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툇마루 만찬
카와치 하루카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2년 3월
평점 :
만화책 즐겨읽기 255
시원하게 함께 먹는 밥
― 툇마루 만찬
카와치 하루카 글·그림,김유리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2012.3.3./6500원
대청마루를 치웁니다. 여러 날에 걸쳐 천천히 치웁니다. 비가 후줄근하게 내리고 나서 여러 날 땡볕 내리쬐니 겨울옷 마당에 잔뜩 내놓아 말리면서 천천히 대청마루를 치웁니다.
우리 집 대청마루는 그리 넓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닥 좁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뛰놀기에 알맞고, 아이 하나 옆에 누여 낮잠을 재우기에 걸맞습니다. 모기그물 치고 대청마루에 앉거나 누우면 여름바람 쏴아 하고 들어옵니다. 처마는 햇볕을 막고, 흙과 나무로 이루어진 지붕은 햇살을 막습니다. 에어컨이나 선풍기는 없지만 여름날 부채로 땀을 식힙니다.
봄과 가을에 아이들은 거의 마당에서 삽니다. 봄가을에는 마당이 아이들 놀이터입니다. 겨울에는 추워서 마당에서 조금 놀다 집으로 들어오고, 여름에는 더워서 마당에서 살짝 놀다 집으로 들어옵니다. 처마와 마루란 더위를 긋고 추위를 가리는 좋은 자리로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 “음, 제법 맛있는데?” (13쪽)
- “이거, 할머니가 처음으로 가르쳐 주신 과자였잖아. 튀기는 족족 네가 옆에서 집어먹어서 혼날 줄 알았더니, 어째선지 할머니는 널 칭찬하셨지.” “그랬나?” (19쪽)
우리 식구 지내는 시골집은 크기가 조금 작아, 대청마루는 있으나 툇마루는 없습니다. 제법 큰 시골집은 대청마루 길고 넓게 펼치지는 한편, 툇마루도 꽤 크게 뒷밭 앞에 있습니다. 대청마루에서는 마당과 앞논과 마을과 앞메 넓게 내다봅니다. 툇마루에서는 뒷밭과 뒷메를 시원스레 바라보아요.
일본 만화책 《툇마루 만찬》(삼양출판사,2012)을 보면, 툇마루에서 밥잔치 벌이는 일은 드뭅니다. 그러나, 좋은 날 좋은 사람과 어울려 좋은 밥 차려서 함께 나누면, 으레 ‘툇마루 밥잔치’ 이루어집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겨레도 먼먼 옛날부터 마당잔치 이루어졌어요. 대청마루에서도, 마당에서도, 고샅에서도, 마을 정자나무 그늘에서도, 저마다 아리땁고 즐거운 밥잔치 이루어졌습니다.
돼지를 잡거나 소를 잡아야만 밥잔치가 아닙니다. 사랑을 담아 밥 한 그릇 지어 이웃과 두루 나누면 즐거운 밥잔치입니다. 즐겁게 차려서 즐겁게 나누는 밥잔치예요. 함께 장만해서 함께 누리는 밥잔치입니다.
- ‘할머니 집에 온 아침이면, 부엌에서 들리는 소리에 잠이 깬다.’ (47쪽)
- ‘아침이나 밤이나 마찬가지로 비는 늘 평등하다. 소리 없이 고르게 모두의 머리 위로 내리는 비.’ (59쪽)
우리 집 여섯 살 세 살 아이는 아버지 집일을 거의 거들지 못합니다. 멀거니 구경합니다. 그렇다고 아이들더러 이것 하라 저것 하라 시킬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저희 스스로 할 만하다 싶은 일이면 스스럼없이 먼저 나서서 돕습니다. 아이들은 저희 스스로 할 만하지 않구나 싶은 일이면 곁에서 까르르 웃음꽃 피우면서 재미나게 놉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놀면서 어른을 도와요. 논일에서도 그러잖아요. 모내기 잘 하라면서 꽹과리 치고 북 치면서 노래를 불러 주지요. 아이들은 어른 곁에서 사랑스럽고 살갑게 노래를 부르고 웃습니다. 아이들은 환하게 짓는 웃음빛으로 어른들한테 새 숨결 불어넣습니다. 아이들은 큰 짐이나 무거운 짐 나르지 못하지만, 맑으면서 밝게 짓는 웃음과 목소리와 몸짓으로 어른들 스스로 새 기운 샘솟도록 이끕니다.
- “키이치 오빠를 보면요, 세상엔 이런저런 사람이 있구나 싶어요. 이런저런 사람들이 각자 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아서 살아가면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할까.” (127쪽)
비싸게 치르는 밥을 먹어야 즐겁지 않아요. 으리으리한 곳에 가서 먹어야 고맙지 않아요. 웃으면서 먹는 밥이 맛있습니다.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며 즐기는 밥이 고맙습니다. 느긋하게 먹고, 기쁘게 함께 먹는 밥이 맛있어요. 알콩달콩 어우러지면서 함께 즐기는 밥일 때에 반갑고 아름답습니다.
대청마루에서 수박 한 조각 나누든, 툇마루에서 수박 반 조각 나누든 즐겁습니다. 대청마루에서 낮잠 한 숨 자도 즐겁고, 툇마루에서 매미와 풀벌레 노랫소리 들어도 즐겁습니다. 대청마루에서 파랗게 눈부신 하늘 올려다보아도 즐겁고, 툇마루에서 감알 영그는 마아갈 빛을 바라보아도 즐겁습니다.
마음이 즐거우니 삶이 즐겁습니다. 마음이 따사로우니 삶이 따사롭습니다. 마음을 가꾸면서 삶을 가꾸어요. 마음을 아끼면서 삶을 아낍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아이한테 차려 주는 밥은 영양소가 아닙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한테 내주는 먹을거리는 영양성분이 아닙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아이한테 사랑을 주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이한테 꿈을 주어요.
- ‘각자의 마음을 담은 이 자유로운 식탁을 언젠가 떠올릴 날이 올까. 그때 우리들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154쪽)
여름날 시원한 바람 함께 쐬기를 빌어요. 시원한 바람을 함께 쐬면서, 여름날 풀바람 나무바람 바닷바람 숲바람 얼마나 싱그러운지 함께 느껴요. 여름날 후끈후끈 달아오르는 땡볕을 함께 쬐기를 빌어요. 후끈후끈 땡볕과 불볕 함께 쬐면서, 이 햇볕을 먹는 우리들 튼튼하게 자라고 씩씩하게 살아갈 기운 함께 얻어요.
함께 살아가는 지구별이에요. 서로 돕고 아끼는 보금자리예요. 함께 사랑하며 꿈꾸는 지구별이에요. 서로 어깨동무하고 노래하는 마을이에요.
귀를 기울여요. 멧새와 들새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여요. 마음을 열어요. 풀잎과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에 어떤 내음 실리는가 마음을 열어 살펴요. 생각을 틔워요. 서로서로 아름답게 살아갈 길을 저마다 어떻게 일구면 즐거울까 하는 생각을 즐겁게 틔워요. 함께 먹는 밥이기에 맛나고, 함께 나누는 밥이기에 살아가는 보람을 느껴요. 4346.7.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만화책 즐겨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