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쓴 지렁이 - 2017년 초등 교과서 수록도서 현암아동문고 51
오은영 지음 / 현암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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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18

 


이야기꽃은 늘 마음속에
― 우산 쓴 지렁이
 오은영 글·그림
 현암사 펴냄,2001.20.5./8500원

 


  이야기꽃은 늘 마음속에 있습니다. 스스로 곱게 길어올리면 어떤 이야기꽃이든 활짝 피어납니다. 스스로 즐겁게 길어올리지 않으면 어떤 이야기꽃이라 하더라도 태어나지 못합니다.


  이야기꽃은 늘 스스로 피웁니다. 남이 피워 주지 못합니다. 이웃도 동무도 살붙이도 내 이야기꽃을 피우지 못해요. 오직 스스로 마음속에서 이야기꽃을 간질여 깨울 수 있습니다.


  이야기꽃은 스스로 이야기꽃입니다. 즐거운 일 겪으며 웃고, 슬픈 일 치르며 우는 마음은 스스로 샘솟습니다. 남들이 웃으니 웃지 않아요. 남들이 우니까 울지 않아요. 마음속에서 웃음과 눈물이 샘솟을 때에 비로소 웃거나 울어요.


  이야기꽃은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저 먼 나라에 있는 이야기꽃이 아니에요. 저 다리 건너, 저 냇물 너머, 저 멧자락 지나야 나타나는 이야기꽃이 아닙니다. 우리 집 꽃밭에서 이야기꽃이 핍니다. 우리 집 밥상에서 이야기꽃이 흐드러집니다.


.. 별들의 마을에서는 / 도시 학교 아이들이 줄고 있대요. / 새까맣고 매운 연기에 / 눈이 아파 / 더 있다가는 모든 아이가 / 안경 써야 될 것 같다며 / 시골로 시골로 이사해 / 할머니 별들만 남아 있대요 ..  (아이들이 줄어드는 이유)


  중국을 여행하거나 유럽을 여행하거나 남미를 여행하거나 아프리카를 여행해야 시를 쓸 수 있지 않습니다. 전문 작가이든 대학 교수이든 똑같습니다. 여행을 하기에 시를 쓰지 않아요. 시를 쓰려는 사람은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를 깨달아야 합니다.


  방바닥에 차분히 앉아서 눈을 지긋이 감아요. 마음속으로 어떤 이야기 떠오르는지 가만히 헤아려요. 시를 쓰는 사람은 작은 집 작은 방에 있을 때부터 시를 씁니다. 아니, 시를 쓰는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서 무럭무럭 크는 동안 시를 써요. 시를 쓰는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나는 날부터 시를 써요. 시를 쓰는 사람은, 밥 먹고 노래를 부르고 빨래를 하고 풀잎 어루만지면서 시를 써요.


  시는 바로 우리 곁에서 빛나요. 시가 되는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 곁에서 속삭여요.

  밥상맡에서 젓가락을 들며 시를 씁니다. 밥알을 하나 집는구나, 콩알을 하나 집네, 무채 하나 집었네, 하면서 시를 씁니다. 들길을 걸어가며 시를 씁니다. 하늘이 어떻게 파란가 살피며, 구름이 어디로 흐르나 헤아리며, 멧봉우리에 걸리는 구름이 얼마나 오래 하얗게 빛나는가 돌아보면서 시를 씁니다. 잠자리에 들며 시를 씁니다. 모기 앵앵거리는 소리를 듣다가, 지붕을 때리고 텃밭 흙땅을 때리는 빗소리 들으며 시를 씁니다.


.. 이게 뭐지? // 지난 봄 / 앞동산에 뿌려 놓았던 / 민들레, 꽃다지, 쑥부쟁이 씨앗 / 다 어디 가고 / 아파트 씨앗이 움텄지 ..  (봄바람이 놀란 일)


  아이들한테 읽힐 동시를 쓴다고 한다면,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가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그냥 놉니다. 아이들은 맨땅에서도 그냥 놀고, 아이들은 이부자리에서도 그냥 놀며, 아이들은 밥을 먹다가도, 글놀이나 그림놀이를 하다가도, 또 길을 걷다가도 마냥 놀아요.


  곧, 동시는 그냥 씁니다. 놀잇감이 없어도 즐겁게 노는 아이들처럼, 동시를 쓰는 어른은 글재주나 글솜씨 없다 하더라도 즐겁게 동시를 씁니다. 동시는 마냥 씁니다. 빈터에서 저마다 새로운 놀이를 떠올려 여러 시간 땀흘리며 개구지게 노는 아이들마냥, 동시를 쓰는 어른들은 신나게 붓을 놀리고 연필을 놀리며 자판을 놀리면서 동시를 써요.


  그저 달리기만 해도 까르르 웃는 아이들입니다. 그저 살아가는 이야기를 살포시 담으면 동시가 되는 우리 어른들입니다. 섬돌에서 폴짝 뛰지요. 마당을 가로지르며 달리지요.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서로 엇갈려 달리지요. 달리다가 서로 부딪히면 더 크게 웃지요. 아, 힘들어, 하면서 평상에 털썩 주저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지요. 그러니까, 이렇게 스스럼없이 노는 아이들처럼, 우리 어른들도 동시를 쓸 적에는 스스럼없이 쓰면 됩니다. 문장 작법이라든지 문장 표현법이라든지 따지지 말아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는 생각하지 말아요.


  생각해 보셔요. 아이들과 노래를 부르면서 ‘노랫말 띄어쓰기’를 누가 생각하나요. 먼먼 옛날, 고을마다 풀이름 짓고 나무이름 지을 적에 어느 누가 표준말이나 맞춤법이니 생각했나요. 마음속으로 떠오르는 가장 사랑스러운 이름 하나를 엮어 풀과 꽃과 나무한테 다가가 따사롭고 밝은 목소리로 읊을 뿐이었어요.


  봉숭아꽃 이름 지은 옛사람 마음이 되어요. 복숭아나무 이름 지은 옛사람 마음이 되어요. 진달래꽃 이름 지은 옛사람 마음이 되어요. 잣나무 이름 지은 옛사람 마음이 되어요. 아이들은 놀면서 사랑을 키우고, 어른들은 동시를 쓰면서 사랑을 키웁니다.


.. 집채만큼 큰 고래도 / 엄마 젖 빠는 귀여운 새끼고래였대요. / 다람쥐처럼 ..  (작은 시작)


  오은영 님 동시집 《우산 쓴 지렁이》(현암사,2001)를 읽습니다. 수수한 이야기를 수수하게 잘 풀어낸다고 느낍니다. 동시로 쓸 글감을 하늘에서 따거나 멀디먼 나라에서 끌어들이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 집’에서 이야기를 찾습니다. 바로 ‘우리 아이’한테서 이야기를 느낍니다.


  그렇지요. ‘우리 집’이란 내가 살아가는 집이면서 내 이웃한테는 ‘내 이웃이 사는 집’입니다. 또, 다 다른 아이들이 저마다 살아가는 ‘우리 집’이에요. ‘우리 아이’ 또한 나한테는 내 아이라 할 테지만, 내 이웃들로서는 저마다 이녁이 아끼고 사랑하는 ‘내 아이’가 됩니다.


.. 너, 가 봤니? / 강아지풀 / 토끼풀 / 도깨비풀 / 사이 좋게 어울리는 곳 / 고추랑 토란대가 나란히 있고 / 호박덩굴도 울타리랑 손 잡고 있는 곳 ..  (시골 마당)


  대단한 작품이 되어야 할 동시가 아닙니다. 놀라운 솜씨를 보여주어야 하는 동시가 아닙니다. 사랑을 담으면서 쓰면 되는 동시입니다. 꿈을 빛내면서 나누면 되는 동시입니다.


  오랜 옛날 두고두고 이어온 옛이야기를 헤아려 보셔요. 먼먼 옛날부터 옛이야기 한 자락 들려준 어버이는 ‘대단한 이야기’를 아이한테 들려주려 하지 않았어요. 그예 이녁 살아온 결대로 이야기를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꾸미거나 감추거나 덧바르지 않아요. 수수한 삶결을 사랑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호미질을 하는데 재주 부릴 까닭이 있겠습니까. 쟁기질을 하면서 솜씨 뽐낼 까닭이 있겠습니까. 집을 지을 나무를 베면서, 기둥으로 세울 나무를 깎으면서, 벽과 지붕에 흙을 바르고 수수깡을 놓으면서, 어느 누구도 재주나 솜씨를 부리지 않아요. 오직 사랑 한 가지로 집을 짓습니다.


  밥을 짓는 어버이 또한 사랑을 담아 밥을 짓습니다. 옷을 짓는 어버이 또한 사랑을 실어 옷을 짓습니다. 모든 삶은 사랑입니다. 모든 삶은 사랑이면서 꿈입니다. 사랑과 꿈이 얼크러져 이야기 한 자락 되고, 오늘날에는 어른들이 아이한테 건네는 예쁜 선물인 동시가 됩니다.


.. 아가 입 속에 / 싹이 나요. // 반짝반짝 / 하얀 싹 ..  (아가 이)


  동시집 《우산 쓴 지렁이》를 읽다 보면, 오은영 님도 이런저런 글솜씨나 글재주 부리려고 한 대목 곳곳에 드러납니다. 그러나, 좀 예쁘장하게 보이고 싶어 예쁘장하게 꾸민대서 글이 예쁘장한 모습 되지 않습니다. 이런 솜씨를 부려서 글멋을 내려 한대서 참말 글멋이 나지 않아요.


  조미료를 치면 칠수록 밥과 국에는 조미료 냄새만 더 날 뿐입니다. 조미료를 조금 치면 조미료 맛이 조금 나고, 조미료를 많이 치면 조미료 맛이 많이 나요. 알 만한가요? 사랑을 조금 실으면 사랑을 조금 느낄 만하고, 사랑을 듬뿍 담으면 사랑을 듬뿍 느낄 만해요.


  동시를 쓰면서 어떤 마음이 되어야 하는가 저마다 스스로 깨우쳐야 합니다. 어떤 동시를 써서 어떤 아이와 함께 어떤 이야기꽃 피우고 어떤 웃음과 눈물 나누고 싶은가를 먼저 스스로 깨우쳐야 합니다.


  조미료를 치기에 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조미료 치고 싶으면 칠 뿐입니다. 다만, 생각해야 할 대목은, 조미료를 치면 조미료맛이 난다뿐이에요. 조미료를 안 치면 조미료맛이 안 나겠지요.


  물고기를 생각해요. 깨끗한 바다에서 낚은 물고기는 깨끗한 맛입니다. 발전소와 공장과 갖가지 쓰레기 때문에 더러워진 바다에서 낚은 물고기는 ‘사람들이 더럽힌 찌꺼기와 때’가 스며든 맛입니다.


  중금속은 천천히 쌓여요. 사라지지 않아요. 동시 한 자락에 친 조미료는 중금속처럼 사라지지 않아요. 사랑도 차츰차츰 쌓여요. 없어지지 않아요. 동시 한 자락에 담은 사랑은 없어지지 않아요. 언제나 새롭게 빛나지요. 사랑은 언제나 새삼스럽게 환하지요.


  문학을 하지 말고 이야기를 아이들과 나누려는 생각 되기를 빌어요. 작품을 쓰지 말고 이야기를 아이들과 즐기려는 마음 되기를 빌어요. 예술도, 어린이문학도 아니에요. 언제나 이야기예요. 언제나 즐겁게 살아가는 넋이고, 언제나 아름답게 노래하는 빛입니다. 동시 쓰는 어른들 스스로 이녁 어린 날에 얼마나 즐겁게 땀흘리며 뛰놀았는지 돌이켜보기를 빕니다. 4346.7.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동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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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7-03 09:52   좋아요 0 | URL
호미질을 하는데 재주 부릴 까닭이 있겠습니까. 쟁기질을 하면서 솜씨 뽑낼 까닭이
있겠습니까.-
이야기꽃은 늘 마음 속에,
그렇겠지요..^^

숲노래 2013-07-03 13:38   좋아요 0 | URL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 줄 적에
요리사 아버지나 어머니라고 하더라도
솜씨를 뽐내지 않고
사랑으로 짓듯...

알고 보면,
동시도
모든 문학도
다 사랑으로 쓰는데
사람들이 너무 이 대목을 모르는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