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책과 그림

 


  도시에서 살며 이름난 대학교를 다녔더라도 ‘숲(자연)’을 그리려면 시골에서 지내며 시골사람 마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진 자료만 들여다본대서 굴참나무와 졸참나무가 서로 어떻게 다른지를 그림으로 담아내지 못해요. 같은 굴참나무라 하더라도 나무마다 잎사귀 모양이 다르고, 굴참나무 한 그루에서 돋는 잎사귀도 모두 달라요.


  구름을 볼 적에도 도시에서 올려다볼 때랑 시골에서 올려다볼 때에는 달라요. 들풀도 도시와 시골에서는 빛깔과 크기와 무늬가 다릅니다. 어느 쪽이 더 곱다거나 푸르다는 뜻이 아니에요. 모두들 삶이 달라 넋이 다르고, 넋이 다르면서 빛이 달라요.


  도시에서 학원에 치이는 아이들 얼굴을 바라보면서 이 도시 아이들을 그리면 ‘도시 아이’ 모습이 돼요. 그렇겠지요? 시골 이야기 다루는 그림책에 시골 아이를 그려야 하면, 참말 시골 아이를 찾아나서야 합니다. 시골에서 시골 아이를 만나 시골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비로소 ‘시골 이야기 다루는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 모습’을 참답게 그려요.


  나비 한 마리를 그린다 하면, 어느 자리에 쓸 어느 나비인가를 생각해야 해요. 도시 골목동네 텃밭에서 살아가는 나비인지, 숲에서 살아가는 나비인지, 시골마을 풀섶에서 살아가는 나비인지 생각해야지요. 나비도 이녁 삶터 따라 모양과 빛깔과 무늬가 다르거든요.


  책 한 권 쓸 때마다 책에 담는 빛이 어느 마을에서 어떻게 태어나는가를 돌아봅니다. 책 한 권 읽을 때마다 어떤 삶터에서 이 책을 마주하면서 내 삶으로 삭힐 수 있는가를 헤아립니다. 4346.7.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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