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장꼬장한 글쓰기

 


  나더러 너무 꼬장꼬장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곧다”와 “꼿꼿해서 굽지 않다”를 뜻하는 낱말인 ‘꼬장꼬장하다’이다. “마음씨가 곧고 착하며 맑아서 다른 사람 말을 좀처럼 듣지 않는다”를 뜻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꼬장꼬장하다’라는 낱말을 즐겁거나 반갑거나 달가운 자리에 안 쓴다. 내키지 않거나 못마땅하거나 싫은 자리에서 이 낱말을 쓴다.


  낱말뜻부터 헤아려 본다. “곧다”와 “꼿꼿하다”는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나무는 곧게 자란다. 나무는 비바람에도 꼿꼿하다. 딱딱하기만 하면 비바람에 꺾인다 하는데, 나무는 비바람에 좀처럼 안 꺾인다. 왜냐하면, 비바람이 불면 나무는 흔들흔들 춤을 춘다. 비바람 세기에 따라 나무가 흔들거리는 세기가 더 크다. 아주 커다란 바람이 불 적에 마당에서 우리 집 후박나무 줄기를 만진 적 있는데 어찌나 크게 흔들거리는지 깜짝 놀랐다. 그런데, 이렇게 크게 흔들거려 주어야 나무가 꺾이지 않는다.


  풀은 비바람에도 눕기만 할 뿐 꺾이거나 안 쓰러진다고도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뿌리가 얕게 되고 만 나무는 비바람에 뿌리가 뽑히는데, 여느 때에는 이렇게 뽑힐 일이 없다. 사람들이 나무 둘레 흙을 망가뜨리거나 건드렸기 때문에 나무가 비바람에 뿌리를 뽑힌다. 그러면, 풀은? 비바람이 드세면 나무는 흔들거리다가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풀은 드러누운 채 못 일어난다. 오히려 풀이 뿌리가 뽑혀 쓰러지기까지 한다. 풀에서 꽃대가 올라 꽃을 피우려 하면 모조리 비바람에 쓰러지곤 한다. 유채풀도 모시풀도 고들빼기풀도 쑥풀도 꽃대가 올라 한창 꽃을 피울 무렵 비바람이 몰아치면 그예 드러누워 못 일어난다.


  ‘꼬장꼬장하다’ 셋째 낱말뜻을 헤아린다. 셋째 낱말뜻에는 “다른 사람 말을 좀처럼 안 듣는다”가 나오는데, “마음씨가 곧고 착하며 맑다”도 나란히 나온다. 곰곰이 생각한다. 누군가 나더러 꼬장꼬장하다고 얘기한다면, 내 마음씨가 곧고 착하며 맑다는 뜻이 된다. 그런가? 곧고 착하며 맑은 마음씨라면 ‘아름다움’이다. 몹시 남우세스러운 이름이다. 부끄러우면서 즐거운 이름이다. 그런데, 곧고 착하며 맑은 사람이 왜 “다른 사람 말을 좀처럼 안 들으려” 할까? 너무 마땅하다고 느끼는데, 곧은 일이 아니고 착한 일이 아니며 맑은 일이 아니니까 “다른 사람 말을 들을 수 없”다. 이를테면, 4대강사업에 손을 들어 줄 수 없다. 한미자유무역협정에 손을 들어 줄 수 없다. 국가보안법에 손을 들어 줄 수 없다. 핵발전소에 손을 들어 줄 수 없다. 끝 간 데 모르고 치닫는 아파트짓기와 고속도로에 손을 들어 줄 수 없다. 골프장과 먹는샘물 공장에 손을 들어 줄 수 없다. 연예인들이 서로 호박씨 까는 이야기로 그득하고, 정치꾼 부질없는 이야기로 가득한 방송에 손을 들어 줄 수 없다. 농약과 비료를 엄청나게 쏟아붓는 농사짓기에 손을 들어 줄 수 없다. 교육 아닌 입시지옥으로 아이들 목을 조르는 초·중·고등학교 제도권학교에 손을 들어 줄 수 없다. 수은과 포르말린과 알루미늄을 써서 만드는 예방주사에 손을 들어 줄 수 없다.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말이라면 얼마든지 듣는다. 그러나, 아름답지 못한 사람들 아름답지 못한 말을 왜 들어야 할까. 아름답지 못한 짓을 왜 따라야 할까. 낯선 나라 사람들을 갑자기 적군으로 삼아 총을 쏘아 죽이라고 하면, 전쟁이 터졌으니 이웃나라 사람들 죽이라고 시킨다면, 이런 짓을 고분고분 따라야 할까. 따를 수 없고, 마땅히 안 따라야 한다고 느낀다. 이런 모습을 두고 ‘꼬장꼬장하다’고 한다면, 국가보안법에 손사래를 치고 농약농사와 4대강사업에 고개를 젓는 일이 ‘꼬장꼬장하다’고 한다면, 나는 언제나 이 모습대로 살아가리라.


  나는 아무 말이나 안 쓴다. 왜냐하면, 내가 하는 말이란 바로 내 넋이요 내 삶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 아이들한테 아무것이나 함부로 먹일 수 없다. 요즘 사람들이 일본 핵발전소 뒤탈 때문에 바닷것이나 일본에서 나온 것은 안 먹인다고 하는데, 그러면 한국에서 농약 옴팡지게 뿌린 먹을거리는 ‘괜찮다’고 여겨도 되겠는가? 방사능은 걱정이 되고 농약은 걱정이 안 되는가? 항생제와 화학약품은 걱정스럽지 않은가?


  한국사람으로서 한국사람답게 한국말을 할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사람이면서 한국사람답지 못하게 한국말을 망가뜨리는 누군가 있으면, 이들이 망가뜨린 말을 찬찬히 보듬어 되살려야 한다. 이리하여 ‘우리 글 바로쓰기’라든지 ‘우리 말 살려쓰기’를 말하고야 만다. 바로잡아야 할 글은 바로잡고, 살려써야 할 말은 살려쓴다.


  국가보안법이나 4대강사업이 왜 말썽거리요, 시화못 더럽힌 짓이 왜 끔찍한가를 깨닫자면 ‘생각을 해야’ 한다. 이런 자료 저런 글 그런 모습을 본대서 깨닫지 못한다. 스스로 ‘생각을 해서’ 옳고 그르며 바르고 아름다운 길을 찾아야 한다. 글쓰기와 말하기에서도 이와 같다. ‘생각을 해서’ 말과 글을 바르고 알맞으며 아름답게 추스를 수 있어야 한다.


  말을 엉터리로 쓰고 글을 터무니없이 쓰는 사람들은 ‘생각을 안 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해야’ 말도 글도 삶도 아름다운 길로 접어든다. 그렇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정치나 사회나 노동이나 경제에서 잘못된 대목을 바로잡으려고 이야기할 적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막상 한국사람답게 한국말을 올바로 쓰거나 아름답게 쓰도록 이야기할 적에는 고개를 돌린다. ‘생각을 하기’가 귀찮을까. 말과 글 이야기까지 생각하기는 힘들까.


  우리 말과 글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꼬장꼬장’하니까 듣기 싫을까. 그러면, 정치비평이나 사회비평이나 노동비평을 하는 사람들은 ‘안 꼬장꼬장’한가? 4346.10.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글쓰기 삶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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