여다보지는 않습니다. 사람 사는 집에 가까이 찾아든다는 딱새라 하더라도 물끄러미 지켜보기로만 합니다.


  딱새를 비롯해 참새도 박새도 스스럼없이 마당으로 날아오고, 마당 나무에 내려앉습니다. 우리 집 나무에 있을 애벌레나 풀벌레를 노리는구나 싶고, 초피나무 열매라든지 다른 먹을거리를 찾아보려 하는구나 싶습니다.


  새들이 찾아오면 바람을 가르는 날갯짓 소리와 맑게 울리는 노랫소리를 함께 베풉니다.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으로 고운 이야기빛을 흩뿌립니다. 날마다 새들 노래를 들으며, 이 맑으며 고운 소리가 없이 하루를 열 수 없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싱그럽고 푸른 소리를 듣지 못하며 하루를 여는 사람들 마음에 푸른 사랑이 싹트기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도시 한복판에 살면서 자동차 소리와 기차나 전철 소리와 버스 소리만 들으며 새벽과 아침을 맞이한다면, 하루는 어떤 빛이 될까요. 손전화 터지는 소리와 텔레비전 웅웅거리는 소리만 들어야 한다면, 하루는 어떤 이야기가 될까요.


  아침을 여는 소리와 낮을 흐르는 소리와 밤을 감도는 소리는 아주 대수롭습니다. 집 둘레와 마을 언저리에서 샘솟는 소리는 참으로 대수롭습니다. 노래가 없는 삶이란 빛이 없는 삶이라 할 텐데, 고운 소리가 없는 삶이란 사랑이 없는 삶이 되겠구나 싶어요.


.. 아이들이 한꺼번에 고함치는 바람에 방울나무 잎들 속에 숨어 있던 참새들이 깜짝 놀라 호두나무 쪽으로 날아갔지만, 아침 해님은 키다리 미루나무 어깨 너머로 여전히 벙글벙글 웃고만 있었습니다 … 다음날 아침, 그러니까 목요일이지요. 김충실 선생님은 벚나무 밑에 책상과 의자를 갖다 놓고, 쉬는 시간마다 거기 버티고 앉아 있었습니다. 점심 시간에도 거기서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수업을 다 마친 뒤에도 숲속에서 사무를 보았습니다. 푸른 나무 그늘에 앉아 있으니 하도 시원해서 글씨도 잘 씌어지고, 사무 일이 참 잘 되는 것 같았습니다. 학력 검사의 점수를 계산하는데, 전 같으면 자꾸 틀려서 몇 번이나 되풀이하던 것이, 이날은 단 한 번씩 주판을 놓기만 하면 척척 맞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 돌아가고 없는 저녁때도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이런 좋은 자리를 두고 답답한 사무실에 갇혀 일을 하다니, 왜 진작 여기에 나올 줄 몰랐던가? 김충실 선생님은 볼펜을 던져 두고, 새소리가 자꾸 나는 머리 위를 쳐다보았습니다. 하늘이 거의 안 보이도록 나뭇잎과 가지들이 꽉 덮었습니다 … 열매를 달고 있는 나무도, 열매가 없는 나무도, 키가 작은 나무도 모두가 한데 어울려 아름다운 풀빛 합창을 하는 듯했습니다 ..  (10∼11, 15∼16쪽)


  아침마다 노랗게 환한 해를 마주합니다. 처음 동이 틀 무렵에는 불그스름한 빛인데, 어느새 노랗게 달라지고, 이내 하얀 빛살 퍼뜨립니다. 해는 스스로 같은 얼굴일 테지만, 사람들이 철과 날과 때에 따라 바라보는 빛은 조금씩 바뀌지 싶어요. 해는 빨갛기도 하고 노랗기도 하며 하얗기도 하다고 느낄 만합니다. 아마 해는 세 가지 빛깔을 함께 머금으면서 지구별을 따사롭게 보듬을 테지요. 지구에 무지개빛이 드리우도록 해 줄 테고, 지구에 포근한 바람이 불도록 해 줄 테며, 지구에 맑고 밝은 기운이 넘실거리도록 해 줄 테지요.


  해를 먹는 풀과 나무가 씩씩하게 자랍니다. 해를 먹는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랍니다. 해를 먹는 새와 벌레와 짐승이 튼튼하게 자랍니다. 해를 먹는 어른들이 힘차게 일합니다.


  해가 없는 데에서도 어찌저찌 살아간다고 하는데, 해가 아예 없다면 어떠한 목숨도 어찌저찌 살아남지 못해요. 지구별 아주 깊은 데에 있어 해 기운이 퍼지지 못하는 데가 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아예 해 기운이 안 퍼진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땅 위보다는 땅 깊숙한 데는 덜 퍼지겠지만, 땅을 덥히는 기운이 천천히 조금씩 스며들어 지구가 이루어지지 싶어요.


  그러니까, 해를 보며 살결 까무잡잡하게 타는 아이들이 야무지게 놀고 뛰며 노래해요. 해와 나란히 새까맣게 타는 어른들이 당차게 일하고 어깨동무하며 사랑해요. 해님을 바라보며 스스로 해님 마음이 됩니다. 해님을 마주하며 스스로 해님 손길이 됩니다. 해님을 쳐다보며 스스로 해님 사랑이 돼요.


  전기로 밝힌 등불에서는 해님과 같은 기운이 샘솟지 않습니다. 밤을 낮처럼 밝히는 전깃불빛으로는 해님과 같은 손길과 마음길이 되지 못합니다. 전깃불빛은 흙을 살찌우지 않습니다. 전깃불빛은 풀과 나무를 쉬게 하지 못합니다. 전깃불빛은 사람들 몸과 마음에 고운 사랑 싹트도록 북돋우지 못합니다.


.. 아무도 없는 숲속에 혼자 앉아 있던 교장 선생님은, 어느새 자기가 벚나무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참새들이 아침 햇빛을 받고 머리 위에 와서 마구 재재거리는 소리를 가만히 들으면서, 교장 선생님은 어렸을 때의 일을 생각했습니다 … 이윽고 나무에서 내려온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빙 둘러싸였습니다. 아이들의 입술도, 교장 선생님의 입술도, 늦게 달려온 선생님들의 입술도 모두 자줏빛으로 얼룩졌습니다. 그리고 모두 벙글벙글 웃는 얼굴입니다 … “이거 참 재미있는데! 올가을 학예회 때는 ‘나무의 춤’이란 것을 추어 볼까? 나무가 하늘을 바라보고 우줄우줄 추는 춤. 그리고 비바람에 시달리고, 사람들의 손에 가지를 꺾이고, 잎을 쥐어뜯기고, 가슴에 못이 박히고 하면서 몸부림치고 괴로워하는 나무의 춤! 꼭 한 번 그것을 추고 싶구나!” ..  (18, 21, 37쪽)


  오늘날 새로 짓는 학교를 보면 햇빛이 들어올 틈이 얼마 없습니다. 오늘날 새로 짓는 건물에도 햇빛이 스며들 틈이 얼마 없습니다. 커다란 건물 안쪽은 한낮에도 전기로 불을 밝힙니다. 높다란 건물 위쪽이나 아래쪽은 전기로 움직이는 승강기를 타고 오르내려야 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햇빛을 거의 못 쬡니다. 학교에서 어른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햇빛하고 동떨어진 데에서 지냅니다. 햇빛이 없는 학교교육입니다. 햇빛을 모르는 학교교육입니다. 햇빛을 가로막는 학교교육입니다. 햇빛을 내팽개치는 학교교육입니다.


  똑같은 수업을 하더라도 시멘트 교실에 전깃불빛 밝히면서 할 적이랑, 나무그늘에서 할 적은 사뭇 다릅니다. 두꺼운 천으로 창문을 가린 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켜서 화면 들여다보도록 하는 수업이랑, 운동장이나 풀밭이나 숲속에서 해를 안고 하는 수업은 크게 다릅니다.


  해와 함께 바람을 마시는 교실과 바람을 못 마시는 교실 또한 사뭇 달라요. 바람이 흐르는 운동장과 바람을 가로막은 교실 또한 크게 달라요. 철마다 달리 부는 바람을 살갗으로 느끼지 못한 채 교과서만 들여다본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느끼고 어른들은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요. 봄바람을 가르치지 못하고 겨울바람을 노래하지 못한다면, 아이와 어른은 봄과 겨울에 어떤 삶을 헤아리면서 스스로 삷빛 일굴 만할까요.


  해와 바람과 함께 비와 풀과 흙을 누릴 수 있는 교실과 이를 못 누리는 교실은 또 다릅니다. 여름비와 가을비를 아이도 어른도 모른다면 어떻게 될까요. 봄풀과 가을풀을 아이도 어른도 모른다면 어떻게 될까요. 여름흙과 겨울흙을 아이도 어른도 모르는 채 지나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교과서는 학교에 다닐 적에만 씁니다. 해와 바람과 비와 풀과 흙은 학교에 다닐 적뿐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시멘트나 아스팔트에 덮여 꽁꽁 막혀 안 보이는 듯하다 하더라도, 해와 바람과 비와 풀과 흙은 늘 우리 둘레에 있어요. 대학교에 들어간 뒤 교과서를 쓸 일 있나요? 사랑하는 짝을 만나서 교과서를 펼칠 일 있나요?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교과서를 들여다볼 일 있나요? 밥을 짓고 옷을 빨면서 교과서를 살필 일 있나요?


  누구나 언제라도 해를 마주해야 합니다. 누구나 언제라도 바람을 마시고 빗물을 누리며 풀과 흙을 벗삼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삶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삶하고 동떨어진 채 교과서만 말하고 교과서만 가르치며 교과서만 보여줍니다.


.. 수길이는 다른 아이들이야 어찌하든 나만은 내일 학교를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 병간호를 해 드리고, 밥도 내가 지어 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 “오늘부터 나도 내 자유로 학교에 가야지. 줄 지어 발 맞춰 가는 것은 안 할래.” 이렇게 생각하면서 가슴을 확 펴고 골목을 빠져나와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그 파란 하늘에는 조그만 것이 파닥거리고 있었습니다 … 강아지 한 마리를 우리 속에 가두어 놔도 낑낑거리고 몸부림을 치는데, 말을 하고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의 아이들을 한곳에 수십 명씩 온종일 가둬 놓았으니 조용할 리 있나요? 아이들 있는 교실이 언제나 쥐 죽은 듯 잠잠하다면 그것은 죽은 교실이고 죽은 아이들이지요. 그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 풀을 토끼장에 넣어 주고 거기 가 보니 서넛씩 둘러앉아 하는 것이 모두 땅뺏기 놀이입니다. 이 아이들도 모두 점심을 굶는 아이들이구나! 나처럼 고구마를 가져왔거나, 아예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은 아이들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31, 58∼59, 101쪽)


  아이를 낳아 돌볼 적에는 아이를 바라보며 돌봅니다. 육아책이나 교육책을 바라보며 아이를 돌보지 못합니다. 다 다른 아이들한테는 다 다른 빛이 흐르고 다 다른 이야기가 솟아요. 그러니, 육아책이나 교육책으로는 우리 아이 돌보는 사랑스러운 빛이나 결을 찾을 수 없어요.


  해를 바라보며 노래할 적에는 해를 바라보며 노래합니다. 가을날 누렇게 익은 들을 바라보며 노래할 적에도 누렇게 익은 들을 바라보며 노래해요. 이리하여, 먼먼 옛날부터 고장마다 고을마다 마을마다 다 다른 들노래가 태어났어요. 가을마다 가을걷이를 하며 노래를 불렀지요. 봄에 모내기를 하며 노래를 불렀어요. 피를 뽑으며 노래를 부르고, 나물을 하며 노래를 불러요. 밥을 짓으며, 아이를 어르고 돌보며, 나무를 하고 불을 지피면서 노래를 불러요. 우리 옛노래(한자말로는 ‘민요’)를 살피면, 하루 내내 노래를 불렀어요.


  다만, 우리 옛노래는 흙에서 일하고 놀며 살아가는 사람들 노래예요. 흙과 동떨어진 채 권력과 돈을 거머쥐며 살아가던 사람들은 아무런 노래를 짓지 못했어요. 권력과 돈을 거머쥐며 살아가던 사람들은 ‘권력과 돈으로 사람을 불러서’ 노래를 부르게 했지요. 이를테면 궁중음악이 이러한 노래입니다. 스스로 노래를 부르지 않고 남을 시켜서 노래를 짓고 부르도록 했어요. 삶이란 하나도 없이 오로지 놀고 즐기려는 뜻에서 노래 전문가를 두어 가락을 짓고 악기를 켜도록 했어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일하던 사람들은 언제나 스스럼없이 노래를 짓습니다. 즐거우면 즐거운 가락으로 노래를 짓습니다. 슬프면 슬픈 가락으로 노래를 짓습니다. 일하며 고되면 고된 마음을 풀려고 노래를 지어요. 일하며 웃음이 터질 적에는 웃는 마음으로 노래를 지어요.


  시집살이를 하면서 노래를 불러요. 바다에서 고기를 낚으며 노래를 불러요. 베틀을 밟으며 노래를 부르고, 방아를 찧으며 노래를 불러요. 언제 어디에서나 노래예요. 시골 흙지기는 흙에서 샘솟는 노래를 불러요. 시골 흙지기는 흙을 살찌우는 해를 바라보며 노래를 불러요. 살결을 어루만지는 바람을 고맙게 여기며 노래를 불러요. 온 들판 적시는 비를 마주하며 즐거워 노래를 불러요.


  집을 지으려고 굵은 나무를 골라 베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멧골에서 나무를 가만히 껴안으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가 삶이고 삶이 노래입니다.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는 숲으로 스며들고, 숲은 숲대로 풀내음에 온갖 새와 풀벌레와 짐승 목청을 담은 숲노래를 불러 줍니다.


.. 아, 나도 이 아이들이 귀엽습니다. 나는 내 곁에 온 아이들을 따스한 햇볕으로 안아 주고 강물같이 파란 하늘과 그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보여주고, 운동장 가의 버드나무 잎들이 팔랑팔랑 떨어지는 모습이며, 포르륵포르륵 참새들이 날아가는 날갯짓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곧 겨울이 오면 잿빛 하늘에서 송이송이 하얀 눈송이들도 쏟아져 내리겠지요 … 내 소원은 어린이들의 가슴마다 깨끗한 마음을 심어 주는 일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고향 산천, 고향 하늘을 그들의 가슴마다 깊이깊이 안겨 주는 일입니다 … 하루의 일과가 다 끝나서 가방을 들고 교실을 나설 때는 아이들의 얼굴이 그럴 수 없이 즐거워 보입니다. 그 재미없는 책과 선생님의 말과 외우고 쓰고 하는 공부라는 괴물에서 해방된 기쁨으로 활짝 피어난 꽃 같은 얼굴이지요 … 마른 잔디 풀들이 노란 속눈을 틔우고 있는 산기슭 양지쪽에는 해님의 마음같이 진한 빛깔의 할미꽃들이 피어나고, 그 위에서 종달새는 이른 아침부터 울고 있었습니다 ..  (65∼66, 76, 156쪽)


  이오덕 님이 쓴 동화책 《종달새 우는 아침》(굴렁쇠,2007)을 읽습니다. 깊디깊은 멧골마을에서 고단하게 살아가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잔뜩 나오는 동화책입니다. 너무 고단하고 고달파서 숨이 막힐 듯 울음이 쏟아지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고단하고 고달프지만 노래를 불러요. 종달새를 바라보며 꿩을 마주하며 가슴속에서 저절로 노래가 터져나옵니다.


  윽박거릴 뿐 아니라 몽둥이나 손찌검으로 들볶는 어른(교사)이 있지만, 아이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버찌를 땁니다. 보랏빛으로 무르익은 버찌를 보며 군침을 흘립니다. 그도 그럴밖에 없는 까닭이, 멧골마을 아이들은 먼 멧자락 타고 넘으면서 힘겹게 학교를 다녀요. 교사들은 멧자락 타고 넘을 일 없습니다. 교사들은 사택에서 지내며 ‘아이들 학교길이 얼마나 멀고 고된지’ 아무도 몰라요.


  그러나, 아이들은 고되다고만 느끼지 않습니다. 숲을 가로지르고 나무와 벗삼으며 숲짐승하고 동무가 되어요. 새벽바람으로 학교길 나서며 숲노래 듣지요. 저녁바람으로 멧골집으로 돌아가며 숲노래 다시 들어요. 게다가 멧골마을 아이들은 집에서 늘 일손을 거들어요. 집 바깥에서 풀을 만지고 흙을 밟으며 일하는 동안 숲노래를 노상 들어요. 이러하니, 아이들은 벚나무 달달한 열매 굵게 맺힐 적에 군침을 흘리며 바라봅니다. 교장과 교사가 아무리 윽박지르거나 때리더라도 버찌를 먹으려 합니다.


.. 할아버지의 말이 떨어지자 현수는 나팔을 두 손으로 받고는 어쩔 줄 모르고 엎드려 인사를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현수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시더니 현수가 머리를 들었을 때는 어디로 가 버리셨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현수는 할아버지가 갑자기 사라진 것을 이상스럽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바람같이 문틈으로 빠져나가신 것이 아니라, 어쩐지 제 마음속에 들어와 계신 것 같았습니다 … 써 놓고 읽어 보니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건 내 마음이다, 이건 거짓이 아니다, 하는 생각과 함께 지금까지 학교에서 글을 쓰면서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용배는 자랑스러웠습니다 … 날개를 쫙 펴고 꽁지를 쭉 뻗고 아침 햇빛에 눈부신 모습으로 산을 넘어가는 꿩을 쳐다보는 용이의 온몸에 갑자기 어떤 힘이 마구 솟구쳤습니다. 용이는 그 자리에서 한 번 훌쩍 뛰어올라 보았습니다 ..  (89, 115, 128쪽)


  아이들은 깊디깊은 멧골을 타고 넘으며 날마다 학교를 오가요. 그런데 왜 어른들은 이 깊디깊은 멧골을 타지도 넘지도 않으면서 아이들을 다그치기만 했을까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한테 ‘얘들아, 오늘은 학교 오면서 무슨 노래를 들었니?’ 하고 묻지 못할까요.

  이제는 깊디깊은 시골마을이라 하더라도 십 리 이십 리 멧길을 타고 넘으면서 학교 다니는 아이가 없습니다. 이제는 노란버스로 시골 아이들 태워 학교까지 실어 나르고 집까지 데려다 줍니다. 오늘날 시골마을 아이들은 아침저녁으로 버스를 타요. 오늘날 시골마을 아이들은 아침저녁으로 아침노래도 저녁노래도 못 듣습니다. 자동차 붕붕거리는 소림나 듣습니다.


  도시에 있는 아이들도 똑같습니다. 학교길에 자동차 걱정스럽다며 ‘아버지 어머니가 자가용으로 아이들 태워’ 학교까지 데려다 주지요. 학교버스도 있어, 학교에서 아이들을 실어 나르지요.


  시골이든 도시이든, 아이들은 집과 학교 사이에 어떤 마을이 있고 어떤 이웃이 있는지 느낄 틈이 없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햇볕도 바람도 빗물도 흙땅도 풀밭도 누리지 못합니다. 오직 교과서 수업만 받습니다. 오직 시멘트 교실에 갇힌 채 하루를 온통 지새웁니다. 더군다나, 도시락이 사라지고 급식이 되면서, 도시락 싸는 마음을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지 못해요. 스스로 도시락을 싸려고 밥짓기에 마음 기울이는 일도 사라져요. 돈 몇 푼으로 과자나 빵을 사먹을 줄 아는 요즈음 아이들이지만, 손수 밥을 지어 동생한테 차려주거나 바쁘거나 고단한 어버이한테 차려주는 삶은 생각하지 못하는 요즈음 아이들입니다.


.. “난 시가 뭔지 모르지만 내 맘속에서도 시가 나올 것 같은데……. 나도 그런 거 좀 써 봤으면 좋겠다.” “그래, 한번 써 봐. 글자만 알면 누구나 쓸 수 있지. 난 슬플 때나 답답할 때나 외로울 때 이렇게 시를 쓰면 기뻐지더라. 시를 쓰면서 살아갈라고 해.” … 짐이 무거워 쉬고 또 쉬었습니다. 20리쯤 걸으니 해가 져 아주 져 버렸고, 분교장 앞에 왔을 때는 밤이었습니다. 그래도 조각달이 등 뒤에서 비춰 주어서 길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두 아이 모두 장터에서 사 먹은 빵 몇 개로는 허기가 나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엎드려 도랑물을 자꾸 마시고 땀을 닦으며 걸었습니다 … 새까맣게 익을 대로 익은 머루알은 정말 달고 향긋한 산의 맛이었습니다. 그것은 깊은 산골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을 위해 값없이 주는 산의 선물, 하늘의 선물이었습니다 ..  (152, 181쪽)


  동화책 《종달새 우는 아침》은 아침을 종달새 노랫소리와 함께 맞이하고, 저녁을 종달새 노랫소리와 함께 마무리하는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종달새와 같이 맑고 밝게 노래하는 넋이 되어 하루를 빛내자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종달새는 이 땅에서 거의 모두 사람한테 쫓겨 죽거나 사라졌지만, 종달새 노래를 되새기고, 종달새가 없으면 참새이든 딱새이든 박새이든, 또 제비이든 까치이든 직박구리이든, 또 왜가리이든 해오라기이든 물총새이든, 우리 둘레 곱고 착한 새들이 들려주는 곱고 착한 노래를 되새기는 넋을 보여줍니다.


  노래를 품는 삶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노래를 빚는 삶이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요. 노래를 부르는 삶이란 얼마나 즐거운가요.


  노래에 꿈을 실어요. 노래에 빛을 담아요. 노래에 사랑을 품어요. 아이도 어른도 손을 맞잡고 노래를 하지요. 어른도 아이도 어깨를 겯고 하하호호 웃으면서 노래잔치 벌이지요.


.. 우선, 아침에 운동장에 들어서자마자 놀란 것이지만, 아이들이 왜 그렇게도 욕설을 예사로 지껄이는 것일까 … 학교라는 곳은 즐겁게 뛰놀고, 노래하고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온갖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모여 서로 욕설하고 미워하고 해치는 것을 배우는 곳같이 느껴졌습니다 … 얼었던 땅을 뚫고 해님을 보고 솟아오르는 눈부신 싹들! 그것들은 얼마나 연약하면서도 강한 생명들입니까? 복현이는 훌쩍 일어나서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  (162, 166, 169쪽)


  아이들이 나무와 노래할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저마다 나무 한 그루 해마다 심으면서 보금자리와 마을을 가꿀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손수 심은 나무에 멧새 찾아들어 아름답게 노래할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씩씩하게 심은 나무에 꽃이 피면 나비가 찾아올 테지요. 나비가 춤을 추고 잠자리가 날개를 쉬다가 멧새들 깃을 들이는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면, 이 나무를 타고 신나게 놀 수 있을 테지요.


  나무와 노래하던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기를 빌어요. 나무를 심고 아끼던 아이가 커서 어른으로 살아가기를 빌어요. 나무를 사랑하는 넋으로 어른다운 어른으로 튼튼히 두 팔 펴고 일하기를 빌어요.


  나무와 우리들은 한몸이에요. 나무와 우리들은 같은 숨을 마셔요. 나무와 우리들은 고운 햇볕을 먹으며 맑은 바람을 들이켜요. 나무가 있어 삶이 빛나고, 나무와 이웃하며 삶이 포근합니다. 4346.1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에서 '산머루' 따먹는 아이들 이야기 있는데, 오빠가 동생한테 머루를 따서 던질 적에, 누이는 치마로 머루를 받는다고 나오나, 그림에서는 바지 차림이다. 아름다운 글을 그림에서 살짝살짝 엉뚱하게 받치는 대목이 나온다. 이밖에도 그림이 잘못된 곳이 여럿 보인다. 책에 그림을 붙일 적에는 원글을 찬찬히 읽고 나서 제대로 그려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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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1-02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종로서적에서 처음 나왔던 이오덕 선생님의 동화책이군요!
종로서적을 기쁨으로 드나들던 추억과 이오덕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화책 느낌글로
날씨가 흐리지만..퍽 마음이 피어나는 아침입니다~
딱새가 딱딱딱, 노래하는군요~~
빈제비집에 드나드는 딱새도 참새도 박새도 다 보고 싶고 즐겁네요~
오늘도 아름다운 느낌글 감사드리며,
<종달새 우는 아침> 또 감사히 담아갑니다~


숲노래 2013-11-02 12:27   좋아요 0 | URL
이오덕 님 동화책도 참 아름다운데
그리 널리 읽히지는 못해요.

작품집이 이 하나뿐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오래도록 절판되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는데,
여러모로 아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