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해, 우리 - 함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레아.여유 지음 / 시공사 / 201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63

 


사진 찍는 동안 따뜻한 마음
― 따뜻해, 우리
 레아·여유 글·사진
 시공사 펴냄, 2012.12.4. 13000원

 


  사진을 찍는 동안 마음이 따뜻합니다. 사진을 찍기 때문에 따뜻하다기보다, 날마다 맞이하는 새 하루를 마음 따뜻하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는 동안 마음이 즐겁습니다. 사진을 찍기 때문에 즐겁다기보다, 날마다 마주하는 새 하루를 마음 즐겁게 누리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따라 사진에 감도는 빛이 달라집니다.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은 사진기를 손에 쥘 적에 너그러운 빛 감도는 사진을 찍습니다. 마음이 환한 사람은 연필을 손에 쥘 적에 환한 빛 서리는 글을 씁니다. 마음이 고운 사람은 붓을 손에 쥘 적에 고운 빛 눈부신 그림을 그립니다.


  기계를 다루는 솜씨로는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기계 다루는 솜씨로는 작품을 만들거나 기록을 쌓을는지 모르지만, ‘사진이 되’지는 않습니다. 사진이 되자면, 먼저 ‘삶이 되’어야 합니다. 삶이 되자면, 언제나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곧, 삶도 사랑도 없이 기계만 다루며 작품을 만들거나 기록을 쌓을 수 있어요. 컴퓨터한테 맡겨 멋들어진 작품을 만들 수 있고, 놀라운 기록 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품과 기록에는 삶이 없어요. 작품은 그저 작품일 뿐이고, 기록은 그예 기록일 뿐입니다.


.. 아내는 사진을 사랑합니다. 남편도 사진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겨우 세 살이 된 딸은 그래서, 운명처럼 카메라를 좋아하고 사진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  (4쪽)


  사진기를 써서 작품을 만드는 예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사진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예술가가 제법 많아요. 이들은 사진기라는 연장을 빌어 예술을 합니다. 붓을 빌어 예술을 하기도 하고, 텔레비전 수상기를 빌어 예술을 하기도 해요. 돌을 빌고 종이를 빌어 예술을 하지요. 쓰레기더미에서 이것저것 캐내어 예술을 하기도 합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은 예술을 합니다. 사진을 하는 사람은 사진을 하지요. 왜냐하면, 사진은 사진일 뿐, 사진은 작품이나 기록이 아니에요. 예술도 예술일 뿐, 예술은 작품이나 기록이 아니에요.


  가을걷이를 하는 시골 흙지기들 삶은 예술이나 문화가 아닙니다. 그저 삶입니다. 가을을 맞이해 이녁 삶으로서 가을걷이를 합니다. 그런데, 가을걷이를 하며 나락을 말리려고 볏다발 묶은 모습을 보셔요. 참깨를 베고 콩포기를 베어 묶어서 말리는 다발을 보셔요. 흙지기마다 다르게 묶습니다. 마을마다 다르게 엮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진가는 볏짚다발만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기도 했어요. 시골 흙지기는 스스로 ‘예술’이라 여기지 않고 ‘삶’으로 볏짚다발 묶거나 엮었지만, 어떤 사진가 눈에는 이보다 어여쁜 ‘예술’은 없겠다고 보여, 이 사진가는 볏짚다발을 사진으로 찍었어요. 작품도 기록도 아닌 ‘사진’으로.


  가을걷이를 마치고 나락을 말리려고 길바닥에 싯누런 나락을 죽 펼칩니다. 싯누런 나락을 여러 날 해바라기 시킵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나락을 뒤집습니다. 나락을 뒤집으려고 슬슬 긁으며 모양이 달라져요. 일본사람은 앞마당 잔돌을 찬찬히 쓸어서 예쁜 무늬를 만드는데, 한겨레 흙지기는 나락말리기를 하며 고운 무늬를 만들어요. 예술가 아닌 흙지기로서 삶을 아름답게 일굽니다.

 


.. 모든 것이 다 눈물겹다. 사람도 공기도 촉감도 심지어 아가를 위해 틀어놓은 경쾌하기만 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까지도 … 워낙 키도 작고 자그마한 체격이라 아기띠를 하고 가는 모습이 벅차 보였나 보다. 커다란 생수통을 어깨에 든 아저씨가 빵 봉투를 들어 주겠다고 하셨다. 아저씨 어깨에 있는 생수통이 더 무거워 보여요, 라고 말했더니 아저씨는 인상 좋게 웃으며 애기 엄마가 너무 힘들어 보여 도와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럴 땐 꼭 서울이 봄처럼 따뜻하다 ..  (19, 26쪽)


  아이들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니, 요새는 손전화 기계로도 멋지거나 예쁜 사진 쉽게 찍을 수 있으니, 이제는 누구나 아이들 모습을 언제 어디에서라도 즐겁게 찍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어머니가 아이들 모습을 스스럼없이 찍는 사진보다는 아이들 아버지가 아이들 모습을 가끔 찍는 사진이 더 많지 싶어요.


  성평등 시대라고는 하지만, 정작 아버지가 집에서 살림을 건사하거나 보살피는 일이 몹시 드뭅니다. 어머니가 바깥일을 하며 돈을 벌 적에, 아버지가 집을 지키며 아이들과 지내는 일은 아주 드물어요. 거꾸로, 아버지가 바깥일을 하며 돈을 벌 때에, 어머니가 집을 지키며 아이들과 지내는 일은 참 흔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바깥일을 하며 돈을 번다면,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하루 내내 지내거나 할머니 할아버지 손길을 타며 자라지요.


  오늘날에도 지난날에도 아버지 자리에 선 사람들은 아이들과 마주할 틈이 아주 적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아이들 얼굴을 보더라도, 하루 동안 아이가 놀고 뛰고 먹고 입고 구르고 자고 하는 온갖 모습을 골고루 만나지 못합니다. 젖을 물리고 젖떼기밥을 먹이며 여느 쌀밥을 먹이는 일을 아버지가 맡아서 하거나 조금이라도 거드는 일이 드뭅니다. 집일을 도맡고 아이들 또한 도맡아 보살피는 어머니는 몹시 바빠요. 아이들이 까르르 웃고 떠들며 예쁜 모습을 보여주더라도 사진기를 꺼내어 찰칵 찍을 겨를이 없고, 손전화 기계를 얼른 켜서 사진으로 남길 틈이 없기 마련입니다. 이와 달리, 집일을 거의 안 맡거나 안 하면서 가끔 아이들과 노는 아버지는 쉽게 사진기를 들지요. 그래서, 아이들과 노는 모습은 곧잘 아버지가 사진으로 남기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나는 찬찬한 흐름과 빛과 결과 이야기까지 아버지가 사진으로 남기는 일은 거의 없거나 아예 찾아볼 수 없다고까지 할 만합니다.


  생각해 보셔요. 아이들을 한두 살 적부터 어린이집에 보내면, 어린이집에서 자라고 배우는 동안, 어버이는 아이들을 자라게 이끌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해요. 그만큼 아이들 눈빛과 몸빛과 마음빛을 못 읽고 못 느껴요.


  아침저녁으로만 얼굴을 보더라도 놀라운 사진을 찍을 수는 있지요. 그러나, ‘놀라운 사진’에서 그쳐요. 삶을 보여주는 사진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삶을 가꾸는 사진으로 넘어서지 못해요. 함께 살아가는 한솥밥지기인 줄 느끼는 하루를 차근차근 누리는 동안 한 해 두 해 세 해 네 해 이어지면서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일구는 삶이 사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함께 살아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어요. 가끔 한두 시간 놀아 준다면 ‘가끔 놀아 주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요.

  이 사진이 더 낫고 저 사진이 모자라지 않습니다. 어느 사진이든 마음을 담아 찍으면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삶을 즐길 때에 사진이 즐겁고, 스스로 삶을 사랑할 적에 사진이 사랑스럽습니다.


.. 레아야, 이건 눈이야. 너와 함께 눈을 밟다니 정말 감격스럽다 ..  (56쪽)

 


  사진으로 가는 길은 삶으로 가는 길입니다. 사진을 찍는 길은 삶을 일구는 길입니다. 사진으로 가는 길은 사랑으로 가는 길입니다. 사진을 찍고 읽으며 나누는 길이란 사랑을 빚고 찾으며 함께하는 길입니다.


  아이 손을 잡고 들길을 걸어요. 아이를 품에 안고 숲길을 걸어요. 아이를 등에 업고 바닷물로 첨벙 뛰어들어요. 갓난쟁이 똥오줌 기저귀를 손으로 즐겁게 빨래하며 노래를 불러요. 아이들 옷을 개며 노래를 부르고, 식구들 옷을 개면서 노래를 불러요. 비질과 걸레질을 하면서 노래를 불러요. 밥상을 차리며 노래를 부르고, 설거지를 하며 노래를 불러요. 칼을 갈며 노래를 부르고, 마당을 쓸며 노래를 불러요.


  언제나 노래를 부르며 하루하루 누리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이 어버이 모습 말똥말똥 지켜본다면, 이 아이들은 어느새 빙그레 웃음짓고는 까르르 빛노래 부르겠지요.


.. 내 눈으로 직접 조리과정을 보지 못한 음식을 아이에게 먹이는 게 아무래도 내키지 않아 직접 만들어 먹이기로 결심했다 … 남편도 아가도 잠이 들면 집안의 불을 모두 끈 채로 살금살금 나 혼자 분주해진다. 남편이 얼마 전부터 도시락을 싸서 다니겠다고 해서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도시락 반찬을 만들고, 정확히 새벽 5시 30분에 밥이 되도록 쌀을 씻어 예약 버튼을 눌러둔다 ..  (73, 104쪽)


  레아 님과 여유 님이 함께 일군 사진책 《따뜻해, 우리》(시공사,2012)를 읽습니다. 그동안 레아 님은 혼자서 사진책을 내놓았는데, 《따뜻해, 우리》는 옆지기가 나란히 나오고, 레아 님과 옆지기가 낳은 아이가 함께 나옵니다. 세 사람이 이루는 보금자리가 ‘따뜻하구나’ 하고 느껴 따뜻하게 누리는 삶을 들려주는 사진책을 선보입니다.


  책 끝자락을 보면, 레아 님네 세 식구에 이은 넷째 숨결이 나옵니다. 앞으로 한 해나 두 해가 더 흐르면, 네 식구 살림살이 복닥이는 이야기 흐드러지는 새로운 ‘따뜻한 삶’을 사진과 글로 선보일 수 있겠지요.


.. 오후의 빛과 가족의 뒷모습이 꼭 들어맞는 하나의 감정이 되어 물드는 것을 나는 보았다. ‘따뜻해, 우리’ 이러면서 ..  (135쪽)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고, 생각하는 대로 살기에, 살아가는 대로 사진을 찍고, 생각하는 대로 사진을 찍습니다. 살아가는 마음자락에 따라 사진빛이 바뀝니다. 생각하는 마음결에 따라 사진결이 달라집니다.


  레아 님한테 옆지기가 나타나고, 두 사람이서 새 숨결을 낳아 돌보는 삶을 일구면서, 레아 님이 그동안 찍던 사진에 새 무늬가 감돕니다. 새로운 사람들이 레아 님 사진을 빛내면서 새로운 내음과 결이 서립니다.


  앞으로 네 식구 살림일 적에는 어떤 사진빛이 환할까요. 옆지기가 바깥일 하느라 집을 오래 비우는 동안 두 아이와 복닥이며 고된 나머지 사진기를 손에 쥘 겨를도 힘도 없을까요. 바쁘고 힘들어도 사진기만큼은 씩씩하게 손에 쥐면서 새로운 하루를 새로운 사진으로 엮을까요.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고 내가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기대는 사람이 있고 나를 기대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곳에서 옆지기와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누리는 마을과 보금자리와 숲이 있습니다.


.. 언제 또 부산에 갈 수 있을까. 너무 착하고 아름답고, 목소리가 시끌시끌 정신없이 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누나들 좀 챙기라는 면박에 괜히 파프리카를 한 상자나 보내주는 엉뚱한 순수가 아무렇지도 않게 존재하는 곳. 기장만 가면 오징어를 샀던 우리 부부를 떠올려 주는 아름다운 그들이 있는 곳 … 나는 지금 삼십 대 후반을 달리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지금 아기를 낳아 시간이 부족하거나 예쁘지 않은 외모로 집을 지켜도 딱히 억울하거나 곤란하지 않다. 이십 대와 삼십 대의 시간이 저릿저릿 아플 만큼 좋았기에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내가 그리 우울하지 않다 ..  (152, 223쪽)

 


  사진은 바로 이곳에서 찍습니다. 사진은 바로 오늘 찍습니다. 무지개는 바로 이곳에서 오늘 만납니다. 미리내도, 달도, 별도, 해도, 바람도, 비도, 눈도, 모두 바로 이곳에서 오늘 만나요.


  내가 바라보는 아름다운 삶을 내 손으로 담아 사진이 됩니다. 내가 가꾸는 아름다운 하루를 내 손으로 일구어 사진이 됩니다. 내가 누리는 사랑스러운 나날을 내 손으로 가꾸며 사진이 됩니다.


  사진은 바로 우리들 가슴에서 태어납니다. 사진은 이론가들 책상머리에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사진은 바로 우리들 보금자리에서 샘솟습니다. 사진은 최신사진도 첨단사진도 서양사진도 유행사진도 아닙니다. 사진은 언제나 내 삶이고, 내 삶은 언제나 사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 집 안에 무지개가 떴던 아침 ..  (185쪽)


  집 안에 별이 뜹니다. 집 안에 귀뚜라미가 노래합니다. 집 안에 햇살이 드리웁니다. 집 안에 개구리가 노래합니다. 집 안에 가을바람이 붑니다. 집 안에 제비가 노래 한 가락 부르고 휙 날아갑니다.


  우리들은 흙땅에 나무 한 그루를 심습니다. 우리들은 마음밭에 사랑씨 한 톨을 심습니다. 우리들은 사진기를 빌어 삶이야기 한 가락을 심습니다. 사진 찍는 동안 따뜻한 마음은 나한테서 아이한테 이어지고, 다시 아이한테서 나한테 흐릅니다. 4346.10.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