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이원수 문학 시리즈 1
이원수 글 이상권 외 그림 / 웅진주니어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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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21

 


나무와 이야기하는 아이들
―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이원수 글
 웅진주니어 펴냄,1998.9.25./7000원

 


  풀벌레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차츰차츰 깊고 크며 넓은 소리가 내 품으로 스며듭니다. 처음에는 몇 마리 노래가 들리고, 이윽고 왼쪽 오른쪽 뒤쪽에서도 노래가 울리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곧이어 나를 둘러싼 이 시골집 둘레를 빙 감돌면서 밤노래 그윽하게 퍼지는구나 하고 깨달아요.


  풀벌레는 이녁 밤노래를 가만히 귀를 기울여 듣는 사람이 있는 줄 알고 한결 힘차며 맑은 소리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사람과 풀벌레과 입과 입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지는 않습니다. 사람과 풀벌레는 마음과 마음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아요. 네 노래 참 곱네 하고 마음으로 이야기를 건네면, 그럼 이렇게 고운 노래 모두 기쁘게 들으며 아름답게 생각을 가꾸기를 바라는걸, 하고 대꾸합니다.


.. 내 동생 언 손은 / 호오 호오 호오 / 내가 불어 주지요 ..  (해님)


  해 떨어진 저녁나절, 대청마루에 두 아이 옆에 나란히 앉힌 뒤 풀노래를 듣습니다. 풀노래란, 풀벌레 노래와 풀잎 노래입니다. 밤바람이 풀잎을 간질이며 내는 소리에다가 풀잎 사이사이 깃든 풀벌레가 내놓는 소리가 어우러질 때에 풀노래 됩니다.


  나무노래라 한다면, 바람이 나뭇잎을 살랑이면서 나뭇가지를 흔들 적에 나는 소리에다가, 나무에 깃드는 멧새가 쩌렁쩌렁 울리듯 들려주는 소리를 더합니다. 봄에는 봄대로, 여름에는 여름대로, 가을에는 가을대로, 겨울에는 겨울대로, 풀노래와 나무노래 결과 빛이 달라요. 소리와 맛이 다릅니다. 하루 내내 이 소리를 들으면서 이 노래를 마음으로 담을 수 있으면, 누구나 맑은 넋이 되어 밝은 삶 일굴 새 기운 얻으리라 느껴요.


.. 어머니가 안 계실 땐 심심했지만 / 너와 같이 노니까 참 재밌다 ..  (내 동무)


  한밤에 문득 잠을 깨며 고즈넉한 풀노래를 듣습니다. 큰아이는 내 왼쪽에서 달게 자고, 작은아이는 내 오른쪽에서 고단하게 잡니다. 땡볕 더위가 찾아오는 한여름이지만, 오늘은 밤바람 달콤하게 흩날리며 집안 구석구석 어루만집니다. 시원하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아이들 이불깃 여밉니다. 그러고는 다시 풀노래에 귀를 기울입니다.


  엊저녁 아이들 재울 무렵에는 하늘에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와, 마을 어귀 큰길에 자동차 드문드문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어요. 꽤 높은 하늘에서 비행기가 지나갈 텐데, 퍽 높은 하늘을 지나가더라도 마을에서는 이 소리가 들리는군요. 아마 제주에서 여수 사이 지나가는 비행기이지 싶어요. 그러지 않고서야 고흥 하늘을 가로지를 비행기는 없을 테니까요.


  비행기에 탄 사람은 비행기 지나갈 적마다 땅에서는 시끄럽구나 하고 느끼는 줄 얼마나 헤아릴까 궁금합니다. 아니, 이런 소리를 헤아릴 겨를이 없을는지 모릅니다. 비행기를 타면 비행기 소리로 귀가 먹먹할 테니까요.


  기차를 타면 기차 소리가 귀를 가득 채웁니다. 버스를 타면 버스 소리가 그득하고, 자동차를 타면 자동차 소리가 그득해요. 기차나 버스나 자동차 지나가며 내는 소리가 마을과 숲과 냇물에 어떻게 스며드는가를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 오빠는 꽉꽉 밟으라지만 / 보리가 아플까 봐 살금살금…… // 먼 먼 하늘엔 쬐끄만 해가 / 우리 그림자 길게 길게 / 눌려 주면서 / 잘 한다, 잘 밟는다 / 눈짓을 하네. // 이 추운 겨울에 / 파아란 보리. / 얼지 말고 병 없이 / 잘만 크거라. / 따순 봄, 더운 여름 / 그 때까지 ..  (겨울 보리)


  고속도로가 마을 한 곳 가로지르면, 마을사람은 살기 팍팍합니다. 늘 자동차 달리는 소리에 시달려야 합니다. 사람도 새된 자동차 소리에 시달리고, 풀과 나무와 벌레와 새 모두 자동차 소리에 시달리지요. 목숨을 살린다거나 숨결을 북돋우는 소리가 아닌 자동차 소리예요. 아기를 달게 재우거나 아이들 고단히 보듬을 만한 자동차 소리가 아니에요.


  달팽이도 개구리도 미나리도 보리도 자동차 소리를 달가이 여기지 않습니다. 바람이 들려주는 소리라면 달팽이도 개구리도 미나리도 보리도 달가이 여길 테지요. 참새가 비둘기가 까치가, 파랑호반새가 노랑조롱이가 종달새가, 멧새와 들새 모두가 즐기거나 사랑할 만한 소리를 헤아려 봐요.


  고속도로 곁 배밭에서 배가 무럭무럭 자랄까요, 깊은 멧골 배밭에서 배가 무럭무럭 자랄까요. 따순 손길 받는 푸성귀하고 아무 손길 못 받는 푸성귀하고, 어느 쪽이 살뜰히 자랄까요. 예쁘네 소리 듣는 꽃송이와 아무런 귀여움 못 받는 꽃송이하고, 어느 쪽이 맑게 봉오리 벌릴까요.


.. 더운 김 푹푹 찌는 벼논 한가우데 / 땀에 젖은 작업복 등만 보이며 / 혼자서 허리 굽혀 논 매는 아버지 // 발자국 옮길 때마다 나는 / 찰부락 찰부락 물 소리뿐이네. // 도시락 쳐들고 / 아버지를 불러도 / 흘긋 한 번 돌아보고 논만 매시네 ..  (대낮의 소리)


  나무와 이야기하는 아이들입니다. 입이 아닌 마음으로 생각을 주고받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이야기하고, 구름과 속삭이며, 흙알갱이 하나와 도란도란 지내는 아이들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면 서로 반가우면서 즐겁습니다. 마음과 마음으로 사귀면서 다 함께 어깨동무를 합니다.


  어른들도 나무와 이야기할 수 있어요. 아이들만 나무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어른들도 풀잎 하나와 이야기할 만하고, 꽃송이 하나와 이야기 주고받을 만합니다.

  자, 이야기를 즐겨 보셔요. 나무하고 이야기를 즐길 줄 아는 어른이라면, 나뭇가지 함부로 자르지 않을 테지요. 풀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줄 아는 어른이라면, 풀밭에 자동차 아무렇게나 대지 못할 테며, 풀숲에 농약 마구 뿌리지 못할 테지요.


  농약농사나 비닐농사로 치닫는 까닭은, 시골사람조차 스스로 흙이랑 해님이랑 바람이랑 빗물하고 이야기를 나누지 않기 때문입니다. 흙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셔요. 해님과 구름과 달님과 별님과 이야기를 속삭여 보셔요. 빗붕울과 눈송이와 안개와 아지랑이와 이야기를 주고받아 보셔요. 삶이 달라지리라 생각해요. 삶이 달라지면서 사랑이 새삼스레 샘솟으리라 생각해요.


.. 언니야 언니야 큰 소리로 부르면 / 산에서 그 누가 언니야 언니야. / 엄마야 엄마야 큰 소리로 부르면 / 산에서 그 누가 엄마야 엄마야 // 내 목소리 흉내내는 산 속의 아이 / 흉내만 내지 말고 너도 불러 봐. / 내 이름은 순이야 한번 불러 봐. / 내 이름은 순이야 한번 불러 봐 ..  (메아리)


  이원수 님 시를 읽을 때마다 삶을 새롭게 되새깁니다. 멧골에서 메아리하고 노는 아이 이야기를 돌아보면서, 아이들은, 또 ‘어른으로 자란 아이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하고 헤아립니다.


  시냇물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마음이 될 수 있기에 시냇물과 나눈 이야기를 조곤조곤 싯말 하나로 적바림합니다. 누렁소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뜻이 될 수 있기에 누렁이와 주고받은 이야기를 알뜰살뜰 싯말 하나로 엮습니다.


  시(동시이든 어른시이든)를 쓸 적에는 ‘의인화’이니 ‘비유법’이니 따질 일이 없습니다. 그예 서로 한마음이 되고 한뜻이 되면서 어깨동무를 하면 넉넉합니다. 마음을 읽는 동무가 되면 즐겁습니다. 마음을 나누는 삶지기로 어울리면 아름답습니다.


  시 한 줄은 문학이 아닙니다. 동시 한 줄은 어린이문학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 기쁘게 누리기에 문학이라느니 어린이문학이라느니 하고 이름을 따로 붙이기도 하지만, 시 한 줄은 그저 이야기일 뿐입니다. 동시 한 줄은 그저 사랑일 뿐입니다.


  하늘과 나눈 이야기를 시로 써요. 바다와 주고받은 이야기를 동시로 써요. 문학이라는 틀이라든지 운율이라는 껍데기에 맞춘다고 할 적에는 시도 동시도 문학도 어린이문학도 되지 않습니다. 이럴 때에는 판박이가 될 뿐입니다. 참답게 문학을 하거나 착하게 글을 쓰려 한다면, 삶을 읽고 노래하며 춤추면 됩니다. 살가운 이웃과 사귀면서 반가운 동무와 어깨를 겯고 씩씩하게 삶을 지으면 됩니다.


.. 마알갛니 흐르는 시냇물에 / 발 벗고 찰방찰방 들어가 놀자. // 조약돌 희 모래 발을 간질고 / 잔등엔 햇볕이 따스도 하다. // 송사리 쫓는 마알간 물에 / 꽃이파리 하나 둘 떠내려온다. / 어디서 복사꽃 피었나 보다 ..  (봄 시내)


  이원수 님 동시 가운데 대표작이라 할 만한 글을 가려뽑아서 새로 엮은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웅진주니어,1998)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읽기 좋도록 대표작을 가려뽑아 엮을 수 있을 텐데, 이원수 님 동시는 굳이 가려뽑아서 보여주기보다 모두 푸지게 보여주어도 됩니다. 글 몇 점과 그림 몇 점 엮어서 보여주어야 아이들이 좋아하지는 않아요. 어설피 그린 그림이라면 외려 아이들 생각날개를 꺾습니다. 동시집에 그림을 넣는 ‘어른’도 ‘어린이’ 눈높이에서 생각날개를 펼치면서 훨훨 날아다니며 하늘하고 이야기를 나누듯 그림을 그려야지요.


  이를테면,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에 실린 〈겨울 보리〉에 붙은 그림은 너무 어수룩합니다. ‘보리밟기’를 요즈음 아이들은 안 해요. 예전 아이들이 했지요. 이원수 님 동시를 요즈음 아이들한테 읽히려 한대서 이 시집에 담는 그림을 ‘요즈음 아이들 모습’으로 할 까닭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 시집에 실린 그림을 보면 오빠가 뒷짐을 지고 보리를 밟는데, 꾹꾹 눌러 밟는 보리를 뒷짐 지고 어째 밟을까요? 아이들더러 보리밟기 시킬 때에는 콩콩 뛰면서 밟으라 하곤 합니다. 그냥 밟지 말고 온힘 주어 꾹꾹 밟으라 하지요. 뒷짐 지고 어슬렁거리듯 하면 보리밟기가 아닌 장난질입니다.


  시집간 언니를 그리는 어린 두 아이가 저 먼 멧자락 아래로 지나가는 기차에서 뿜는 연기를 바라보는 그림도 여러모로 어수룩해요. ‘가느다란 연기’ 뿜는다고 하는 싯말 그대로 아주 멀리 떨어진 데에서 애틋하게 그리며 바라보는 동시인데, 그림에서는 높은 데 바로 밑으로 지나가는 기차 그림입니다. 시골에서 도시로 시집간 언니를 그리워하는 아이들 모습도 시골스럽지 않을 뿐더러 애틋한 기운이 안 서리는구나 싶어요.


  어린이책이기에 그림이 꼭 들어가야 하지 않습니다. 어린이책에 넣는 그림이라면 매우 마음을 기울여 찬찬히 넣어야 합니다. 옳게 그리지 못하거나 제대로 담지 못한 그림이라면 아예 아무 그림 없을 적이 한결 낫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생각날개 펼쳐 마음속으로 어떤 모습인가를 그리도록 도와야지 싶습니다. 어수룩하게 집어넣은 사잇그림은 외려 동시읽기를 가로막습니다.


.. 새파란 하늘 밑에 / 파란 잔디밭 / 잔디밭엔 누렁이가 / 혼자 서어서 / 하늘을 쳐다보고 / 매― 매― 웁니다. // “왜 우니, 왜 우니.” / 곁에 가서 물어 봐도 / 대답 없는 어미소 / 커다란 두 눈에 / 눈물만 가득 // 이 꽃이 갖고 싶니 / 이 모자 쓰고 싶니 / 아니 아니 아가소가 / 보고 싶어 울지. // 아가소는 팔려서 / 멀리 멀리 갔는데 / 풀 안 먹고 매― 매― / 울면 뭘 하니. // 빨강 꽃 노랑 꽃 / 머리에 꽂아 줄게 / 누렁아 울지 말고 / 나랑 같이 놀자 ..  (우는 소)


  나는 우리 집 아이들한테 이원수 님 동시에 가락을 입힌 어린이노래를 즐겨 불러 줍니다. 아이들 들으라 부르는 노래인 한편, 어른인 나 스스로 마음을 달래며 보듬고 싶어 부르는 노래입니다. 마음이 섣불리 들뜨지 않도록 다스립니다. 내 이웃과 동무가 누구인가 곰곰이 되새기도록 이끄는 노래입니다. 생각을 천천히 펼치면서 내 마음밭 웃음꽃 피우는 길을 새록새록 떠올립니다.


  새끼 잃은 어미소 마음을 헤아립니다. 어미소하고 헤어진 새끼소 마음을 살핍니다. 어미소 곁에서 빨강 꽃이랑 노랑 꽃을 꺾어다가 머리에 씌워 주려는 아이 마음을 읽습니다. 이러면서 우리 아이들하고 나눌 사랑은 어떤 빛이요 결이며 무늬일 때에 아름다우면서 즐거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어른인 나 스스로 기쁘게 웃음짓는 삶은 어떤 빛이 될까 하고 생각합니다.


.. 얼음 어는 강물이 / 춥지도 않니? / 동동동 떠다니는 / 물오리들아 // 얼음장 위에서도 / 맨발로 노는 / 아장아장 물오리 / 귀여운 새야 // 나도 이젠 찬 바람 / 무섭지 않다. / 오리들아, 이 강에서 / 같이 살자 ..  (겨울 물오리)


  나무와 이야기하는 아이들이듯, 나도 나무와 이야기하는 어른으로 살 때에 즐거우면서 아름답습니다. 오늘은 어른 모습을 하고 두 아이 돌보는 어버이 삶 꾸리지만, 서른 해 앞서는 나도 아이였고 나를 돌보는 어버이 곁에서 사랑을 받아먹으며 무럭무럭 자랐어요. 서른 해 앞서 아이였던 내 모습과 오늘 바로 이곳에서 아이들 어버이로 지내는 내 모습은 다르지 않습니다. 늘 한 올처럼 흐르는 삶입니다. 앞으로도 한 가닥 실처럼 이어지는 삶입니다.


  사랑이 흘러 사랑이 됩니다. 꿈이 흘러 꿈이 됩니다. 빛이 흘러 빛이 되지요. 마음을 다스리는 결에 따라 마음을 살찌우는 결이 환합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우리 시골집 둘레에서 고이 퍼지는 밤노래를 듣습니다. 어떤 풀벌레 풀노래인가 하고 곱씹습니다. 풀노래를 즐기자면 내 시골살이는 어떠한 빛으로 나아가면 될까 하고 생각합니다. 찬 바람을 무섭게 여기지 않고, 꽁꽁 얼어붙은 냇물바닥에서 맨발로 놀아야지 하고 생각한 이원수 님은 이녁 삶을 그대로 시로 담아 아이들한테 나누어 줍니다. 아니, 아이들하고 ‘겨울 물오리’ 마음으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언제까지나 이어지는 사랑 되어 따사로운 숨결로 온누리 아이들 마음 적시는 빛노래 되겠지요. 4346.8.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동시를 어떻게 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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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8-06 16:34   좋아요 0 | URL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어릴 때 자주 부르던 동요가 정답게 생각납니다.^^
감사히 담아갑니다~

숲노래 2013-08-06 17:09   좋아요 0 | URL
즐겁게 읽는 책에서는
즐거운 이야기 샘솟겠지요.

한여름 더위 차츰 식기를 바라는 저녁이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