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학교에 보내야?
여섯 살 큰아이와 세 살 작은아이는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유아원도 보육원도 다니지 않는다. 언제나 저희 어버이와 함께 지낸다. 두 아이는 어머니 아버지하고 늘 함께 살아간다. 이 아이들은 앞으로 초등학교나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갈 일이 없으리라 느낀다. 아이들이 바란다면야 갈 수 있으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흐름을 살피면, 아이들이 스스로 우뚝 서면서 밥과 옷과 집을 씩씩하게 건사하는 삶을 듣거나 얻거나 나눌 수 없는 한국 사회이다. 학교는 아이들한테 시험공부만 시킨다. 학교는 아이들한테 ‘어른 말 잘 듣게 길들이는 훈련’만 시킨다. 학교는 아이들끼리 서로 다투거나 치고받으면서 밟고 올라서도록 내몬다. 학교는 아이들을 못 놀게 닦달한다. 학교는 아이들한테 겉치레와 겉꾸밈에 사로잡히도록 부추긴다.
아마, 요즈음 어버이 가운데 이런 학교 모습을 모르는 분은 드물지 싶다. 그렇지만 막상 이런 학교 모습을 바로잡거나 고치려고 애쓰지 못한다. 이런 학교 모습에 그냥 맞추고 만다. 이런 학교 모습이라 하더라도 ‘기초교육인데’라든지 ‘의무교육인데’라는 말을 하면서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만다.
교육이란 무엇일까. 어버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삶이란 무엇일까. 우리 어른들은 아이를 낳기만 하면 되나.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느끼고 누리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도록 할 때에 아름다운 삶을 일굴 수 있을까.
아이들을 망가뜨리는 제도권 학교교육인데, 그냥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 아이들은 몽땅 망가지고야 만다. 아이들을 믿기만 해서는 안 될 노릇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더라도 어른들은 집에서 아이들과 오랫동안 서로 마주보면서 ‘사람답게 살아갈 길’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집에서 어버이가 아이와 함께 놀고, 집에서 어버이가 아이한테 삶을 보여주며, 집에서 어버이가 아이하고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책을 함께 읽거나 생각을 조곤조곤 나누면서 지낼 수 있어야 한다.
여느 제도권 학교에 다니더라도 슬기로움을 잃지 않는 아이가 있다면, 이 아이 어버이는 집에서 ‘집 교육’을 올바르며 참답고 아름답게 잘 하기 때문이라고 느낀다. 제도권 아닌 대안교육 펼치는 학교에 다니더라도 집에서 ‘집 교육’을 올바르거나 참답거나 아름답게 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씩씩하거나 튼튼하게 자라지 못한다고 느낀다.
아이들은 ‘그냥 학교에 다녀’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그냥 낳아’서는 안 된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거나 집에서 함께 지내거나, 깊이 생각하고 살피면서 다 함께 즐겁게 놀고 일하며 어우러지는 삶을 누려야 한다.
삶이 있을 때에 교육이 이루어진다. 삶이 있을 때에 사랑이 싹튼다. 삶이 있을 때에 이야기가 샘솟는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더라도 입시교육에 휘둘리거나 길들이지 않도록 마음을 쏟는 어버이나 어른이 되기를 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집에서 가르치고 돌보면서 아이도 어른도 슬기로우면서 착하고 참다운 길 아름답게 걸어가는 삶을 생각한다. 4346.8.1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