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받은 시집을 앞가방에 챙겨서
선물받은 시집을 앞가방에 챙겨서 두 아이를 데리고 순천으로 나들이를 간다. 시외버스에서건 어디에서건 살짝 틈을 내어 읽으려 한다. 그러나, 바깥일을 보고 두 아이 건사하느라 첫날은 한 쪽조차 못 펼치고, 이튿날 아침에 겨우 몇 쪽 펼쳤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시외버스에서는 작은아이 무릎에 앉혀 재우면서 나도 곯아떨어지느라 바빠 더는 못 읽는다. 그나마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풀면서 ‘아, 쉽게 꺼낼 수 있도록 앞가방에 시집을 넣고 나들이를 나왔네.’ 하고 깨닫는다.
아이가 하나만 있던 때에도 나들이 다니면서 책을 읽기란 무척 힘들었다. 아이를 돌보거나 살피는 데에 힘을 쏟을 뿐이었다. 아이를 둘 데리고 다니며 1분이나 10초쯤 책을 손에 쥐어 펼치기란, 여섯 살 세 살 어린 아이들이니 아직 바랄 수 없는 노릇이려나 싶다. 작은아이가 일고여덟 살쯤은 되어야 나들이 다니는 길에도 슬쩍 책 한 권 꺼내어 몇 분쯤 누릴 수 있을까.
아이들 데리고 다니는 아버지가 드물다. 아이들 데리고 다니며 가방에 책을 챙기는 아버지라면 훨씬 드물겠지. 아이들 데리고 다니는 어머니 가운데 가방에 책을 한 권 챙기는 분은 몇 사람쯤 있을까. 아이들 건사하기에도 바쁠 텐데 책을 가방에 넣어 괜히 무겁게 들고 다니려 한다고 해야 할까. 덧없거나 배부른 몸짓이 될까. 아이들 신나게 놀고 뛰고 노래하는 모습 바라보는 일이야말로 살가운 책읽기 되니, 어버이로서는 애써 종이책에 매이기보다 ‘아이책’ 또는 ‘삶책’을 한껏 누리자 여기면 될까. 4346.8.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