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왕국 4
라이쿠 마코토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46

 


모두 같은 목숨
― 동물의 왕국 4
 라이쿠 마코토 글·그림,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2012.1.25./4500원

 


  개미가 볼볼 기어다닙니다. 개미는 먹이를 찾아 한꺼번에 몰려듭니다. 밥을 먹던 아이들이 뭐 하나 밥상 밑으로 흘리면 얼마 안 지나 개미 한두 마리 달라붙고, 이윽고 잔뜩 달라붙습니다. 밥알 하나만 하더라도 수많은 개미들 먹여살릴 좋은 밥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파리 주검도 모리 주검도 개미한테는 반가운 먹이가 됩니다.


  마루와 섬돌 언저리에서 떠도는 파리를 잡아 마당에 파리 주검을 내려놓으면 이때에도 꽃밭과 풀밭에 있던 개미들 이내 달라붙어 날개며 다리며 몸통이며 머리이며 하나하나 뜯어서 바지런히 물어 나릅니다. 아이들은 개미들 줄지어 걷는 모습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지켜본다는데, 어른도 아이와 같아요. 어른도 개미들 파리 주검 뜯어서 나르는 모습 하염없이 지켜봅니다.


  달팽이 주검도, 지렁이 주검도, 귀뚜라미 주검도, 개구리 주검도, 모두 개미가 달라붙어 남김없이 뜯어서 저희 집으로 나릅니다. 지렁이는 흙속에서 흙을 정갈하게 삭히는 구실을 한다는데, 이 지렁이가 죽으면 개미가 지렁이를 낱낱이 뜯어서 흙으로 돌아가도록 합니다.


  그렇다면, 개미가 죽을 때에는? 개미가 죽을 때에는 다른 개미가 물어 갈까요? 개미가 죽으면 조용히 흙하고 하나가 될까요?


- “카프리는 잡아먹히는 동물의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아?” “그런 거 일일이 신경 쓰다간 살 수가 없다고! 잡아먹히는 쪽이, 약한 쪽이 나쁜 거야!” “우왓! 나랑 똑같은 동물이면서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너야말로 사자 가족으로 받아주겠다는데, 약한 동물 편만 들다니 바보 아니야?” (13쪽)
- “같은 사자끼리 무슨 짓이야? 이 생명을 똑바로 보라고! 같잖은 이유로 생명을 빼앗으려 하지 마아아아!” (80∼82쪽)

 

 

 


  나뭇잎이 툭 떨어집니다. 여느 사람들은 가을에나 가랑잎이 흐드러진다고 여기지만,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봄과 여름에도 가랑잎 듣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동백나무는 봄에 헌 잎 잔뜩 떨굽니다. 후박나무는 여름에 헌 잎 그득 떨구어요.


  가을날 오동나무가 커다란 잎사귀 떨굴 적에는 길을 가다가도 깜짝 놀랍니다. 오동잎 지는 소리는 무척 크게 들려요. 그런데, 시골에서 후박잎 지는 소리를 들어도 깜짝 놀라요. 툭 하는 소리는 마당에서 집안까지 스며듭니다. 뭔가 하고 마당을 내다보면 누렇게 물든 헌 후박잎이 마당에서 데구르르 바람 따라 굴러요.


  이 가랑잎은 비와 바람과 햇살을 받으며 차츰 바스라집니다. 아주 천천히 바스라져서 흙하고 한몸이 됩니다. 흙하고 한몸이 된 가랑잎은 이내 나무를 살찌우는 새 거름이 됩니다. 그리고, 나무 둘레에서 돋는 풀한테도 고마운 거름이 되어요.


  해마다 겨울 찾아들어 들풀 모두 말라죽으면 누렇게 되지요. 누렇게 된 풀은 이듬해 봄에도 누런빛 그대로 있습니다. 따로 뽑거나 베지 않으면 온통 누런 풀밭입니다. 그런데, 이 누런 ‘죽은 풀’을 뽑지도 베지도 않고 가만히 지켜보셔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누렇게 말라죽은 풀은 첫봄 지나 한봄 거치고 늦봄 될 무렵 거의 사라집니다. 첫여름 접어들면 거의 찾아볼 수 없고, 한봄쯤이면 온통 푸른 물결입니다. 따로 사람들이 뽑거나 베지 않아도, ‘죽은 풀’은 아주 조용히, 또 천천히 흙 품에 안겨 ‘올해에 새로 돋는 풀이 씩씩하게 자라도’록 밑거름 구실을 합니다.


- “하지만 지진 않는다! 지면 모든 것이 끝장이야!” ‘뭐? 끝장? 상대는 겨우 3마리잖아?’ “알겠지, 새끼들아. 모두 단단히 각오하고 싸워야 한다.” (19쪽)
- “그만둬, 타로우자! 사자의 영역 다툼에 끼어들다니, 그건 바보나 할 짓이야! 이번엔 진짜 죽을 거야!” “알아! 난 언제나 바보야! 하지만 카프리는 살려 달라고 했어! 소리 내서 말하진 않았지만, 분명히 살려 달라고 했어! 너희는 따라오지 마! 따라오면 죽으니까. 오지 마!” (44∼45쪽)
- ‘아니야, 이렇게 강한 건 훌륭한 게 아니야! 이런 힘은 갖고 싶지 않아! 강하지 않아도 좋으니, 살려 줘, 이 아이들을 살려 줘!’ (59∼60쪽)

 

 

 

 


  예부터 사람은 죽으면 흙으로 간다 했습니다. 몸은 흙으로 가고, 마음은 하늘로 간다 했어요.


  오늘날 도시문명을 헤아려 봅니다. 도시문명에서 사람은 죽어 어디로 갈까요. 죽은 사람 몸뚱이가 곱게 묻혀 돌아갈 흙은 어디에 있을까요. 죽은 사람 넋이 올라갈 하늘은 어디에 있을까요. 죽은 사람 몸뚱이는 고운 흙과 하나되어 풀과 꽃과 나무가 아름답게 피어나도록 북돋우는 거름이 될 수 있는 오늘날인가요? 죽은 사람 넋은 너른 하늘과 하나되어 온누리 따사롭게 보듬는 사랑스러운 빛이 될 수 있는 오늘날인가요?


  흙땅은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꽁꽁 덮입니다. 도시뿐 아니라 시골에서도 맨흙으로 된 땅을 밟기 아주 어렵습니다. 나무숲이라 하는 수목원조차 흙길은 너무 많은 사람이 지나다며 딱딱합니다. 보송보송 포근포근 보드라운 흙길을 어디에서 거닐 만할까요. 먼먼 옛날부터 얼마 앞서까지 어느 누구도 ‘무덤’이나 ‘주검’을 놓고 골머리를 썩지 않았어요. 오늘날에는 ‘무덤’이 너무 늘어 걱정을 하고, ‘주검’을 어떻게 해야 할까를 놓고 근심을 합니다.


  새도 짐승도 벌레도 꽃도 풀도 나무도, 살아서 숨쉴 적에는 푸른 빛을 내뿜다가, 죽어서 스러질 때에는 곱게 흙하고 하나가 되는데, 오직 사람이라는 목숨붙이만, 몸이며 마음이 갈 데가 없어요.


- “어째서, 우리는 같은 사자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걸까? 강한 수컷의 새끼를 남기는 게, 이 가혹한 자연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 믿었지만, 자연은 아직 우릴 죽이지 않고 있어. 우릴 죽인 건, 같은 사자.” (102쪽)
- “죽이고 서로 잡아먹음으로써 이 세계는 성립되는 거야.” “그래! 하지만 잡아먹히는 쪽은, 그저 잡아먹히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야! 강한 동물도 막상 죽임을 당할 처지에 놓이면, 먹고 먹히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원할 거야!” (167쪽)

 

 

 


  라이쿠 마코토 님 만화책 《동물의 왕국》(학산문화사,2012) 넷째 권을 읽습니다. 《동물의 왕국》 넷째 권에서는 ‘사물에 이름을 처음으로 붙이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사물뿐 아니라 삶에도 처음으로 이름을 붙여요. 이를테면, 잔치라든지 두레라든지 놀이라든지 춤이라든지 노래라든지 하면서, 새롭게 누리는 모든 삶에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요.


- “저기, 이 계획에 뭔가 이름을 붙이는 건 어떨까?” “응, 그렇다면, 이걸 ‘축제’라 부르자.” (116쪽)
- “이런 걸 누가 생각한 거야? 이렇게 행복한 순간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새끼 사자까지 있어. 한순간일지 모르지만. 이 세계에서, 우리는 이런 일을 해낸 거야.” (136쪽)


  ‘즐겁다’라는 낱말도 옛사람이 지었습니다. 임금님이나 칼잡이나 지식인이 지은 낱말이 아니에요. 흙을 만지며 풀을 먹고 바람을 마시던 여느 시골사람이 ‘즐겁다’라는 낱말을 지었어요.


  ‘웃다’라는 낱말도, ‘(사랑을) 나누다’라는 낱말도, 모두 여느 시골사람이 즐겁게 지었어요. ‘아이’라는 낱말과 ‘어른’이라는 낱말도, 고스란히 여느 시골사람이 활짝 웃으며 기쁘게 지었습니다. 곧, 아이는 아이다울 때에 아이요, 어른은 어른다울 때에 어른입니다. 사람은 사람다울 적에 사람이며, 꿈은 꿈다울 때에 꿈이 될 테지요.


  생각을 기울여 한결 빛나는 생각을 얻어요. 마음을 쏟아 한껏 눈부신 마음을 밝힙니다. 즐겁게 일하고 신나게 놉니다. 아름답게 두레와 품앗이를 하며, 사랑스럽게 꿈을 빚습니다. 즐거움과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이 어우러질 때에 비로소 ‘삶’입니다.


- “우린 이런 어마어마한 걸 만들 수 있다. 어때, 굉장하지?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180쪽)


  옛날 시골사람이 빚은 어여쁜 낱말 ‘앞’을 떠올립니다. 옛날 시골사람들이 앞을 바라보며 지은 ‘꿈’이라는 낱말을 곱씹습니다. 풀을 먹고 바람을 마시며 햇살을 쬐면서 지은 수많은 ‘사랑’ 어린 낱말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누구와 어깨동무를 할 때에 사람다운 사람이 될까요. 우리는 어떤 꿈과 사랑을 빛내면서 활짝 웃어야 아름다운 어른으로 우뚝 서면서 해맑은 눈빛 반짝이는 아이들을 돌볼 수 있을까요.


  모두 같은 목숨입니다. 풀과 사람은 같은 목숨입니다. 새와 사람은 같은 목숨입니다. 벌레와 사람은 같은 목숨입니다. 풀을 아끼는 사람이 사람을 아낍니다. 새를 사랑하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합니다. 벌레를 알뜰히 보듬을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를 따사롭게 보듬을 줄 압니다. 4346.7.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만화책 즐겨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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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7-13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동화를 읽고 있는데 다음에 책 구입할 때 만화책도 구입할 예정입니다.
좋은 정보를 얻어 갑니다. ^^
다른 글들도 참고하겠습니다.

숲노래 2013-07-14 07:17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만화책 많이 있답니다.
사람들이 제대로 살피지 못하면서
만화는 거의 소개되지도 알려지지도 못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