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산 책이 아쉬울 적에
책을 장만할 적에는 언제나 즐거운 마음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읽고 다시 읽고 또 읽는 동안 즐거운 마음 일으키지 못하는 책이 자꾸 나타난다. 책을 덮고 한참 곰곰이 생각한다. 아이들 밥을 차리고, 아이들 옷가지를 빨래하며, 마당에 옷가지를 널면서, 평상에 살짝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후박나무 스치는 바람을 마시며 가만히 생각한다. 아무래도 나 스스로 즐거우며 아름다운 책을 제대로 살피거나 고르지 못한 탓이리라. 속살까지 찬찬히 살피고 책을 골랐다면, 이렇게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았으리라. 겉으로만, 책이름으로만, 줄거리로만 얼추 살피고 너무 가볍게 책을 장만했기에 마음이 아리고 쓰리며 저릴밖에 없으리라.
온누리 모든 책을 장만해서 읽어야 하지 않는다. 하루에 열 권을 읽는대서 더 훌륭한 책읽기 되지 않는다. 열흘에 한 권 읽더라도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즐겁게 읽으면, 내 삶이 스스로 가장 사랑스러운 하루로 이어갈 기운을 얻을 때에, 비로소 훌륭한 책읽기 된다.
처음 장만할 적에는 즐거웠지만, 책을 손에 쥐어 한 쪽 두 쪽 끝 쪽 읽는 내내 마음속에서 웃음이 피어나지 않는 책을 덮고는, 한숨을 후유 내뱉은 뒤, 찬찬히 느낌글을 쓴다. 내 마음속에 즐거운 이야기꽃 건드리지 못한 책에서 무엇이 아쉬웠는가를 하나둘 짚으면서 느낌글을 쓴다. 다른 사람들이 나와 같이 느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백이면 백 모두 다른 사람들일 테니까. 더구나, 오늘날 사람들은 99%(또는 99.99%) 도시에서 일거리 얻고 도시에서 살림집 꾸리며 도시사람으로 살아간다. 나는 오늘날 인구통계에서 1%(또는 0.01%)인 시골사람이다. 시골에서 일하고 시골집을 돌보며 시골사람으로서 글을 쓴다. 이러고 보면, 시골내음 풍기고 시골빛 보여주는 시골글 찬찬히 헤아릴 만한 사람도 백 사람 가운데 얼마나 있을는지 잘 모를 노릇이다.
도시사람한테만 읽히는 책만 태어나야 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시골사람과 함께 읽을 책이 태어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른들만 읽는 책만 태어나야 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린이와 어른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읽을 책이 태어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내가 아쉽다고 여기는 책에 시골내음이나 시골빛이 없어서 아쉬운가? 아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빚을 수 있는 삶내음과 삶빛이 드러나지 않을 적에 아쉽다. 도시에서도 사랑스러운 마을빛 꾸릴 수 있다. 도시에서 따사롭고 넉넉한 마을내음 일굴 때에 아름답다. 99%(또는 99.99%)를 이루는 작가와 독자와 편집자가 도시에서도 싱그러운 마을내음과 밝은 마을빛 담는 책을 조금 더 살피고 어루만지면서 아껴서 베풀 수 있기를 빈다. 4346.10.1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