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7.2.
 : 시골을 달리는 자전거

 


- 저녁 일곱 시 반, 자전거를 마당에 내려놓는다. 아이들아, 우리 저녁마실 다녀와 볼까?

 

- 시골마을 한여름 일곱 시 반은 아직 환하다. 해는 아직 저 멧자락 너머로 넘어가지 않았다. 마당에 내놓은 빨래를 걷는다. 오늘 비가 온다 한 듯하지만 마을에서 하늘을 볼 적에는 비 올 낌새는 없다. 다만, 물기 머금은 바람이 불어 한여름인 데에도 빨래가 잘 안 마른다. 집안으로 빨래를 옮긴다. 나무로 된 평상에 덮개를 씌운다. 오늘은 비가 안 올 테지만, 아마 새벽에 비가 올는지 모르니까.

 

- 대문을 활짝 열고 자전거를 밖으로 끌어낸다. 아이들은 벌써 저 밑까지 달려 내려간다. 그러고는 다시 달려서 올라온다. 이렇게 다니기만 해도 좋지?

 

- 늘 다니던 큰길로 가다가 자전거를 돌린다. 오늘은 천천히 다니자. 논둑길로 달리면 어떨까. 마을과 마을 사이에 펼쳐진 넓따란 들판을 가로지른다. 저기 해오라기 두 마리 보인다. 나도 보고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도 본다. “아버지, 저기 해오라기 있어요. 두 마리만 있어요. 많이는 없어요.” 그래, 저녁이니까 다들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두 마리만 남았는지 모르겠다. “쟤네들 여기에서 뭐 먹어요? 쟤네들도 바람 먹어요?” “응, 바람도 먹고 개구리도 먹지.”

 

- 장마비 몰려든다고 하는데, 구름빛이 좋다. 온갖 구름 갖은 빛깔로 어우러진다. 시골에는 높다란 건물 없어 하늘을 한껏 누린다. 시골에는 널찍한 찻길 없어 조용히 하늘과 멧자락을 바라본다. “아버지, 아버지, 저기 구름이 앉았어.” 멧봉우리에 구름이 걸린 모습을 본 큰아이가 말한다. “그래, 구름이 멧자락에 앉았네.” 숲에 깃들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풀과 나무와 바람과 햇살과 흙을 누리면 모두 아름다운 생각을 가슴에 품는다.

 

- 논도랑 옆에서 자전거를 살짝 세운다. “벼리야, 소리 들리니? 이 소리가 또랑물 흐르는 소리야.” 비록 흙 아닌 시멘트로 바꾼 논도랑이지만, 도랑물 또는 또랑물 소리를 아이들과 함께 듣는다. 다시 자전거를 달린다. 길 없는 데로 달렸다가 돌아나온다. “아버지, 길 있는 데로 가야지요.” 길 있는 데로 엉금엉금 올라와서 한참 달리니 퍽 넓은 봇도랑 곁을 지난다. “아버지 저건 뭐야?” “응, 냇물. 아니 시냇물.” 봇도랑이라고 해야 할까 시냇물이라 해야 할까 모르겠다. 온통 시멘트로 덕지덕지 발라서 막은 이곳을 참말 무어라고 말해야 할까 알쏭달쏭하다. 흙바닥 아닌 물줄기를 시냇물이나 냇물이라고 해도 좋을까? 흙바닥 아닌 시멘트바닥이 된 곳을 ‘강’이나 ‘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마을마다 농약을 치니 농약 기운이 봇도랑물에 퍼지는 모습 보인다. 이런 비닐쓰레기 저런 비료푸대 그런 갖가지 쓰레기가 봇도랑물과 함께 흐른다. 그런데 이런 봇도랑물에도 물고기가 있다.

 

- 면소재지 가게에 들른다. 아이들 과자 몇 점 산다. 자, 집에 가서 먹자, 알았지?

 

-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다른 길로 빠진다. 천천히 천천히 달린다. 저녁바람을 마시고 저녁하늘을 바라본다. 어스름 천천히 깔린다. 하늘빛 천천히 바뀐다. 여름해가 지고 여름밤 찾아든다. 개구리 노랫소리 천천히 늘어난다. 이제 우리들 집에 닿을 무렵 온 마을에 개구리 노래잔치 이루어지겠지. 장마철에는 어느 집도 농약을 안 칠 테니까 이 노래잔치 흐뭇하게 누릴 수 있겠지. 곰곰이 생각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언제쯤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버릴 수 있을까. 이 나라 사람들은 언제쯤 똥오줌 거름을 내어 논밭을 일구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무래도 도시가 이토록 큰 오늘날에는 안 되리라 본다. 사람들 스스로 도시를 떠나지 않고서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저 도시에 앉아서 도시내기 되는데, 시골이 바뀔 수 없다. 생협이나 협동조합이니 모두 좋다만, 도시에서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짓지 못하면서 머리만 맞댄다면 무엇이 달라질 수 있겠는가. 사람들 스스로 자가용을 버리지 않으니 자꾸만 시멘트길과 아스팔트길이 늘어난다. 사람들 스스로 아파트를 버리지 않으니 자꾸만 화력발전소와 핵발전소를 짓는다. 사람들 스스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노동자 쳇바퀴 삶을 버리지 않으니 시골사람은 시골땅을 농약범벅으로 망가뜨리면서 겉보기 때깔 번드레한 곡식과 열매 거두는 일을 할 뿐이다. 젊은 일꾼이 시골에 있고, 아이들이 시골에서 노래하면, 어떤 사람이 이곳에 농약을 함부로 치겠는가. 저 맑은 하늘과 구름과 햇살과 달빛과 바람이 사람들 모두 먹여살리는 줄 우리 이웃들은 언제쯤 헤아릴 수 있을까.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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