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보이는 나무 -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쓰고 그린 나무 관찰 기록 52편
허예섭.허두영 지음 / 궁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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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노래를 불러야지요
― 사랑하면 보이는 나무
 허예섭·허두영 씀
 궁리 펴냄, 2012.2.10. 15000원

 


  사랑하면 나무가 보입니다. 사랑하면 풀이 보입니다. 사랑하면 하늘이 보이고, 바다가 보이며 들이 보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나무가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하지 않는데 풀이 보일 수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마음이라면 하늘도 바다도 들도 볼 수 없습니다.


  사랑할 적에 사람을 봅니다. 사랑하는 마음일 적에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운 숨결인가 슬그머니 깨달으며 환하게 웃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되어 짝을 만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삶을 일구기에 내 보금자리와 마을에 눈부신 햇살 드리웁니다.


  허예섭, 허두영 두 사람이 빚은 이야기책 《사랑하면 보이는 나무》(궁리,2012)라는 책을 만납니다. 책이름이 더없이 사랑스러워 냉큼 장만합니다. 참말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글과 사진을 여미었구나 싶습니다. 참으로 나무를 사랑하는 하루를 누리며 온갖 나무를 만나고 이야기를 엮었구나 싶습니다.


.. 자작나무 껍질에 글을 써서 책으로 만들면 어떨까. 천마도처럼 내 책도 오랫동안 썩지 않으면 좋겠다. 또 자일리톨 덕에 향긋한 냄새가 나 사람들이 내 책에 더 끌릴 것이다. 옛날 사람들이 종이가 없었을 때 생각을 표현하려고 자작나무 껍질에 얼마나 힘들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는지 짐작할 수 있듯이, 아버지와 내가 이 책을 얼마나 정성을 들여 썼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20쪽)


  나무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나무마음이 됩니다. 나무를 사진으로 담고 글로 노래하는 사람한테는 나무내음이 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넋이 되고 어떤 내음이 될까요. 쥐똥나무를 바라보면서 어쩐지 똥내음이 거석하다고 느끼면, 나는 쥐똥과 같은 넋이나 내음이 되겠지요. 그런데, 쥐똥나무는 참말 쥐똥하고 맞물려 쥐똥일까요? 쥐똥하고 맞물리는 쥐똥나무라 하더라도 쥐똥을 거석하게 여겨야 할까요?


.. 자작나무는 사람을 순수하게 정화시키는 힘이 있다 ..  (23쪽)


  동물원에 갇힌 짐승들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동물원에 갇힌 짐승은 움직이기도 어렵습니다. 좁은 우리에 갇혀 사람들한테 구경거리가 되어야 하는 짐승들은 몹시 슬프고 아프며 고단합니다. 사람들이 비싼 돈 들여 먹을거리 챙겨 준다 하더라도, 동물원에서 흙바닥 아닌 시멘트바닥만 밟고, 고작 몇 미터 안 되는 좁은 울타리만 맴돌아야 하는데, 이 짐승들이 누는 똥에서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날밖에 없습니다.


  곧, 동물원에 갇힌 짐승들 모두 ‘처음에는 숲에서 마음껏 뛰고 놀며 살던 아름다운 넋’인 줄 깨닫고 사랑할 수 있다면, 동물원 코끼리가 눈 똥을 달리 바라볼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동물원 코끼리 아닌, 너른 들판에서 풀을 뜯어먹으며 달리는 코끼리가 누는 똥 곁에서 냄새를 다시 맡아 보아요. 같은 냄새가 안 나겠지요. 너른 들판 코끼리가 누는 똥에서는 너른 들판 풀내음이 피어나겠지요.


.. 여러 동물을 구경하는데 우연히 코끼리가 커다란 똥을 싸는 걸 봤다. 냄새도 심해 시각과 후각이 충격을 받아 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짜증이 솟구쳤다. 다른 동물을 둘러보다가 울타리에 있는 나무 푯말을 봤는데 그 나무의 이름은 ‘쥐똥나무’였다. 주위에 쥐똥이 있는 것 같아 괜히 신경이 곤두섰다 ..  (173쪽)


  이야기책 《사랑하면 보이는 나무》는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이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우러져 글과 사진을 엮은 대목이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나무 하나를 놓고 나무도감에 실린 자료나 시집에서 읽은 글월을 지나치게 많이 옮겨서 아쉽습니다. 두 분이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을 더 적었으면, 두 사람이 ‘나무를 오래도록 지켜보며 느낀 푸른 숨결’을 더 밝혔으면, 그리고 수목원 나무 말고, 들판과 숲과 마을에서 씩씩하고 싱그러이 살아가는 나무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살며시 껴안으면서 사진을 찍었으면, 얼마나 더 아름다운 책이 되었을까 싶습니다.


  나무 사진마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묻어나는 사진으로 다시 엮을 수 있으면, 또 나무를 제대로 알아볼 만한 사진으로 다시 찍어서 엮을 수 있으면, 또 ‘학술’이나 ‘학문’으로 알아보려는 나무가 아니라, 먼먼 옛날부터 사람과 짐승과 벌레와 새하고 함께 살아온 이웃인 나무인 줄 깨달으며 사랑한다면, 사뭇 다른 이야기로 우리들한테 나무노래 들려줄 수 있으리라 봅니다. 4346.10.1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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