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붓꽃 씨주머니 책읽기
붓꽃이든 창포이든 막상 꽃대가 올라 꽃이 곱게 피어나기 앞서까지, 사람들은 ‘그저 흔한 풀포기’ 가운데 하나로 지나치리라 느낀다. 생각해 보면, 나도 우리 집 노랑붓꽃이 꽃이 피어날 무렵 한참 들여다보지, 풀포기만 풀빛으로 있을 적에는 이 앞에서 오래도록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숨을 늘 쉬면서도 숨쉬기를 느끼지 않듯, 푸르게 빛나는 풀포기가 가득하더라도 부러 더 마음을 기울여 쳐다보지는 않는 셈일까. 우리들이 이 풀포기를 마주하거나 바라보지 않더라도 우리들 누구한테나 푸른 숨결 나누어 주는데, 고마움이란 사랑이란 바로 이처럼 곁에서 늘 푸르게 빛나는 바람과 같을까.
꽃이 지고 나서는 거의 안 들여다보던 노랑붓꽃이 어느새 씨주머니를 터뜨린다. 꽃이 진 뒤 씨주머니 맺히는 모습까지는 보았는데, 씨주머니가 이렇게 터질 줄 미처 살피지 못했다. 덩굴풀이 덮인 마당 끝자락을 들추니 덩굴잎 사이사이 그동안 터진 노랑붓꽃 씨앗이 그득하다.
씨앗을 하나하나 줍는다. 시멘트바닥인 마당에서는 이 아이들 뿌리를 내릴 수 없을 테니, 흙이 있는 데에 하나씩 둘씩 뿌린다. 우리 집 대문 앞에도 뿌리고, 마을 고샅과 논둑에도 뿌린다. 자전거를 타고 이웃마을 돌아다니면서 곳곳에 뿌린다.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아 씨뿌리기를 거든다.
이듬해에 이 씨앗들 뿌리 씩씩하게 내려 야무지게 줄기를 올릴 수 있을까. 마을 어른과 이웃 어른은 이 씨앗이 뿌리내려 새싹이 오를 적에 붓꽃줄기인 줄 알아채실 수 있을까. 웬 풀포기가 이리도 억세게 또 자라느냐며 몽땅 모가지를 치려나.
올해처럼 다음해에도 우리 집 노랑붓꽃은 씨주머니 흐드러지게 터뜨리리라. 나는 또 아이들과 함께 이 씨앗들 살뜰히 거두어 온 마을에 뿌리고 다녀야지. 나는 “미스 럼피우스” 같은 분은 아니지만, 우리 집과 마을 모두 고운 꽃내음과 맑은 풀내음 가득하기를 빌고 바라며 꿈꾼다. 4346.10.1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