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 일기 5 : 나는 땅이 될 것이다 이오덕 일기 5
이오덕 지음 / 양철북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으로 가는 길
[이오덕 선생님 책읽기 5] 《이오덕 일기》 5권

 


- 책이름 : 이오덕 일기 5 나는 땅이 될 것이다
- 글 : 이오덕
- 펴낸곳 : 양철북 (2013.6.24.)
- 책값 : 14000원

 


  보름달 밝은 빛이 마당으로 가득 내려앉습니다. 달빛이 곱고, 밤하늘에 낀 구름은 달빛을 받아 낮에는 느낄 수 없는 어여쁜 빛깔을 보여줍니다. 밤에도 구름은 많이 끼어 별은 군데군데 조금 보입니다. 이 구름 걷히고 나면 아주 쏟아지는 별빛을 누리는 시골 밤하늘 될 테지요.


  밤개구리 노래를 들으며 마당에 서다가, 대청마루에 앉다가, 방에서 아이들 토닥입니다. 개구리 몇 마리 우리 집 마당에까지 찾아와서 커다란 소리로 울어댑니다. 참 조그마한 개구리인데 목청이 아주 좋습니다. 한참 밤노래를 듣는데, 개구리는 줄기차게 울지 않습니다. 숫자가 많이 줄기도 했습니다. 우리 마을을 비롯해 둘레 여러 마을에서 항공방제를 했고, 낮에는 곳곳에서 농약을 치느라 바쁩니다. 이렇게 밤노래 들려주는 개구리는 온갖 농약벼락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입니다.


  개구리가 농약을 먹고 해롱거릴 적에 해오라기 같은 새들이 개구리를 덥석 잡아먹으면, 해오라기도 농약 때문에 배앓이를 합니다. 배앓이를 하다가 그만 죽기도 합니다. 논마다 농약을 치니, 논에서 살던 미꾸라지나 물방개나 게아재비나 거미 모두 꼬르륵 숨을 거둡니다. 사람들은 농약을 쳐야 벼포기 갉아먹는 벌레를 잡을 수 있다고 여기는데, 논벌레 잡느라 이 농약이 벼포기로 찬찬히 스며들어 정작 사람들 먹는 밥에까지 이어지는 줄 헤아리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자동차를 몰면서 자동차 배기가스가 바로 바람결에 떠돌며 우리가 마시는 숨으로 돌아오는 줄 헤아리지 않는 모습과 같습니다. 자동차는 틀림없이 사람들 발길을 멀리 이어 주는 몫 맡는데, 사람들이 멀리까지 다닐 수 있게 하는 만큼, 숲과 들과 멧골을 밀어내어 아스팔트 찻길을 깔아요. 자동차 다니며 배기가스 내뿜어요. 자동차를 만들고 석유를 기름으로 바꾸느라 매연이 쏟아지지요.


  도시 문명이란 돈으로 움직이고 돈으로 구르며 돈으로 이어지는 셈입니다. 도시 문명은 돈을 벌려고 숲을 망가뜨리고는, 다시 돈을 들여 숲을 살리겠다고 나서는 셈입니다.


  왜 처음부터 숲을 안 망가뜨리는 길을 걷지 않을까요. 왜 처음부터 숲을 돌보거나 지키면서도 도시 문명을 북돋우는 길을 걷지 않을까요.


- 백범 선생을 기리는 일에는 찬성이지만, 이렇게 새까맣게 한문 글자로 취지문을 쓰고 승낙서를 쓴 사람들이 하는 짓을 믿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요즘 한문 글자 쓰는 문제로 의견 대립이 되어 시끄러운 때에 이런 글을 보내는 속뜻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1999년 4월 7일)
- 오후에는 좀 누웠다가, 출판사 차리는 계획과 출판사 이름을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호롱불, 참새, 아리랑말, 논둑길, 시골 같은 이름이 떠올랐다. 꿈을 갖는 일은 이래서 역시 즐겁구나 싶다. (2000년 3월 11일)
- 투표장에 갈 때 정우 내외와 내가 타고 있는 차에 마을 아주머니 한 분이 탔는데, 국회의원 되겠다고 나선 후보들한테 마을 사람들이 대접받은 얘기를 하는 것이 참 기가 막혔다. 누구는 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돈을 몇 만 원씩 주더라. 누구는 음식을 대접해 주고, 목욕을 모두 시켜 주더라……. 이래서 마을 사람들은 대접을 잘 받았으니 고맙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 소리 듣고, 용원학교 운동장에서 줄을 서 기다리며, 투표하러 온 사람들, 하고 가는 사람들을 보니 모두 얼이 다 빠져 있는 듯 느껴졌다. 차라리 옛날처럼 절대 권력을 가지고 백성들을 마음대로 부리고 억누르고 걷어 내고 하던 절대 군왕 시대가 되어 버려라. 그래서 이놈의 백성들이 피눈물 흘리면서 굶주리는 꼴이 되어야 마땅하구나 싶었다. 도무지 이 백성들은 민주주의를 할 자격이 없다. 종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 부산이고 대구고 하는 곳이 참 기가 막힌다. 영도다리에서 빠져 죽자고 하는 인간들을 국회의원에 내세우는 부산 사람들이란 그 민도가 얼마나 한심한가. 박정희란 사람을 신주 모시듯 하는 대구 사람들도 한심하기 말할 수 없다. (2000년 4월 13일)

 


  어린 아이들은 어버이 옷자락을 붙잡으며 돌아다닙니다. 여섯 살 세 살 어린 우리 집 두 아이는 아버지 바짓가랑이 언저리에서 맴돕니다. 혼자서 꽤 멀리까지 돌아다니며 놀 줄 아는 아이들이지만, 아이들이 혼자서 꽤 멀리까지 돌아다닐 수 있는 까닭은, 집에 아버지가 있기 때문이에요.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 있는 줄 알기에 씩씩하게 돌아다닙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아버지가 살짝 안 보여도 퍼뜩 놀랍니다. 우체국 아저씨 지나가는 소리 듣고는 대문 앞 우체통까지 다녀온다 하더라도, 밥찌꺼기 뒷밭에 부으려고 집 뒤로 가더라도, 아이들 오줌그릇 비우면서 바깥 물꼭지에서 오줌그릇 닦더라도, 아버지가 안 보이니 헐레벌떡 아버지 찾아 마당으로 내려옵니다.

  나 스스로 못 떠올릴 텐데, 두 아이 아버지인 내가 갓난쟁이였거나 아주 어릴 적에도 우리 아이들과 같았으리라 생각해요. 바로 코앞에서 안 보여도 사라진 줄 알겠지요. 옆방에 슬쩍 숨어도 없는 줄 여겨 엉엉 울겠지요.


  잠자리에서 늘 아이들 사이에 눕습니다. 이렇게 아이들 사이에 누우면, 한 아이가 뒤척거리다가 발을 쿵 내 배에 올리니 깜짝 놀라 잠이 깹니다. 발을 내려놓고 다시 잠들라치면 어느새 다른 아이가 뒹굴 굴러 박치기를 합니다. 화들짝 놀라 잠이 깨어 아이를 옆으로 밀어놓습니다. 큰아이가 쉬 마렵다면서 아버지를 깨웁니다. 작은아이도 쉬 마렵다며 낑낑거리곤 하지만, 그냥 바지에 쉬를 누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쉬 마렵다 하면 쉬를 누이느라 일어나고, 바지에 쉬를 싸면 바지 갈아입히느라 일어납니다.


  자는 아이가 재채기를 하면 이불깃 여밉니다. 한여름에 땀 흠씬 흘리며 자는 모습 느끼면, 자다가 일어나 부채질을 합니다. 요 며칠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서로 갈마들며 몸앓이를 했기에, 하루는 큰아이 이마에 물로 적신 수건을 대며 밤을 지새우고, 다른 하루는 작은아이 흐르는 콧물 닦아내고, 온몸으로 흠뻑 흘리는 땀을 닦아 주느라 밤을 보냅니다. 작은아이는 아프니 밤에 자꾸 쉬를 지리느라, 아침마다 잠자리 깔개를 마당에 내놓아 말리느라 바쁘고, 아이 이불을 날마다 새로 빨아서 말리느라 부산합니다.


  그래도 날 맑고 따스해 깔개도 이불도 잘 마르니 고맙습니다. 시골바람 마시고 시골물 마시면서 아이들이 천천히 몸이 낫는구나 싶으니 반갑습니다. 두 아이 모두 훌훌 털고 일어나서 다시금 한여름 시골숲과 시골바다 누리기를 기다립니다.


- 오늘 저녁 처음으로 소쩍새 소리 들었다. 뜰 앞에 살구꽃, 앵두꽃이 만발했다 … 저녁때 우체통에도 가야 해서 나갔더니, 앞뜰에 살구꽃이 활짝 피었다. 앵두꽃도 활짝 피었다. 옆집 살구꽃도 피고, 앞밭의 살구꽃도 피었다. 아, 나는 아직도 살아서 이 봄에 살구꽃을 보게 되는구나 싶었다. (1999년 4월 16일)
- 어제 뒷간에서 들었던 꾀꼬리 소리를 글감으로 글을 한 편 썼다 … 김 대통령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인가 하는 모임에 가서 그 사업을 나랏돈으로 지원해 주겠다고 했다가 많은 비난이 터져 나온 모양이다. 김대중 씨도 참 너무 눈앞의 정치 사정에만 매달려 계산만 한다. 역시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구나 싶다. 지역주의를 해결한다는 핑계지만 아무래도 두고두고 말썽이 될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지역주의가 근본부터 풀릴 수도 없다. (1999년 5월 18일)
- 감나무 밑에서 책을 보는데, 온갖 새들이 머리 위에서 울어댔다. 그 새소리가 시끄러워 책을 못 보는 것이 아니라 새소리가 너무 재미있고 듣기 좋아서 책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 새소리에 대면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이 말들은 얼마나 보잘것없고 시들한 소리들인가! 감나무 밑에 앉아 온갖 풀들의 향기에, 온갖 새들의 노래에 내 몸과 마음이 깨끗하게 씻기고 새로 태어나는 듯했다. (1999년 6월 14일)
- 그러고 보니 쥐약 먹고 죽은 새가 한두 마리가 아니겠구나 싶었다. 그 새들이 죽으면서 자기를 죽인 원수인 사람들 집 앞에 가서 항의를 한 것이 분명하다. (1999년 10월 21일)

 


  바람이 드세게 부는 날은 바람소리 빼고는 다른 소리를 거의 못 듣습니다. 바람이 드세게 부는데 빗방울까지 들으면 마을 어귀 큰길에 군내버스 지나가더라도 차소리까지 안 들려요.


  바람소리는 새소리도 개구리소리도 벌레소리도 모두 잠재웁니다. 아마, 도시에서도 비바람 몰아치는 날에는 자동차 다니는 소리가 되게 작게 들리지 싶어요. 태풍이 찾아든다든지 큰비가 퍼붓는다든지 하면 온통 바람소리와 빗소리만 가득하리라 생각해요.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바람이나 비가 드세면 달리 할 일이 없습니다. 그저 바람을 마주하고 비를 바라볼밖에 없습니다.


  바람 불어 전깃줄 끊어지면 컴퓨터도 냉장고도 물펌프도 못 써요. 큰비 퍼부어 찻길 끊어지거나 물에 잠기면 스포츠카도 대형버스도 옴쭉달싹 못 합니다. 바람이 거칠게 불면 전화를 걸어도 소리가 안 들려요. 큰비 퍼부으면 도시에서는 지하도가 물에 잠길 수 있어요. 바람 때문에 비행기가 못 뜨잖아요. 비바람 몰아쳐 물결 높으면 배가 못 떠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하나, 바람이 자거나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할 일이란 오로지 하나, 바람도 비가 멎어 해가 방긋 웃으며 고개 내밀기를 기다리는 일입니다.


  해가 있어야 도시도 있고 시골도 있어요. 해가 따사롭게 내리쬐어야 도시도 도시대로 돌아가고, 시골은 시골대로 아름답지요. 해가 알맞게 부치며 맑은 빛과 볕을 베풀 적에 이 지구별에 고운 사랑이 감돌아요.


  원자력발전이나 화력발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원자력발전소 100 군데를 세운들, 화력발전소 1000 군데를 세운들, 햇살 한 조각처럼 깨끗하면서 아름답지 않아요. 햇볕 한 줌처럼 온누리 골고루 보듬을 수 있는 화석에너지는 없어요.


- 추천해 온 책이 모두 1800몇십 권이란다. 이것을 일주일 동안 다 살펴서 좋은 책을 골라낸다니 도무지 억지로 하는 짓이고 날림 행사다. 들어 보니 출판사들이 될 수 있는 대로 고루 선정되어 나오도록 해 달라는 주문이고, 읽는 사람을 위한 행사가 아닌 것 같아 신문사들의 신문 선전하는 장삿속으로 하는구나 싶어 불쾌했다. (1999년 6월 10일)
- 오늘 우편물 가운데 국가보안법반대국민연대에서 빠른우편으로 온 것이 있어 뜯어보았더니 20일 결성하는데 나를 고문으로 모시고 싶으니 승낙해 달라는 말과 함께 인쇄물이 들어 있었다. 내일 전화로 승낙한다고 알려야지! (1999년 9월 17일)
- 권정생 선생은 내가 읽어 보라고 한 《그림자 정부》를 읽은 모양이다. “리영희고 백낙청이고 그런 사람들 글도 다 엉터리네요. 이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지요?” 했다.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1999년 11월 18일)
- 오후에 우편물을 꺼내 보았더니 12월 호 《출판저널》이 와 있었다. 1990년대 책 뽑아 놓은 걸 보았더니 내가 추천한 것은 두 권밖에 안 나와 있었다. 내가 다섯 권 추천했는데, 모두 여덟 권 나와 있는 가운데 두 권뿐이고, 내가 추천하지 않은 책 가운데 매우 의심스러운 책들도 들어 있어서 추천한 사람들을 찾아보았더니 아동문학 쪽에 최지훈 씨가 있었다. 내가 꼭두각시 노릇을 했구나 싶어 분한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신현득이 책까지 나와 있는데, 보리출판사의 열 권짜리 〈겨레아동문학선집〉은 빠졌으니 어이가 없다. 이다음에는 이런 부탁받으면 나 말고 또 누가 함께 추천 또는 심사하는가 단단히 물어서 해야겠다. 괴상한 사람과 같이 무엇을 하다가는 공연히 내 시간만 허비하고 남들 오해하도록 만들기 좋게 될 뿐이다. (1999년 12월 9일)

 


  정치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들이 무슨 정치를 하겠다고 나설까요. 경제란 무엇인가요. 어떤 사람들이 어디에서 무얼 하겠다며 외칠까요. 교육이란, 문화란, 예술이란, 군대란, 종교란, 모두 무엇이라 할 만한가요. 사람들이 문명이나 문화나 발전이나 진보라는 이름을 내걸며 하는 일은 참말 사람들 삶을 얼마나 북돋우거나 살찌운다 할 만하나요.


  과학이 가난과 굶주림을 몰아내지 않습니다. 풀 한 포기가 가난과 굶주림을 몰아내요. 기술과 정보가 지구별에 평화를 불러오지 않습니다. 숲 한 자락이 지구별에 평화를 불러와요.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나 골고루 비추며 따숩게 웃는 해님이 바로 사랑입니다. 아침 낮 저녁 늘 푸른 숨결 나누어 주는 풀과 꽃과 나무가 바로 꿈입니다. 사랑을 먹고 사랑을 나누며 사랑을 펼칠 때에 사람다운 삶입니다. 꿈을 이루고 꿈을 펼치며 꿈을 보듬을 적에 사람다운 이야기입니다.


  정치 하겠다고 나설 까닭 없어요.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밭 한 뙈기 마련해서 일구면 정치가 이루어져요. 경제 바로잡겠다고 외칠 까닭 없어요.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나무 한 그루 심든 씨앗 한 톨로 나무 한 그루 자라도록 하면 넉넉해요.


  문화나 예술은 먼 데에 없어요. 집에서 살림을 꾸리고 밥 한 그릇 지어서 도란도란 나누는 삶이 바로 문화요 예술이에요. 바느질 한 땀이 문화입니다. 빨래 한 점이 예술입니다.


  아이들은 시설이나 유치원이나 학교나 학원에 보내야 교육이 아니에요. 어버이 스스로 아름답게 사랑하는 꿈을 삶으로 누리면, 이 모습이 아이들한테 교육이 되어요. 따로 무엇을 가르치지 않아도 돼요. 어른들 스스로 즐겁고 사랑스레 살아가는 모습을 한껏 누리면 시나브로 교육이 이루어져요.


  씨앗 한 톨만 한 과학이 있을까요. 풀 한 포기와 꽃 한 송이만 한 과학이 있나요. 봄까지꽃이 어쩜 이다지 작으면서 꼭 봄까지만 피어나는지 밝힌 과학자는 없어요. 제비꽃이 어쩜 이렇게 고운 빛깔인지 밝힌 과학자는 없어요. 어떻게 밝히겠어요. 무엇을 밝히겠습니까. 게아재비 꽁지가 어떤 구실을 하는지 어떤 과학자가 밝히려나요. 이슬 한 방울이 풀씨 한 톨 어떻게 살리는가를 밝힐 과학자가 있을까요.


- 구름이 온갖 모양으로 바뀌고 흘러가고 하는 것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아무리 쳐다보아도 또 보고 싶었다. 아, 내 남은 목숨은 저 하늘의 구름과 함께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로우의 글은 참 좋았다. 저 하늘의 구름 다음으로 좋은 것이 소로우의 글이다. 그런데 강은교란 시인이 번역해 놓은 그 글이 참 잘못된 말이 많아 읽으면서도 자꾸 화가 났다 … 아무리 소로우의 글이 좋아도 저 하늘의 구름, 하늘에 높이 솟아 끊임없이 흔들리고 움직이는 포플러 나무, 바로 뜰 안에 있는 대추나무 눈부신 잎들보다는 못하구나 싶다. 아, 나도 소로우가 말한 것처럼 하늘과 구름과 바람과 함께, 대추나무 잎과 미루나무와 함께 숨쉬며 그 속에서 살아야겠다. (1999년 8월 15일)
- 권오삼 선생이 보내온 〈아동문학 사랑방〉을 읽었다. 요새 신인들 얘기는 공감이 갔는데, 옛것을 부정하면서 과학의 앞날을 맹신하는 것이 참 철없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1999년 9월 28일)
- 그런데 시 지도가 왜 안 될까? 모두 자기 나름대로 애쓰고 찾고 고민하고 하는 것이 모자란 때문인 것 같다. 지도 방법을 머리로 배워서 그대로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무엇을 안다는 것은 자기가 실제로 하면서 애쓰고 괴로워하고 헤매고 하는 가운데, 그때 누가 가르치는 것이 있으면 비로소 제대로 몸에 들어와서 산 지식이 된다. 그러하지 않고 무엇이든지 가르쳐 주기를 바라서 그것대로 따라가면 된다고 하는 태도로는 절대로 진리를 잡지 못한다. 우리 선생들 젊은이들이 모두 어릴 때부터 시키는 것만 받아서 하여 온 버릇이 몸에 배어서 어른이 되어 아이들 가르치는 태도가 또 그렇게 되어 무엇이든지 지시하기만 하고, 가르치는 방법도 그렇게 누가 보여주기만 바란다. (1999년 12월 12일)

 


  ‘문학’이라는 낱말 들어오기 앞서까지, 이 나라 모든 시골사람은 언제나 문학을 누렸어요. 요즈막에 들어, 여느 시골사람들 언제나 누리던 문학을 ‘구비문학’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채록을 하느니 보존을 하느니 기록을 하느니 수집을 하느니 하고 법석을 떠는데, 시골사람이 이룬 ‘입말(구비문학)’은 책 백 권이나 천 권이나 만 권으로도 못 담아요. 조선왕조실록이 대단한 기록문학이자 문화유산이라 말하는 학자들 많지만, 막상 여느 시골마을 시골사람 입에서 흘러나올 이야기를 적바림하자면 조선왕조실록 같은 책 수천만 질로 옮겨적어도 다 옮겨적지 못합니다. 어느 시골사람한테서나 구수한 이야기 술술 흘러나오니, 이 이야기를 어찌 다 옮겨적겠어요.


  집집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을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노래를 배우거나 악기를 배운 적 없는 시골사람이 일노래를 불러요. 한창 일하다가 막걸리 한 잔 들이켜고는 저마다 덩실덩실 춤을 추어요. 아무한테서도 춤을 배운 적 없는 시골 할매 할배 아재 아지매 누구나 쿵덕쿵덕 춤을 춥니다.


  시골사람은 글을 몰라도 말을 압니다. 아니, 시골사람한테는 굳이 글이 없어도 됩니다. 마음에 담고 몸에 새기는 말이 있어요.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해에 걸쳐, 시골사람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야기를 물려주고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를 잇습니다.


  풀이름, 꽃이름, 나무이름, 벌레이름, 물고기이름 들은 모두 시골사람이 지었어요. 멧자락과 냇물과 마을에 붙이는 이름도 모두 시골사람이 지었지요. ‘집’과 ‘옷’과 ‘밥’ 같은 낱말도, ‘두레’와 ‘길쌈’과 ‘바느질’과 ‘절구’ 같은 낱말도, 바로 시골사람이 지었어요.


  키를 누가 엮고 바구니를 누가 짰겠어요. 괭이와 호미와 낫을 누가 갈았겠어요. 임금님이 내려준 시골 연장이란 없어요. 사대부나 학자가 알려준 풀이름이나 꽃이름은 한 가지조차 없어요.


  ‘잎’이라는 낱말을 지은 먼먼 옛날 시골사람 넋을 헤아립니다. ‘쑥’과 ‘마늘’이라는 낱말을 지은 아득한 옛날 시골사람 얼을 돌아봅니다. 우리 몸을 이루는 ‘눈’과 ‘코’와 ‘입’ 같은 낱말은 어떤 마음으로 지었을까요. ‘꿈’이라는 낱말이며 ‘이야기’라는 낱말은 또, ‘슬기’와 ‘빛’이라는 낱말은 또, 참말 어떤 생각을 밝히며 지었을까요.


  그러니까, 이렇게 놀라우며 대단한 문학은 어디에도 없어요. 역사책에 이름 몇 글자 남기지 못한 여느 시골사람이지만, 우리들 가슴에 오래오래 이어지는 살내음으로 아름다운 문학을 빚어서 남겼어요. ‘무지개’라는 낱말 하나가 문학이에요. ‘별’과 ‘개똥벌레’라는 낱말 하나가 문학이에요.


- 더 밝은 불, 더 큰 소리, 더 빠른 교통기관, 더 단 음식……. 감각을 마비시키는 현대의 삶은 결국 사람을 병신으로 괴물로 만들어 버린다 … 문학도 그렇구나 싶다. 방 안에 앉아 말재주만 부리니, 자꾸 그 정도가 심해져서 괴상한 말장난이 되었는데도 그 사실을 못 느끼고 더욱더 심한 우스갯말 같은 것을 쓰면서 그것이 훌륭한 문장, 앞선 문학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1999년 9월 5일)
- 이렇게 힘들여 써 놓은 글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잘못된 글쓰기 버릇을 바로잡게 될까? 내가 하는 일이 좋은 결과가 되어 이 말이 바로잡힌다면 앞으로 다시 또 여러 날이 걸리더라도 이 일을 제대로 하고 싶다. 잘못된 말 하나 바로잡는 일이 너무나 힘이 든다. (2000년 1월 26일)
- 소쩍새 소리가 자꾸 들려온다. 저 소리 들을 적마다 시를 한 편 써야지, 하면서 아직도 못 쓰고 있다. 긴 세월 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 잊었던 내 지난날, 잃어버린 내 지난날 모든 것이 살아나 울려오는 소리, 내 모든 슬픔, 내 모든 그리움이 다시 살아나 가슴에 안겨 오는 소리…… 저 소쩍새 소리를 꼭 시로 쓰고 싶다. (2000년 5월 12일)
- 고흐의 농민 그림은 그대로 우리 옛날 농민들의 삶을 보여주는 느낌이고, 따뜻한 정이 넘쳐 있다. 어째서 우리 화가들은 이런 그림 한 장 그릴 줄 몰랐나. (2000년 8월 10일)
- 앞으로 내가 시집을 낸다면 어른 시고 동시고 구별할 필요가 없이, 아이들도 어른도 함께 읽을 수 있는 시집을 내고 싶다 …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시의 세계, 말법이 더욱 필요하고 이런 시가 나와야 시도 우리 말도 잘 살아나겠다는 생각이 든다 … 보랏빛 칡꽃이 하도 고와 한참 쳐다보다가 왔다. (2001년 8월 25일)

 


  《이오덕 일기》(양철북,2013) 다섯째 권을 읽습니다. 다섯째 권에는 ‘나는 땅이 될 것이다’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이오덕 님 마지막 삶 밝히는 이야기 깃듭니다.


  땅이 된다는 말은, 땅으로 돌아가 숲이 된다는 뜻일 테지요. 흙 한 줌이 되어 숲을 살찌우는 밑거름 된다는 뜻일 테지요. 머나먼 옛날부터 사람은 늙어서 빛이 되었어요. 흙빛이 되고 물빛이 되며 풀빛이 되었어요.


  아이들은 새 숨결 받고 태어나고 흙을 누리고 물을 즐기며 풀을 먹습니다. 아이들은 푸른 마음 되어 푸른 꿈을 키웁니다. 푸른 사랑은 언제나 흙을 두 발로 디디는 데에서 이룹니다. 푸른 마음은 맑은 물을 마시면서 키우고, 푸른 꿈은 정갈한 풀포기 뜯어서 먹으면서 가꾸어요.


- 서울 시내를 지날 때는 자꾸 차가 막히고, 더워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무너미 와서 여기 느티나무 밑으로 들어오자 비로소 살았구나 싶었다. 지옥을 빠져나온 기분이다. 사람들은 모두 지옥에 산다. 지옥인데도 천당인 줄 알고 사니 다행인가, 더 불행한 꼴인가 모르겠다. (2000년 7월 6일)
- 아픔을 느낄 것, 조금이라도 지나친 음식이나 잘못된 음식, 행동…… 같은 것을 날카롭게 느끼고 붙잡는 마음, 태도, 능력을 기를 것. 이것이 내 목숨을 지키는 열쇠로 될 수밖에 없구나 싶다. 아픔을 느끼고 잘못된 것을 아주 조그마한 것이라도 놓치지 말 것. (2001년 1월 10일)
- 이래서 오늘 아침엔 새 한 마리를 살려서 참 기분이 좋았다. 조롱박 안을 보니 그새 새가 똥을 누었다. (2001년 3월 28일)
- 만약에 그때 농촌 아이들의 삶에서 배울 것을 찾는다면, 그무렵 굶주리고 헐벗었던 그 어두운 면보다 차라리 자연 속에서 깨끗하게 살던 일을 다시 찾아내어 보여주는 것이 더 뜻이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2001년 7월 3일)
- 그런데 이 글이 왜 이렇게 어렵게 씌어 있나. 번역한 글인데 번역한 사람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설탕 마구 먹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어려운 말과 말법 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그 정신 상태는 같은 것 아닌가. 하나는 병든 육체의 버릇이고, 또 하나는 정신의 버릇이다. 그리고 하나는 육체를 망가뜨리고, 다른 하나는 정신을 망치게 한다. 육체를 병들게 하는 설탕을 먹지 말자고 하는 사람들이 정신을 병들게 말과 글을 이렇게 오염시키니 참 어이가 없다. 글을 읽다가도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 이래 가지고 무슨 녹색운동인가? 그런 녹색운동의 열매를 제대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2001년 7월 20일)

 


  죽음을 앞두었구나 하고 깨달은 뒤에조차 시골살이를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햇살과 바람과 냇물을 받아들이려는 생각을 못 품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죽음이 가까이에 있으니 외려 더 망가지는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찬찬히 생각해 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여느 때에’ 깨닫습니다. 여느 때에 깨닫는 사람은 죽음을 앞둔 자리에서도 똑같이 깨닫고, 아무것 아니라 하는 때이든 바쁘다 하는 때이든 똑같이 깨달아요.


  늙어서야 깨닫는 법은 없어요. 젊어서 즐겁게 깨달으며 이녁 삶 살찌운 사람들이 늙어서도 즐겁게 깨달으며 이녁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지어요. 젊어서 못 깨닫는 사람은 늙어서도 못 깨달아요. 젊어서 사랑을 나누지 못하던 사람은 늙어서도 사랑을 나누지 못해요. 젊어서 환하게 웃지 못하던 사람은 늙어서도 환하게 웃지 못합니다.


  덧붙이자면, 젊을 적에 말과 글을 정갈하며 참답게 갈고닦으려고 힘쓰는 사람만, 늙어서도 이녁 말과 글을 정갈하며 참답게 갈고닦아요. 젊을 적부터 착하게 살아야 늙은 뒤에도 착하게 살지요. 젊을 적부터 따사로운 마음일 때에 늙은 뒤에도 따사로운 마음입니다.


- 우리 시가 3·4조와, 일본의 시가 7·5조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깨닫게 된 한 가지다. 우리 민요가 동요나 옛 가사는 3·4조로 나가고 6는 어쩌다가 나오는데, 일본은 5가 자주 나온다. 그 까닭의 하나는 일본 말, 일본 글은 명사를 늘어놓고 그 명사를 잇는 “노(の,의)”를 붙이면 된다. 그러자니 그 명사와 여기에 붙는 “노”가 흔히 다섯 자로 된다 … 일본은 자기네들 말로 하니까 다섯 자가 자주 나오고, 우리는 우리 말이 아닌 한문 글자 음으로 말을 하니까 다섯 자가 드물다. (2001년 1월 5일)
- 김이구 씨 글은 오늘 겨우 다 읽었다. 전체 글의 줄거리가 시원스럽게 되어 있지 않고 공연히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내보이려고 이것저것 남의 작품을 인용해서 읽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해 놓은 데가 몇 군데나 있고, 그러다 보니 앞뒤의 논리가 맞지 않기도 하여 무척 읽기가 거북스러웠지만 전체로 보아서 하고 싶어 하는 주장이 있기는 하다. 그것은 “일하는 아이들”이 이제는 쓸모없는 관념이 되었으니 거기서 벗어나야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벗어나는 길이 어디 있나? 결론에서 채인선이란 작가의 “역할 바꾸기”에 있다고 했다. 이런 “일하는 아이들”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일본의 가라타니 고진이란 평론가가 말한 “전도”의 논리에서 발견한 모양이니 참 어처구니가 없다. 정말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찮지만 어쩔 수 없이 여기에 대한 글 한 편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원종찬 씨도 김이구 씨와 똑같은 태도로 쓴 것이구나 깨달아진다. 누가 먼저 “전도”를 신봉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두 사람이 같은 창비에서 일하고 책 내고 했으니 같은 생각을 하기도 쉬웠으리라. (2001년 10월 6일)

 


  어떻게 살아갈 때에 즐거운가를 헤아릴 때에 삶이 빛나요. 어떻게 살아가려는 하루인가를 돌아보면서 스스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마음을 기울일 적에 삶이 환합니다.


  책을 읽어서 삶이 빛날 수 없습니다. 학문을 오래 닦거나 학교를 오래 다닌대서 삶이 환해지지 않습니다. 돈을 많이 번다 한들, 어디에 쓰겠습니까. 이름값 널리 떨친다 한들, 어디에 쓰겠습니까.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 않아요. 사람들이 멋모르고 하는 얘기입니다. 범은 죽어서 흙이 되고 숲이 되어요. 사람 또한 죽으면 흙이 되고 숲이 되거나 별이 되어 밤하늘을 환하게 밝힙니다.


  누군가는 흙이 되어 지구별이 따스한 삶터 되도록 북돋는 몫을 맡아요. 누군가는 별이 되어 지구별이 온 우주에서 아름다운 이야기터 되도록 살찌우는 구실을 맡아요.


  이오덕 님은 죽어서 흙이 되어요. 이오덕 님은 흙으로 돌아가고 숲속에 깃들면서 고즈넉한 새소리로 태어납니다. 어느 날은 나비 날갯짓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납니다. 어느 때는 잠자리 붕붕 날개노래로 사람들 사이를 누빕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 즐거울까 생각해 보셔요. 우리 이웃과 동무는 저마다 어떤 빛이 되어 지구별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숨결 되면 아름다울는지 헤아려 보셔요. 곧, 무슨 말인가 하면, 아이들에 앞서 우리 어른들부터 어떤 숨결 되어 살아가면 즐겁고 아름다운지 살펴야지요. 어른들부터 스스로 사랑을 찾고 삶을 살찌우며 꿈을 일구어야지요.


- 감을 깎는 일은 글을 쓰는 일보다 더 재미있고 마음도 편안하다. 전우익 형은 이래서 나무토막으로 늘 무엇을 만들고, 부들로 자리를 매는구나 싶다. 나도 글을 안 쓰고 농사일이나 하고 살았으면 몸도 훨씬 건강했을 것인데 하는 생각이 든다. (2001년 10월 30일)
- 어제 〈한겨레신문〉에서 김규항이란 사람이 쓴 ‘얼치기 도사들’이란 글을 읽었는데, 그 내용은 김지하, 박노해, 이현주 같은 지식인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이들을 “얼치기 도사”라고 한 것이다. 나는 그 글을 읽고 좀처럼 이런 사람들의 문제점을 글로 쓰는 이가 없는 터에 내가 보는 견해와 같은 생각을 시원하게 썼다는 느낌이 들어 무척 반가웠다. (2001년 11월 7일)
- 삶을 떠나서 예술이 없고, 세계문학에서 훌륭한 명작으로 되어 있는 작품은 모두 인간의 참된 삶의 문제를 풀어 보려는 것으로 되어 있고, 그래서 그것이 훌륭한 문학이 되어 있다고 했다. (2002년 2월 25일)
- 사실은 오늘같이 맑은 하늘도 그 옛날의 그 아름다운 가을 하늘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그 고운 하늘도 노을도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2002년 9월 7일)

 


  숲으로 가는 길입니다. 흙 한 줌 되어 나무 한 그루 튼튼하게 서도록 밑받침이 되는 숲으로 가는 길입니다. 별빛 한 줄기로 드리워 나무마다 살포시 내려앉아 맑고 밝게 노래하도록 이끄는 숲으로 가는 길입니다.


  누구라도 숲이 될 수 있어요. 누구라도 꽃이 되고 나비가 될 수 있어요. 끝끝내 삶을 붙잡지 않고 돈이나 권력이나 이름값 붙잡으려 한다면, 숲도 꽃도 나비도 못 될 테지요. 아름다운 생각을 한손에 올리고, 사랑스러운 꿈을 다른 한손에 올리면, 천천히 숲이 되어요. 꽃이 되고 나비가 되면서 훌훌 하늘을 나는 착하고 참다운 이야기빛으로 다시 태어나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셔요. 어느 아이라 하더라도 이녁 어버이한테 돈이 많든 적든 아랑곳하지 않아요. 어느 아이라 하더라도 이녁 어버이가 잘생기거나 못생기거나 대수로이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아이가 텔레비전에 길들거나 학교교육에 물들면, 돈을 보고 얼굴을 살피고 말아요. 아이가 제도권에 휩쓸리거나 사회 톱니바퀴에 갇히면, 사랑과 꿈이 아닌 겉치레와 껍데기에 빠지고 말아요.


  아이들은 늘 삶을 생각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장 신나고 즐겁게 놀 삶을 생각해요. 어른들은 무엇을 생각하나요? 어른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들여다보고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녁 기운을 쓰는가요?


- 라디오 뉴스를 들으니 시간마다 이제 전쟁이 초읽기로 들어갔다면서, 가장 많이 한다는 이야기가 전쟁이 터지면 경제가 어떻게 되는가, 주식값이 어떻게 되는가 하는 따위다. 이 더러운 인간들이 모두 전쟁의 공범자구나 싶다. 인간은 이래서 아주 망조가 들 대로 들었다. (2003년 3월 18일)
- 나는 “누님, 죄송합니다. 저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갑니다. 먼저 가게 되어 참 죄송하지만 즐겁게 가니 조금도 슬퍼 마세요. 장례, 장지도 다 정해 놓았고, 저를 땅에 묻는 날은 모두 즐겁게 찬송가나 부르면서 웃어 주세요. 즐거운 잔치판이 되도록 해 주세요. 이 세상 온갖 얽매인 사슬에서 다 풀려나 즐거운 저세상으로 가는 것 얼마나 좋습니까.” 했다. (2003년 8월 21일)

 


  나는 아이들과 함께 숲을 꿈꿉니다. 나 스스로 숲이 될 생각이고, 우리 보금자리는 집숲이 되도록 일굴 꿈을 꿉니다. 집숲이 되는 보금자리이니, 한 마디로 간추리자면 ‘보금자리숲’입니다.


  우리 식구 보금자리숲에는 나비와 제비가 함께 살아갑니다. 우리 식구 보금자리숲에는 잠자리가 앉고 온갖 꽃이 피고 집니다. 우리 식구 보금자리숲에는 개구리가 노래하고 풀벌레가 노래합니다. 우리 식구 보금자리숲에는 열매나무도 꽃나무도 씩씩하게 자라 예쁜 그늘 베풉니다. 앞으로 이렇게 어여쁜 보금자리숲 우리 식구가 즐겁게 누리는 한편, 우리 이웃들도 이녁 보금자리숲을 차근차근 가꿀 수 있으리라 꿈을 꿉니다.


  살아가자면 숲이어야 한다고 느껴요. 사람도 뭇목숨도 지구별도 스스로 숲이 될 때에 살아갈 수 있으리라 느껴요. 숲바람 마시면서 숲사람 됩니다. 숲내음 나누면서 숲밥 먹습니다. 숲노래 부르면서 숲사랑 심어요. 숲말을 나누고 숲책을 써서 숲이야기 물려줍니다. 다 함께 숲이 되어 어깨동무를 하면, 이 나라 이 지구에는 한결같이 평화와 평등과 민주와 통일과 아름다운 빛 드리우리라 생각해요. 4346.7.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이오덕 책읽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ppletreeje 2013-07-24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3년 8월 14일 암진단 판정을 받으시고, 8월 16일 아드님과 장례식 절차며 장지며 시비며그리고 거창한 장례식은 아주 싫다시며, 마을 사람들과 가까운 친척들께만 알리고 장례 지낸 후사람들에게 알리라고 하시며 편안한 마음으로 떠날 준비를 하시는 이오덕님의 글을 읽으며, 참..살아계실때도 돌아가실 때도...한결같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분이시구나, 정말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신 분이구나..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숲노래 2013-07-24 23:13   좋아요 0 | URL
살아갈 때와 돌아갈 때를 잘 헤아리면서 슬기롭게 마음을 빛낸 나날이었으리라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