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책 14] 절구에 담은 그림
돌울타리, 텃밭, 꽃밭, 나무밭, 풀지붕, 나무문살, 문고리에
다듬이돌, 불쏘시개, 절구, 다리미, 빨래터, 우물, 물동이에
밥그릇, 수저, 옷, 바느질, 길쌈, 베틀, 짚신, 빨래줄, 밥에
빛과 그림과 이야기 담으며, 사람들 오래오래 살아왔습니다.
‘미술사’나 ‘미학’을 다루는 학자가 있습니다. ‘미술사’나 ‘미학’을 밝히는 책이 있습니다. 서양미술과 동양미술이 있을 테고, 한국미술과 중국미술과 일본미술이 있을 테지요. 저마다 재미난 이야기 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서양에서나 동양에서나, 한국에서나 중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여느 사람들 여느 살림살이에서 ‘미술을 읽’거나 ‘미학을 읽’는 사람은 매우 드물어요. 야나기 무네요시 같은 사람을 뺀다면, 아마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어요. 막사발이든 숟가락이든 비녀이든, 호미이든 낫이든 쟁기이든, 왜 이런 데에서는 미술도 미학도 캐내지 못할까요. 곰곰이 돌아보면, 한국땅에는 전형필이라는 사람 있고, 조자용이라는 사람 있으며, 예용해라는 사람과 진성기라는 사람 있어요. 이런 분들은 그동안 학자들이 건드리지 않은 미술과 미학을 새로운 눈길로 보듬었어요. 학문에 갇히거나 책에 사로잡힌 미술과 미학이 아닌, 삶에서 사랑을 느끼고 시골에서 꿈을 헤아린 이야기 한 자락 한 올 두 올 길어올릴 수 있어요. 4346.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