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재미있는 숙제 신나는 아이들 ㅣ 살아있는 교육 5
이호철 지음 / 보리 / 199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배움책 19
재미있게 노는 곳이 학교
― 재미있는 숙제, 신나는 아이들
이호철 글
보리 펴냄, 1994.5.30. 7000원
교사 이호철 님이 쓴 《재미있는 숙제, 신나는 아이들》(보리,1994)이라는 책을 처음 읽던 때를 떠올립니다. 1994년에 처음 나온 이 책을 1998년에 처음 읽었습니다. 나는 1997년 12월 31일에 군대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왔으며, 1998년 1월에 대학교를 그만두려 하다가 한 해 두 학기를 더 다니고 12월에 그만두었습니다. 대학교라는 곳이 졸업장은 쥐어 주지만, 삶다운 삶을 보여주지 못하고 사랑다운 사랑을 일깨우지 못하는구나 싶어, 스스로 삶과 사랑을 찾고 싶어 대학교를 그만두었어요.
학점을 따느라 바쁠 젊은 날일 때에는 안쓰럽다고 느껴요. 교수한테 점수를 따려고 눈치를 보거나 아양을 떨거나 선물을 바쳐야 하는 젊은 날이란 얼마나 슬픈가 하고 생각해요. 대학교에서조차 베껴쓰기 숙제를 내는 교수를 보면서, 이런 대학교는 ‘대’라는 이름도 ‘학교’라는 이름도 부끄러운 노릇이라고 느꼈어요. 생각을 넓히거나 마음을 다스리는 이야기 아닌, 교재 몇 권 외우는 시험만 치르는 대학교란, 얼마나 젊은 넋을 살찌우거나 북돋울 수 있는지 알쏭달쏭했어요.
배움책 《재미있는 숙제, 신나는 아이들》은 초등학교 눈높이로 나온 책이지만, 이 책에 깃든 이야기는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도 함께 살필 만하다고 생각해요.
.. 아이들이 공책 가득히 쓰는 숙제를 잘 해 온다고 해서, 책상머리에 붙어 앉아 책을 들고 있다고 해서 공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쓰는 양이 많아 머릿속에 넣을 사이가 없거나 머릿속에 넣을 능력이 부족해서도 그렇고, 자기가 하고 싶어서 스스로 하지 않고 하기 싫은 것을 시킴을 받아서 억지로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설령 그런 단순한 지식 나부랭이를 머릿속에 잘 넣어서 좋은 점수를 얻고, 입시 경쟁에 이기고,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을 하여 겉보기에 남들이 우러러보는 사람이 된다 해도 사람답게 살아가는 공부를 못 한 사람은 오히려 배운 지식으로 사람들에게 큰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을 신문에서 날마다 보여주고 있다 … 시험 전쟁에서 이겨야 하겠지. 당신 아이 같으면 지금 우리 나라 형편에 시험 공부 하지 말라고 하겠느냐 반문도 하겠지. 그 말이 옳다고 하자. 그런데 어떻게 해서 국민학교 어린 아이들까지 거기에 휘말아 넣어서 들볶느냐 하는 것이다 .. (5∼6, 10쪽)
‘숙제’를 내는 학교가 있는 나라는 지구별에 몇 군데 있을까 궁금해요. 공책에 베껴쓰기 숙제를 내며 아이들 생각힘(상상력·창조력)을 짓밟는 학교가 있는 나라는 지구별 어디에 있을까 궁금해요.
미국에서도 베껴쓰기 숙제를 낼까요? 일본이나 중국은 어떨까요? 베트남이나 라오스는 어떨까요? 칠레나 브라질은 어떨까요? 쿠바나 도미니카는 어떻지요? 덴마크나 스웨덴은 어떤가요? 네덜란드나 프랑스는 어떻게 할까요?
베껴쓰기 숙제를 내어 아이들한테 무엇을 시킬 수 있을까요. 교과서 달달 외우는 시험공부를 시키면 아이들이 어떤 어른으로 자랄 수 있을까요.
교사뿐 아니라 어버이 누구나 스스로 생각해야 할 일이에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에 걸쳐 무언가 지식을 가르치려 한다면, 교사에 앞서 여느 어버이부터 스스로 생각해야 할 일이에요.
학교에서 베껴쓰기 숙제를 낸다면, 어버이가 소매를 걷어부치고 이런 숙제 못 내도록 교사를 나무랄 수 있어야 해요. 아이들 스스로 생각힘 북돋우는 ‘공부’를 시키지 않는 학교라면, 교사도 교감도 교장도 학교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쫓아낼 줄 아는 어버이가 되어야 해요. 왜냐하면, 어느 아이라 하든, 모두 다른 아름다운 넋을 품으며 태어나요. 어느 아이라 하든, 가장 사랑스러우면서 맑고 밝은 꿈을 품으며 태어나요. 어느 아이라 하든, 즐겁게 살아가며 기쁘게 어깨동무하는 하루를 누릴 숨결이에요.
.. 시멘트 건물과 아스팔트 바닥과 희뿌연 하늘로 둘러싸인 길로 해서 학교에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고, 다시 학원에 갔다가 또 집에 돌아가 베끼고 외우는 숙제를 하고, 잠을 자고, 조그마한 틈이 생기면 텔레비전 앞에 앉거나 전자오락을 하고 있으면 거기서 무슨 살아 있는 글이 나올까? 도시 아이들이 농촌 아이들보다 더 싱싱한 글을 쓸 수 없는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을 게다 … 손은 손을 가진 자신이 하루에도 여러 번 씻지만 발은 발을 가진 자신도 하루에 한 번 씻을까 말까 한다. 아이들에게 부모님의 이런 발을 씻어 드리는 숙제를 내어 보자. 때가 있고, 냄새가 나고, 갈라지고, 거친 부모님의 발이 얼마나 귀한 발인가 하는 것을 느낄 것이다 .. (23, 38쪽)
아이가 왜 대학교에 가야 할까요? 아이가 대학교에 다니면 아이한테 무엇이 좋거나 즐겁거나 보탬이 될까요? 대학교를 마친 아이는 무슨 일을 하면서 삶을 누릴 때에 즐겁거나 아름답다고 느낄까요? 대학교를 마친 아이는 스스로 어떤 일을 찾아나설까요?
아이는 왜 고등학교에 다니며 입시공부만 해야 할까요? 아이는 왜 중학교에서 예비 고등학생 되어 예비 입시공부에 시달려야 할까요? 아이는 왜 초등학교에서 예비 중학생 되어 ‘예비에 예비인’ 입시공부에 들볶여야 할까요?
초등학생한테 영어를 가르치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지구별 이웃과 아름다이 어깨동무하도록 이끌려고 영어를 가르치나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왜 아이들한테 영어를 가르치나요? 아이들이 캄보디아 동무나 필리핀 동무나 수단 동무나 포르투갈 동무를 사귈 수 있도록 이끌고자 영어를 가르치나요?
스스로 밥을 지을 줄 모르고, 스스로 옷을 기을 줄 모르며, 스스로 집을 지을 줄 모르는 아이들이, 시험성적 뛰어나다면 삶을 얼마나 잘 가꿀 수 있을까 궁금해요. 입시교육이란 삶교육이 아니고, 성교육이란 사랑교육이 아니에요.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봐요. 전쟁무기를 개발해서 공장을 짓고 엄청나게 만들어 사고팔 뿐 아니라, 이웃나라에 이 전쟁무기 갖추라며 들볶는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봐요. 이웃나라를 식민지로 삼으려 한 사람들이 누구요, 온갖 차별과 불평등 낳는 사람이 누구인가 생각해 봐요.
삶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 삶을 망가뜨리는 짓을 해요. 사랑을 익히지 못한 사람이 사랑을 깨는 짓을 저질러요. 꿈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 꿈을 짓밟는 길을 걸어요. 이야기를 꽃피우지 못한 사람이 이웃이나 동무와 어깨동무하는 길하고 등을 돌려요.
.. 시멘트 문화에 찌들고 딱딱한 기계에서 나는 소리만 들어 마음이 메마른 우리 아이들에게 자연의 소리를 스스로 내면서 듣는 즐거움을 주자. 기계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자연의 소리만 할까. 자연의 소리는 언제나 마음을 맑게 해 준다 … 우리 아이들에게 정류장에서 사람들이 버리는 휴지나 담배꽁초를 주워서 쓰레기통에 담기를 재미있는 숙제로 내어 주었다. 또 버리는 사람이 보는 앞에서 주워 보도록 해 보았다. 아이들이 쓴 글을 보니 참 재미있는 일이 많다 .. (53, 113쪽)
배움책 《재미있는 숙제, 신나는 아이들》에는 초등학교에서 1월부터 12월까지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숙제’를 여러 가지 들려줍니다. 교사 이호철 님이 몸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재미있는 숙제’를 내고는 아이들이 이 숙제를 치르며 겪은 이야기를 스스로 글로 남기도록 이끌어서, 아이들이 남긴 글을 ‘재미있는 숙제’마다 붙입니다. 아마, 아이들로서는 여느 베껴쓰기 숙제가 훨씬 쉬우리라 생각해요. 그냥 베껴쓰면 그만이거든요. ‘재미있는 숙제’를 하자면 1분만에 끝날 수 있기도 하지만 며칠이 걸릴 수 있어요. ‘재미있는 숙제’를 마치고도 스스로 못내 아쉬워 여러 날 더 생각을 기울이기도 해요. 한 번으로 그치기에는 아쉽거나 모자란 ‘재미있는 숙제’도 많아요.
이를테면, 내 어머니와 아버지 손발 주무르고 발 씻기는 숙제는 한 번으로 그칠 수 없습니다. 늘 할 ‘집일’이면서 ‘우리 식구 사랑’이에요. 어머니는 아이 발을 씻기고는 주물러 줍니다. 아이는 어머니 발을 씻기고는 주물러 줍니다. 서로가 서로를 아끼면서 누릴 삶이자 살림이고 하루예요.
날마다 먹는 밥은 어머니 혼자 도맡아서 차릴 밥이 아닙니다. 아버지도 함께 차릴 밥이며, 아이들도 초등학교 3∼4학년쯤이면 스스로 도시락 꾸리도록 밥짓기를 슬기롭고 알뜰하게 할 수 있어야 마땅합니다. 빨래와 청소도 이와 같아요. 언제나 스스로 삶이 되어야 할 모습이요 매무새입니다. ‘재미있는 숙제’라기보다는 ‘재미있는 삶’, 아니 ‘즐거운 삶’과 ‘아름다운 삶’으로 받아들일 이야기예요.
.. 그래 맨발로 걸어 보기 숙제를 내어 보았다. 모래흙에도 가 보고, 보드라운 흙에도 가 보고, 자갈밭에도 가 보고, 진흙에도 가 보도록 하자. 우리 아이들은 시멘트, 아스팔트 길도 걸어 보았는데 그런 곳도 한 번 걸어 보도록 하자. 그래야만 흙이 얼마나 포근한 것인가도 알 것이다. 발뿐만 아니라 손으로 만져 보기, 혀로 자연의 맛 찾아보기, 눈으로 자연의 아름다움 찾아보기, 코로 꽃향기·자연의 향기 맡아 보기, 흙에 뒹굴어 보기, 풀밭에 뒹굴어 보기, 흙장난하며 놀기, 물놀이 …… 아이들에게 찾아 주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 (133쪽)
가을볕이 퍽 뜨겁습니다. 마루에 가만히 앉아도 등줄기로 땀이 흐릅니다. 마당에 이불을 내놓으니 아주 잘 마르고, 고우며 따사로운 기운이 듬뿍 뱁니다. 들판을 그득 채운 나락은 가을볕 받으며 누우렇게 잘 익습니다. 이제 시골마을 늙은 흙지기들이 기계를 불러 이 나락을 벨 테지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젊은 딸아들은 한가위를 앞두고 시골마을로 살짝 찾아왔다가 도시로 돌아갈 테고, 시골일은 온통 시골마을 늙은 흙지기 몫으로 남겠지요.
아이들이 ‘재미있는 숙제’를 스스로 하면서 ‘재미있는 삶’을 깨닫도록 이끌 때에 즐겁고 아름다운 삶을 느낀다면, 어른들한테는 ‘재미있는 시골일’을 몸소 하면서 즐겁고 아름다운 삶을 느끼도록 하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한가위 연휴나 휴가를 넘어, 시골마을 가을 들일 하는 ‘가을걷이 휴가’를 얻어야 한달까요. ‘육아 휴가’가 있듯이, 관공서도 학교도 회사도 공장도, 시골마을 가을걷이철에는 모두 시골로 돌아가서 늙은 흙지기 곁에서 기계를 같이 부리든 낫을 손에 쥐든, 바쁜 가을 일손 거들 수 있을 때에, 이 나라에 즐거운 웃음꽃과 아름다운 노래잔치 그득하리라 느껴요.
.. 우리의 옷에 우리의 말이 얼마만큼 씌어 있나 찾아보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그림이 얼마나 그려져 있는지도 찾아보도록 하면 좋겠다. 또 할 수만 있다면 우리 고유의 모양새가 나는 옷과 그렇지 못한 옷을 견주어 조사해 보고 우리 옷의 멋을 깨닫도록 하는 것도 좋겠다. 또 옷에다 우리 스스로 우리말, 우리 그림을 멋있게 그려 넣어 입어 보는 일도 하면 좋겠다 … 보통 아이들은 집에서 어머니가 만들어 주는 음식을 놓고 맛있느니 맛없느니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이때 자기가 직접 만들어 먹게 하면 쓰다 달다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어머니가 어디를 가서 늦게 오거나 며칠 어디에 갔을 때 우두커니 굶고 있지만 말고 스스로 해결할 수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하루 세 끼 먹는 밥쯤은 여자든 남자든 스스로 해 먹을 줄 알아야 하지 않겠나 .. (152, 162쪽)
아이들은 학교에서 재미있게 놀 때에 씩씩하게 자랍니다. 어른들은 일터에서 재미있게 일할 때에 튼튼하게 살림을 꾸립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즐겁게 배우고 가르치면서 맑은 넋 건사할 수 있습니다. 어른들은 마을과 집에서 즐겁게 일하고 놀면서 밝은 꿈 이룰 수 있습니다.
다 함께 먹는 밥입니다. 다 함께 살아가는 지구별입니다. 다 함께 마시는 물입니다. 다 함께 누리는 바람과 햇볕입니다.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물과 바람과 흙 모두 깨끗해야 합니다.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숲이 푸르게 우거져 맑은 노래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거침없이 뛰놀아야지요. 어른들은 스스럼없이 어깨동무하면서 두레도 하고 마을잔치도 벌여야지요. 아이들은 걱정없이 뛰놀아야지요. 어른들은 근심을 내려놓고 서로서로 아끼는 사랑을 꽃피워야지요.
..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베껴 쓰고 외우는 숙제로만 밀어붙이는 것에서 삶터에서, 자연에서 스스로 부딪히면서 온몸으로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숙제로 바꿔야 할 것이다.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국민학교 어린이들에게 그 많고 많은 단편 지식들을 다 집어넣었다 한들 무얼 하겠나. 남보다 더 많이 머릿속에 집어넣어 시험점수를 잘 받았더라도 그런 단편 지식들은 얼마 가지 않아서 쓸모없게 되기도 하고, 자라면서 저절로 알게 되는 것도 많다 .. (245쪽)
보름달 곁에 별빛이 곱습니다. 뭇별 곁에서 달빛이 한결 환합니다. 구름이 흐르는 하늘빛이 티없이 파랗습니다. 다슬기 살아가는 도랑물 둘레에서 개똥벌레 불춤을 곱다라니 춥니다. 논자락 곁에서 달개비꽃과 고들빼기꽃 사이좋게 어우러집니다. 숲길에는 쑥부쟁이 한들거리고, 가을 한복판에도 달맞이꽃은 노란 꽃망울 터뜨립니다. 동백나무는 동백열매를 맺고, 아주 천천히 꽃봉오리 맺으려고 조금씩 조금씩 기운을 그러모읍니다. 이듬해에 피어날 동백꽃 봉오리는 요즈막에 조그맣게 자랍니다.
시멘트 건물에 갇힌 채 10대를 보내야 하는 아이들은 아무것도 못 배웁니다. 시멘트 건물에서 풀려나 들을 달리고 바다와 내를 가로지르며 숲에서 푸른 숨을 마시는 아이들은 온누리를 골고루 배웁니다. 도서관에 깃든 책은 숲에서 이루어진 이야기를 옮긴 몇 가지일 뿐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게 살아요. 아이들과 나란히 즐겁게 살아요. 아이들과 손을 맞잡고 들노래 숲노래 바다노래 하늘노래 흙노래 꽃노래 풀노래 나무노래 불러요. ‘숙제’라는 굴레를 내려놓으면, 시나브로 슬기와 꿈과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4346.9.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