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는 마음

 


  큰아이와 글씨쓰기 놀이를 합니다. 여섯 살 큰아이한테 글공부 시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섯 살 큰아이가 한글을 하나둘 스스로 익혀 혼자서 즐기고픈 만화책이나 그림책에 나오는 글월 잘 읽어내어 맛볼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여섯 살 큰아이는 공책을 펼쳐 글씨쓰기 놀이를 할 적에 두 바닥만 쓰고, 세 바닥이나 네 바닥까지 나아가지 않습니다. “네 이 녀석, 만화영화 볼 적에는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넋을 놓잖아!” 하고 핀잔을 하면 싱긋 웃습니다. 그래, 네가 가장 좋아하거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곳에 그렇게 넋을 놓듯 빠져들 테지.


  큰아이는 공책 한켠에 어느새 그림을 그립니다. 아마, 글씨 따라 그리기보다 혼자 마음껏 그리는 그림이 훨씬 즐거울는지 몰라요. 아니, 그렇겠지요. 글씨를 쓰자는 공책에 글씨 아닌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물끄러미 바라볼 뿐 아니라 사진으로도 찍습니다. 그림을 다 그리면 공책에 그림이 고스란히 남지만, 그림을 그리는 흐름을 사진으로 찍어 어찌저찌 손을 놀리며 차근차근 그림이 이루어지는가를 살핍니다.

  모든 일은 놀이요, 모든 글쓰기도 놀이이며, 모든 그림그리기도 놀이라고 언제나 새삼스레 느낍니다. 아이들한테는 글쓰기도 그림그리기도 사진찍기도 가르칠 까닭 없습니다. 어른 스스로 글과 그림과 사진을 즐기면 될 뿐입니다. 어른 스스로 글과 그림과 사진을 즐기는 모습을 아이 곁에서 보여주면, 아이는 아이 깜냥껏 스스로 빛내고픈 글과 그림과 사진으로 나아갑니다.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곁에서 나도 그림을 그려요. 아이가 뛰노는 곁에서 나도 뛰놀아요. 아이가 노래를 부르는 곁에서 나도 노래를 불러요.


  먼먼 옛날부터 학교라는 데는 따로 짓지 않아요. 집이 바로 학교이니까요. 먼먼 옛날부터 교사를 따로 두지 않아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바로 교사이니까요. 먼먼 옛날부터 굳이 나무를 베어 책을 만들지 않아요. 숲과 풀과 나무가 바로 책이니까요. 4346.6.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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