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모독
박미현 지음 / 문학의전당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시를 노래하는 시 59

 


재미있게 살아가는 길
― 일상에 대한 모독
 박미현 글
 문학의전당 펴냄, 2011.11.17. 8000원

 


  한가위 보름달은 아주 밝습니다. 한가위가 아니더라도 보름달은 늘 밝아, 보름달빛 받으며 들길에 서거나 마당에 서면, 먼 옛날 사람들은 달빛을 보며 책을 읽을 수 있었겠다고 느낍니다. 요즈음도 시골마을에서는 달빛이 이리도 환하니, 공장이나 발전소나 고속도로나 골프장이나 산업시설이나 관광시설 하나 없었을 지난날 시골마을이라면 훨씬 더 달빛이 밝았으리라 생각해요.


  며칠 뒤 만날 한가위 보름달을 생각하다가, 엊저녁과 오늘 새벽에 밤별을 올려다봅니다. 달이 없는 밤하늘 별빛이 무척 곱습니다. 밤하늘에 구름 한 조각 없어 별빛은 더욱 눈부십니다. 어슴프레한 빛이 차츰 가시는 새벽에도 아직 별빛이 몇 초롱초롱 남습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달빛이 밝고 환한 한가위 보름날이라 한다면, 달이 아직 안 뜨거나 달이 진 밤에는 별빛 또한 무척 밝고 환하겠다고. 이런 날에는 달도 달 구경이지만, 별 구경 실컷 하면서 저 길고 어여쁜 미리내를 노래할 만하겠다고.


.. 뒤에서 클랙슨이 울린다 / 얼떨결에 창문을 내린다 / 안 들어가고 뭐하는 겁니까? / 사내의 거친 숨이 차 안으로 쏟아진다 / 누구는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서 있어요, 길을 비켜줘야 들어가지요 / 아니 들어가야 비켜주지, 누가 비켜 줍니까! ..  (그럴 때가 있다)


  새벽별 바라보며 아이들 이불깃 여미는데, 어느새 날이 밝습니다. 늦여름까지 저물고 첫가을로 접어든 구월 둘째 주입니다. 늦여름까지만 하더라도 새벽 다섯 시 반이면 날이 훤했는데, 구월 한복판으로 접어드니 새벽 여섯 시가 되어야 비로소 날이 훤합니다. 앞으로 시월이 되면 새벽 여섯 시 반이 넘어야 비로소 날이 훤할 테고, 십일월이나 십이월에는 아침 일곱 시를 훨씬 넘길 적에 바야흐로 날이 훤하겠지요.


  대청마루를 거쳐 집안으로 스미는 빛을 바라봅니다. 이 빛은 마루로도 부엌으로도, 아이들 자는 이부자리로도 스밉니다. 아이들은 해 넘어간 저녁에 잠들어서, 해 오르는 아침에 일어납니다. 아이들은 한여름에는 새벽 다섯 시 무렵에도 일어나곤 합니다. 한여름에는 새벽 네 시 반 무렵부터 날이 훤한 터라, 아이들로서는 다섯 시가 되든 여섯 시가 되든 똑같다고 여겨요. 그냥 일어나서 그냥 놀아요.


.. 늦은 밤 / 매미가 집 앞에 와서 운다 // 딸아이는 시끄럽다고 귀를 막는다 ..  (매미 경전)


  아침에 일어난 아이들은 저녁에 잠들기까지 쉬지 않습니다. 아이들 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면, 등허리를 바닥에 댈 때에는 까무룩 잠들지만, 등허리가 꼿꼿하게 서는 동안에는 이리 달리고 저리 뛰면서 무엇이든 신납니다.


  강아지풀 하나뿐 아니라 괭이밥 조그마한 꽃송이 하나로도 신납니다. 봄날에는 봄까지꽃 뜯으며 놀고, 봄까지꽃에 이어 꽃마리를 꺾으며 놀다가, 유채꽃 끊어 놀더니, 어느새 찔레꽃이랑 딸기꽃을 따며 놉니다. 이동안 마당과 마을에 흐드러진 동백꽃 소담스러운 송이를 주워 새삼스레 놀고, 후박 열매 익는 모습 가만히 바라봅니다.


  아이도 어른도 한해살이는 꽃과 함께 보냅니다. 늦여름과 첫가을 밝히는 고들빼기꽃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 바라보며 방긋방긋 웃습니다. 고들빼기꽃 곁에서 하얗게 잔치를 이루는 부추꽃 쳐다보며 싱긋싱긋 웃습니다.


  웃고 싶으니 웃어요. 놀고 싶으니 놀아요. 사랑하고 싶은 사람은 사랑을 하고, 꿈을 꾸고 싶은 사람은 꿈을 꿉니다.


.. 남편이 위에서 힘을 쓴다 // 결혼하고 아이 낳고 지금까지 / 이 힘을 받으면서 살아 온 셈인데 / 삼시 세 때 거르지 않고 치장하며 산 것인데 // 젖 먹던 힘까지 다 써도 / 남편은 잘 서지 않는 눈치다 // 내가 여자를 주장하듯 / 남편도 힘 꽤나 쓰는 남자이고 싶은 것인데 / 이 순간만은 세상의 질투 다 잊고 / 상위가 된 것인데 ..  (남편)


  재미있게 살아가려는 생각을 품으면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즐겁게 살아가려는 생각을 키우면 즐겁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생각하는 결대로 살아갑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한 결대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아름다운 빛을 가슴에 담기에, 이 빛이 새록새록 자라 아름다운 사랑으로 거듭납니다. 따사로운 빛을 마음에 싣기에, 이 빛이 차츰차츰 자라 따사로운 사랑으로 드러나요.


  더 낫거나 더 좋거나 더 나쁘거나 더 궂은 일이란 없습니다. 모든 일은 스스로 불러들입니다. 모든 삶은 스스로 가장 기쁘게 맞아들입니다.


  상품으로 내다 팔 만하지 못하기에 너른 밭(농장)에다가 다시 감자를 쏟아부어 버리는 프랑스 밭지기(농장 주인)처럼,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일은 못 합니다. 수만 수십만 평에 이르는 너른 감자밭에서 기계로 감자를 거두지, 손으로 하나하나 캐지 못해요. 손으로 캐지 못한 감자는 감자밭에 고스란히 버려지고, 상품이 못 되는 감자도 또 그냥 버릴 뿐입니다. 이 감자를 이웃한테 즐거이 선물하지 못해요. 이 감자를 가난하거나 배고픈 이웃한테 넉넉히 나누어 주지 못해요. 처음부터 이런 데까지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이는 한국에서도 똑같이 일어나요. 한국에서도 그냥 버리는 곡식과 열매가 얼마나 많을까요. 한국에서는 밥쓰레기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가요. 알맞게 먹고 알맞게 쓰며 알맞게 나누는 삶이 한국에서는 어느 만큼 이루어지는가요.


.. 계단을 내려오다 발을 삐끗해서 침 맞으러 가는 아이와 동행하면서 시험을 앞두고 풀이 죽어 있는 아이를 부축하면서 아이를 부축할 수 있다는 행복감을 느끼면서 아이에게 말한다 ..  (동가식서가숙)


  나라에 추징 세금 몇 천억 원 내야 하는 ㅈ씨는 참으로 가엾습니다. 그런데, 이런 세금을 처음부터 씩씩하게 내놓았으면 ㅈ씨 삶은 사뭇 달라졌겠지요. 그리고, 이런 세금을 처음부터 안 낼 수 있게끔 검은돈 몰래 빼돌리지 않았으면 ㅈ씨 삶은 아주 사랑스레 빛났을 테지요. 권력을 붙잡았대서 권력을 누리니까 바보스럽게 되고 말아요. 권력을 붙잡았으니 권력을 버리고는 아름다운 삶 이루어지는 길을 걸었으면 더없이 아름다웠을 텐데요.


  총을 들었으면 내려놓을 노릇이에요. 칼을 쥐었으면 무나 배추를 썰 노릇이에요. 총으로는 평화를 지키지 못해요. 칼로는 사랑을 나누지 못해요. 그런데, 총은 녹여서 호미와 쟁기로 바꿀 수 있어요. 칼은 도마질 살뜰히 하면서 맛난 밥 차리는 부엌 연장으로 삼을 수 있어요.


  생각하는 삶일 때에 즐거워요. 참된 사랑을 생각하고, 참다운 꿈을 생각할 때에 즐거워요. 총을 들고 윽박지르는 평화가 아니라, 총과 탱크와 전투기와 미사일 모두 녹여 지구별 넉넉하게 살찌우는 따스한 평화로 가야 아름다워요. 칼을 휘두르는 평화가 아니라, 칼로 나물을 다듬고 칼로 부엌일을 하는 살림살이 밝히는 웃음으로 가야 아름답지요.


.. 남편이 남의 편이 된 / 친구 생각이 난다 // 사는 일이 바빠 / 작년에도 못 봤는데 / 혼자 아이 키우면서 / 친구는 어떻게 살까? ..  (생각)


  박미현 님 시집 《일상에 대한 모독》(문학의전당,2011)을 읽습니다. 박미현 님은 어떤 삶 일구는 사람일까요. 아이 낳고 남편 돌보며 살림 도맡던 아주머니일까요. 그러면, 아이를 낳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남편을 돌보는 삶이란 무엇인가요. 살림을 도맡는 아주머니 길이란 어떤 삶이 될까요.


.. 유난히 긴 봄 내내 / 동네 골목을 지나 산 속으로 걸었다 / 내가 꽃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우리 집 두 아이 건사하고 돌보는 하루를 누리며 찬찬히 시를 읽습니다. 아이들하고 놀다가, 아이들하고 그림을 그리다가, 아이들 밥을 차려서 먹이다가, 아이들을 씻기다가, 아이들 옷을 갈아입히다가, 아이들 옷을 빨래하다가, 아이들 옷을 다 말려 개다가, 아이들 얼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아이들 업고 안다가, 아이들 잠자리에 눕혀 자장노래를 부르다가, 틈을 조금씩 쪼개어 시를 읽습니다.


  나는 시골마을 조그마한 집에서 살림을 꾸리는 어버이인 터라, 전철길이나 버스길에서 시를 읽지 않습니다. 나는 시골마을 작은 집에서 아이들이랑 자전거 타고 마실을 다니는 어버이인 만큼, 다리쉼을 하는 사이 살짝 시를 읽습니다. 아이들과 마을 빨래터 물이끼 걷어내는 청소를 하며 놀다가, 아이들이 한창 물놀이에 빠져들면 슬그머니 시집 한 권 꺼내어 몇 줄 읽습니다.


.. 겨울 들판에 서면 / 향기롭게 살지 않았어도 / 죽을 수도 있겠다 싶다 // 다시, / 꽃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  (겨울 들판에 서면)


  아이들은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자랍니다. 어른들은 사랑을 베풀면서 웃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물려받으면서 슬기롭습니다. 어른들은 사랑을 물려주면서 살림을 빛냅니다.


  문학을 붙잡는다고 문학이 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삶을 붙잡으면 고스란히 삶이 이루어지고, 삶이 이루어지는 자리에서 시나브로 문학이 깨어난다고 느낍니다. 예술을 거머쥔다고 예술이 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삶을 아끼면 고스란히 삶이 깨어나고, 삶이 깨어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예술이 꽃필 수 있다고 느낍니다.


  이론으로 쓰는 시는 ‘이론’일 뿐, ‘시’도 ‘문학’도 아닙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잘 알 수 있어요. 밥을 지을 적에, 쌀알 숫자를 하나씩 세지 않아요. 쌀을 씻을 적에 물을 몇 밀리리터 담아서 헹구어야 하는지 따지지 않아요. 밥을 지을 적에 몇 분 몇 초로 재지 않아요. 밥그릇에 밥을 풀 적에 주걱에 몇 알을 퍼서 그릇에 몇 알 담아야 하는가를 가누지 않아요.


  시골마을에서 사랑으로 볍씨를 심어 쌀을 얻어요. 다 다른 보금자리에서 다 다른 살림꾼이 다 다른 사랑을 담아 밥을 지어요. 사랑으로 지어 사랑으로 차리는 밥이에요. 사랑으로 짓고 사랑으로 읽는 글이요 문학이며 시입니다.


.. 내가 만난 사람들은 / 친구였다 / 꽃이였다 / 별이였다 // 내가 만난 사람들은 / 동지였다 / 숲이였다 / 길이였다 // 내가 만난 사람들은 / 쓰리고 아픈, / 바로 / 나였다 ..  (인연)


  전문가나 학자나 평론가나 이론가는, 아마 ‘조선시대 요리법’이나 ‘고려시대 요리법’을 나누겠지요. 앞으로 2500년대나 3000년대가 되면, 뒷날 학자나 전문가나 역사가는 오늘 2010년대 밥짓기를 놓고 ‘2010년대 요리법’이라는 꼬리표를 붙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였든 고려시대였든 2010년대인 오늘이든, 또 먼먼 단군시대였든, 여느 살림집 여느 살림꾼은 사랑으로 밥을 차려 사랑으로 한 끼니 즐깁니다. 민요도 노동요도 유행가도 아닌 노래를 부르는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이 부르는 노래란 모두 우리 삶입니다. 우리들이 부르는 노래에 깃드는 삶이란 우리들이 저마다 마음속으로 빌고 바라며 꿈꾸는 사랑입니다. 4346.9.1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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