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13-0724-03 04
나리꽃 책읽기

 


  아이들을 샛자전거와 수레에 태워 면소재지 다녀오는 길에 나리꽃 본 지 보름쯤 되었지 싶다. 그동안 나리꽃 곁을 휙휙 스쳐서 지나가기만 하고, 막상 나리꽃 곁에 자전거를 세워서 꽃내음 맡은 적 없었다고 깨닫는다. 오늘은 자전거를 천천히 세운 다음 나리꽃 앞으로 간다.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아 “나도 냄새 맡을래. 나도 만져 볼래.” 하고 말한다. 그래, 자전거에서 내려 느긋하게 만지면서 냄새를 맡자.


  어떤 나리일까. 참나리일까 하늘말나리일까 또는 다른 이런저런 나리일까. 아마 또렷하게 가르는 이름이 있으리라. 나는 아이한테 더 낱낱이 가르는 이름을 찾아내어 알려줄 수 있고, 그저 ‘나리꽃’이라 알려줄 수 있다. ‘노란나리’라느니 ‘주홍나리’라 말할 수 있다. 아니면, 내 나름대로 새 꽃이름 지어서 알려줄 수 있다. 다른 전라도사람이나 서울사람이 이 꽃을 가리켜 이런저런 이름을 읊는다 하더라도 고흥 도화면 동백마을 시골순이로서는 새 시골말 하나 빚어서 가리켜도 된다. 어여쁜 꽃을 바라보며 어여쁘게 붙이는 이름이니까.


  그런데, 시든 꽃송이는 누가 똑똑 끊었을가. 시든 꽃송이는 하나도 안 보이고 꽃송이 떨어진 자국이 많이 보인다. 들일 하며 지나가던 마을 할매나 할배가 시든 꽃은 똑똑 끊었으려나.


  활짝 피어난 꽃도 어여쁘지만, 시든 꽃도 어여쁜데. 시들다 못해 말라서 비틀어져 툭 하고 떨어져 길바닥에 흩어져도 어여쁜데.


  너른 들에 나무 한 그루 없지만, 밝은 꽃송이 꼭 이곳에서만 피어나며 들판을 새롭게 밝힌다. 한길에서 한참 꽃놀이를 하고는 집으로 돌아간다. 4346.7.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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