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지 않은 책
우리가 아는 책은 모든 책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책은 ‘책 꼴로 나온 책’입니다. 이런저런 이름난 외국 작가 책이 꽤 한국말로 나오지만, 우리는 모든 외국문학을 알지 못해요. 한국말로 나오는 외국문학은 ‘외국에서 이루어지는 그 나라 문학’ 가운데 아주 조그마한 토막 하나일 뿐입니다.
한국에서 나오는 한국책이라고 해서 모든 한국문학을 두루 밝힐 만하다고 느끼지 않아요. 모든 문학작품이 책으로 태어나지 않아요. 모든 문학작품이 두루 읽히지 않아요. 몹시 아름답다고 하는 문학이라지만, 제대로 책 꼴을 못 갖추곤 합니다. 뒤늦게 알려져 뒤늦게 읽히는 아름다운 문학이 있습니다. 아는 사람끼리만 알음알음으로 나누는 조용한 문학이 있어요.
기자와 전문가와 평론가만 몇몇 작가를 추켜세우거나 다루지 않아요. 여느 책손도 몇몇 작가 책에만 둘러싸인 채 살아가요.
너른 이웃을 헤아려요. 넓은 마을을 살펴봐요. 고흥군에도 수백 군데 작은 마을이 있어요. 이웃 다른 군에도 수백 군데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요 작은 마을 한 곳에도 온갖 이야기가 넘쳐요.
널리 사랑받는다는, 아니 널리 팔려서 널리 읽힌다는 책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나, 널리 읽히는 책만 자꾸 다룰 때에는 우리 둘레 작은 이웃이 그만큼 묻히기 마련이에요.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읽을 때에 아름답게 빛날까요. 우리는 어떤 이웃을 사귀면서 어떤 이야기꽃을 피울 때에 환하면서 즐거운 삶 누릴까요.
태어나지 않은 책이 있어요. 책 꼴로 태어나지 못한 책이 있고, 아직 안 읽혔기에 태어나지 않은 책이 있으며, 읽히기는 했지만 제대로 읽히지 못해서 아직 못 태어났다 할 만한 책이 있어요. 4346.7.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