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 님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아직 미야자키 하야오 만화영화가 정식 개봉이 되지 못하던 때에, 가까이 아는 분한테서 얻은 디브이디로 〈이웃집 토토로〉를 보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그릴 줄 아는 사람이 있구나’ 하면서 놀랐다. 한국말 아닌 일본말로 된 디브이디를 보며, ‘아름다운 이야기’는 서로 쓰는 말이 달라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구나 하고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여섯 살 세 살 두 아이와 살아오면서 아이들과 함께 ‘한국말로 된’ 〈이웃집 토토로〉를 비롯해 〈센과 치히로〉에다가 〈코난〉과 〈하이디〉를 수없이 다시 본다. 다시 볼 적마다 참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렸구나 하고 깨닫는다. 그렇지만,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 님 작품에서 언제나 몇 대목이 아리송했다. 아니, 아리송하다기보다, 깊이 파고들거나 넓게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녁은 대단한 사람이기는 하되, 훌륭한 사람은 못 되고, 사랑스러운 사람도 못 되며, 믿음직한 사람도 못 되지 않느냐 하고 생각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님은 요즈음에 새로 내놓은 〈바람이 분다〉라는 작품을 놓고, ‘전쟁 비판’이나 ‘군국주의 비판’을 대놓고 말해야 하지 않다고 이녁 인터뷰 글마다 거듭 밝힌다. 이러면서, “일본은 가난하다” 하는 이야기를 〈바람이 분다〉에 자주 넣은 까닭은 ‘오늘날 아이들이 물질문명사회에서 무너지는 꼴을 볼 수 없다’는 뜻에다가 ‘상업주의 비판’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왜 ‘전쟁 비판’과 ‘군국주의 비판’은 할 수 없을까? ‘전쟁 비판’은 ‘다큐멘터리에서나 할 얘기’라고 미야자키 하야오 님이 인터뷰 글에서 밝히는데(서면 인터뷰), ‘물질문명 소비중심사회 비판’과 ‘상업주의 비판’은 만화영화에 넣어도 되고, ‘전쟁 비판’은 만화영화에 넣으면 안 되는가?


  데즈카 오사무 님이 그린 〈아톰〉을 보면 싸움과 전쟁 이야기가 지나치게 자주 나온다. 아무래도 1950∼60년대 일본 사회는 군국주의 전쟁 뒤끝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이 끔찍한 전쟁과 물질문명을 제대로 비판하고 드러내려는 뜻에서 참 지나치게 싸움과 전쟁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비판’했다고 느낀다. 그래서, 이런 대목에서 〈아톰〉은 2010년대 요즈음 아이들한테 보여주기에 살짝 어렵다고 할 만하다. 그러면 〈코난〉은? 〈나우시카〉는? 〈원령공주〉는? 이러한 작품에 나오는 싸움과 전쟁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왜 미야자키 하야오 님은 다른 작품에서는, 또 〈붉은 돼지〉에서도 싸움과 전쟁이 얽힌 대목을 보여주면서 〈바람이 분다〉가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와 전쟁 미화’로 흐르는 줄거리를 핑계로만 덮어씌우려고 할까. 그러나, 그동안 미야자키 하야오 님이 내놓은 작품에서 나오는 싸움과 전쟁을 살피면, 미야자키 하야오 님은 싸움과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게 사람을 망가뜨리고 지구별을 무너뜨리는가를 잘 못 느끼지 싶다. 흙을 만지고 아이들 사랑하던 여느 젊은이가 전쟁터에서 총을 손에 쥐면 살인기계 되는 끔찍한 삶을 뼛속 깊이 느끼지는 못했구나 싶다. 사람이 죽는 일과 사람을 죽이는 일, 또 숲을 무너뜨리는 일과 지구별을 어지럽히는 일을 마음 깊이 느끼지는 못했다고 본다.


  남자와 여자 사이 사랑을 애틋하게 그리는 일이 ‘나쁠’ 까닭이 없다. 전쟁통에도 사랑은 싹텄고, 전쟁통에도 아이들은 태어났다. 그래, 전쟁통이건, 제국주의이건 군국주의이건 식민지이건, 사랑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 이러한 작품을 왜 그리는가? 제국주의도 군국주의도 싸움도 전쟁도 ‘미화’를 하고 마는 작품을 왜 그리는가? 미야자키 하야오 님은 일본 아이들이 ‘도시 산업사회 물질문명’에 젖어들어 바보스럽거나 어리석거나 버르장머리없거나 엉터리로 자라는 모습을 ‘느껴’ ‘비판해야겠구나’ 하고 느끼는 가슴은 있지만,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전쟁이 사람들 마음과 꿈과 사랑을 얼마나 어지럽히거나 무너뜨리거나 죽이거나 짓밟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본다.


  데즈카 오사무 님 작품을 보면, 첫 작품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싸움·전쟁·폭력’을 아주 끔찍하게 싫어하면서 비판하는 이야기가 넘친다. 〈레오〉와 〈블랙잭〉과 〈불새〉와 〈사파이어 왕자〉에도 이러한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이 흐른다. 그리고, 데즈카 오사무 님 모든 작품도 고갱이는 ‘사랑’이다. 사람이 사랑스럽게 살아갈 길을 밝히려고 데즈카 오사무 님은 ‘싸움·전쟁·폭력’을 비판하되, ‘싸움·전쟁·폭력’이 없는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하는 대목을 함께 노래하면서 그렸다.


  참말 바람이 분다. 여름바람에 이어 가을바람이 분다. 아무쪼록, 미야자키 하야오 님이 싱그러운 가을바람을 쐬면서, 이 바람에 묻어나는 나락내음 풀내음 햇살내음 흙내음 고이 느껴, 이녁 만화영화에 따사롭고 맑게 그려낼 수 있기를 빈다.


  부지런히 일했대서 훌륭할 수 없다. ‘대단할’ 수는 있겠지. 전쟁무기를 부지런히 많이 만든 사람을 놓고 ‘훌륭하다’거나 ‘사랑스럽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엄청난 숫자 앞에서 ‘대단하네’ 하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독일 나치도, 일본 군국주의도 ‘대단하게’ 사람들을 죽이고 지구별 평화를 어지럽혔다. 미야자키 하야오 님은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만들 노릇이 아니라, ‘사랑과 평화’로 작품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4346.8.2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람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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