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길그림

 


  서울시에서 ‘헌책방 지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서울도서관 누리집에서 ‘서울 시내 헌책방 지도’를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새삼스럽게 옛일이 떠오른다. 나는 1995년부터 내 나름대로 ‘헌책방 길그림’을 그렸다. 말과 글로 ‘이렇게 저렇게 찾아가면 만날 수 있어요’ 하고 알려주면 꼭 못 찾아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부디 길을 잃지 않기를 바라면서 차근차근 길그림을 그렸다. 1998년부터는 ‘헌책방 사진’을 찍어서 책방 앞 모습을 보여주면 더 잘 찾아갈 수 있으리라 여겼다. 2004년에 내놓은 《모든 책은 헌책이다》에는 그동안 그렸던 헌책방 길그림이 여러 장 깃들었다. ‘헌책방 길그림’은 2010년까지 그리다가 이제 더는 안 그린다. 요사이는 집주소를 알면 네비게이션으로 길찾기를 해 준다고 하니까, 굳이 ‘헌책방 길그림’을 안 그려도 되겠다고 느낀다.


  ‘헌책방 길그림’을 처음 그려서 나누어 주던 때를 떠올려 본다. 그무렵 헌책방 일꾼들은 내가 그려서 건네는 길그림을 무척 싫어했다. 왜냐하면, 길그림에는 헌책방 한 곳만 나오지 않고, 이웃 헌책방이 모두 나오기 때문이다. 헌책방에 찾아오는 분들한테 나누어 주십사 하고 잔뜩 복사해서 헌책방마다 갖다 놓곤 했지만, 내 ‘헌책방 길그림’을 잘 챙겨서 나누어 주는 헌책방은 몇 곳 없었다. 헌책방을 드나드는 책손도 내 길그림을 그리 눈여겨보지 않았다. 외려, ‘수집가’들이 이 길그림이 나중에 ‘돈이 되리’라 여겨 여러 장 챙기곤 했다. 그러나, 수집가들이 먼 앞날 돈을 바라며 이 길그림을 모은다 하더라도, 틀림없이 이 길그림을 기다리거나 바라며 여러 마을 여러 헌책방 찾아다니는 책손이 있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헌책방 길그림’에 이어 ‘헌책방 이름쪽’을 하나씩 모아서, 서울 노고산동(이제는 신촌으로 옮긴) 헌책방 〈숨어있는 책〉 책꽂이 한쪽에 죽 붙이곤 했다. 미처 ‘헌책방 길그림’ 못 그린 헌책방은, 이 이름쪽에 적힌 전화번호와 주소를 살펴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2006년에 《헌책방에서 보낸 1년》이라는 책을 내놓을 적에는 ‘전국 헌책방 목록’을 권말부록으로 실었다. 문을 닫은 헌책방 이름도 함께 실었다.


  1995∼2010년 사이에 내가 ‘헌책방 길그림’을 그리는 데 드는 밑돈이나 품을 도울 만한 기관이나 단체가 있었으면 어떠했을까. 그러면, 일찌감치 ‘서울 헌책방 길그림’과 ‘전국 헌책방 길그림’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기관이나 단체는 만나지 못했다. 내 가벼운 주머니를 털 수 있는 만큼 털어 쉰 장이건 서른 장이건 복사해서 헌책방마다 갖다 드리곤 했다. 이렇게 ‘길그림 그리기’를 예닐곱 해쯤 하고 나니, 예전에는 이 길그림을 싫어하시던 분들도 고이 모아 놓고는 이녁 헌책방 단골한테 건네곤 했다.


  부디 서울시나 서울도서관이 ‘헌책방 길그림’을 알뜰히 마무리지을 수 있기를 빈다. 그리고, 이 길그림을 종이로도 만들어 관광안내소에 넉넉히 두면서, 서울마실 오는 이들이 즐거이 책방마실 누릴 수 있도록 이끌어 주기를 빈다. 한 마디 붙이자면, 길그림은 예쁘게 그려야 한다. 책방도 책도 모두 예쁜 만큼, 길그림에 예쁜 빛 듬뿍 서리기를 빈다. 4346.9.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예전에 그린 길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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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9-05 18:33   좋아요 0 | URL
오늘 함께살기님 '헌책방 길그림' 글 덕분에 서울 도서관에서 '서울 헌책방 지도' 찾아보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헌책방, '책 백화점' 즐거운 마실 다녀왔습니다~
하도 오랫만에 가서 그런지 처음에는 무엇부터 보아야할까 좀 헤매다가 그런대로 이 책 저 책 잘 펼쳐보고 몇 권 골라왔어요~ 다음에 갈 때에는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머물다 오려 합니다~

서울 도서관, '서울 헌책방 지도' 첨부파일에는 헌책방 리스트와 지도로 찾기만 나와 있어
조금 아쉽기도 했습니다. 정말 예쁜 길그림도 나왔으면 합니다~

숲노래 2013-09-05 20:05   좋아요 0 | URL
오~ 그러셨군요.

어느 헌책방이라고 아름답지 않겠느냐만,
용산 뿌리서점
신촌 숨어있는책
노량진 책방진호
회기역 책나라
독립문 골목책방
홍제동 기억속의서가
연대 앞 정은서점
같은 데를 한 군데씩 찾아가 보셔요.
그야말로 '책에 새롭게 눈을 뜨실' 수 있어요.

서울도서관 지도에는 '안 나온 헌책방'이 꽤 많답니다~
이 댓글에 그걸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카스피 2013-09-05 20:33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한참 헌책방을 다닐적에 동내문 헌책방만 다닌적이 있지요.우연찮게 헌책관련 사이트에서 헌책방 길그림을 보고 전국 대부분(강원,경남제외)..제주도 한밭서점까지 다닌 기억이 있는데 그 지도중에는 사진속 숨책에 붙었던 함께살기님의 길그림이 상당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지금은 지도속의 많은 헌책방들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서 안타깝더군요.사라지는 책방들은 많은데 새로 생기는 책방들은 거의 없으니까요.
근데 가끔알라딘이니 예스24의 중고샵들을 보다보면 예전에 들렸던 헌책방 이름들이 있는것으로 보아 대부분 오프라인 서점을 접고 온라인만 주력하시는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댓글에 적으신 책방들은 다 알겠는데 홍제동 기억속의 서가란 서점은 처음 듣는것 같습니다.어딘지 좀 알려주세요^^

숲노래 2013-09-05 20:54   좋아요 0 | URL
가게 임대료가 높아서
매장 영업이 힘들다고 느끼는 분 많아요.

사람들이 책을 보러 마실을 안 다니고
인터넷만 켜니까요.

<기억속의 서가>는
<대양서점 2매장> 사장님이 이름을 새로 붙여
완전히 독립해서 연 헌책방입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이제는 다 잘 나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