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을 모르는 사람
우리 겨레는 예부터 풀을 먹던 겨레라 풀을 아주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자라나는 풀 가운데 이름 안 붙은 풀이란 없어요. 먼먼 옛날부터 고장에 따라 마을에 따라 풀이름을 다 다르게 붙였습니다.
풀이란 흙에서 자라나는 푸른 숨결입니다. 벼와 보리도 풀입니다. 밀과 서숙도 풀입니다. 콩과 팥도 풀이지요. 사람들은 풀포기가 맺는 열매를 먹고, 풀포기로 바구니를 엮거나 신을 삼거나 지붕을 이었습니다.
풀을 모르는 사람은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즐겁게 먹는 풀을 알아야 하고, 몸이 아플 때에 먹는 풀을 알아야 하며, 다친 곳에 바르는 풀을 알아야 합니다. 한겨레는 풀을 즐겨먹으면서 나뭇잎도 하나둘 익혀요. 못 먹거나 못 쓰는 풀이 없듯이 못 먹거나 못 쓰는 나뭇잎이 없어요. 갓 돋은 나뭇잎은 바로바로 따서 먹는 한편, 굵고 단단하며 큼지막하게 자란 나뭇잎은 썰어서 말리고 덖으면서 찻잎으로 삼았어요.
소도 돼지도 닭도 풀을 먹습니다. 토끼도 풀을 먹고, 다람쥐와 곰도 풀을 먹습니다. 이들은 잎사귀도 먹고 열매도 먹습니다. 사람도 이와 똑같지요. 풀을 먹고 열매를 먹어요. 풀잎으로 둥구미도 엮고 모자고 짭니다. 멧방석을 짜고 돗자리를 엮습니다.
아, 풀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뜯고 뜯어도 다시 돋는 풀이란 우리 겨레 삶을 얼마나 아름답게 북돋았는가요.
풀은 따로 씨를 받아서 뿌리지 않아도 이듬해 봄부터 가을까지 씩씩하게 돋습니다. 풀은 풀내음을 베풀고 풀바람을 일으킵니다. 풀노래를 들려주고 풀빛으로 눈과 마음을 즐겁게 이끕니다.
풀을 즐긴 한겨레는 풀과 같이 살아갑니다. 어떤 권력자나 임금이나 지식인 같은 이들이 우쭐거리며 짓밟으려 해도 풀포기처럼 가만히 눕다가 뾰로롱 다시 일어서요. 끝내 뽑히거나 뜯기더라도 그동안 흙에 떨군 씨앗이 새롭게 자라요. 아무리 뽑고 뽑아도 다시 돋는 풀처럼, 우리 겨레 수수한 시골마을 여느 사람들은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옛날 함석헌 님은 ‘들사람’을 떠올리며 ‘들넋’을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여기에서 하나 더 헤아려 ‘풀사람’을 돌아보고 ‘풀넋’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입에서 입으로 내려온 일노래와 옛이야기는 모두 풀을 먹고 풀을 나누며 풀을 돌보던 한겨레 삶이 깃든 노래요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태어나는 책들은 바로 이 풀뿌리에서 비롯합니다. 비록 서양 문물과 문화를 다루는 책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서양 철학과 사상과 문학을 다루는 책이라 하더라도, 이 땅에서 태어나는 모든 책에는 풀숨이 가득합니다.
풀숨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아요. 풀숨은 늘 우리 곁에서 감돕니다. 풀숨이 지구별 곳곳 살살 어루만지면서 사람들이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풀빛이 지구별 골골샅샅 가만히 보듬으니, 지구별 밖으로 나가 지구를 바라보면 “푸른 빛이 아름답다!” 하고 절로 말한다지요.
풀을 모르는 사람으로 산다면, 몸뚱이는 산 사람일는지 모르나, 마음과 넋과 얼은 죽은 사람입니다. 풀을 아는 사람으로 산다면, 몸뚱이도 마음도 넋도 얼도 모두 산 사람입니다. 4346.10.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