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꽃, 푸른 잎사귀, 흰나비

 


  식물학자는 풀포기 하나를 놓고 아주 자잘하게 이름을 나누어 가리킨다. 나는 식물학자가 아니라서 풀포기 하나하나 자잘하게 이름을 나누어 가리키지 않는다. 꽃마리와 좀꽃마리를 보고도 그냥 꽃마리라 하고, 봄까지꽃과 큰봄까지꽃을 보아도 그냥 봄까지꽃이라 한다. 털제비꽃도 낚시제비꽃도 남산제비꽃도 모두 제비꽃이라고만 한다. 풀들로서 생각하자면 서운할 수 있는데, 다르게 생각하면 꼭 서운한 일도 아니다. 중국사람 일본사람 한국사람 똑똑히 나누어 말해도 되지만, 그냥 ‘사람’이라 해도 된다. 게다가 한국사람도, 전라도사람 경상도사람 서울사람 부산사람 나눌 테고, 전라도사람도 고흥사람 여수사람 광주사람 나눌 텐데, 고흥사람도 도화사람 포두사람 나로사람 나눌 테지만, 또 면소재지에서 마을로 쪼개어 어디어디 사람으로 가를 수 있다.


  어디까지 갈라서 말하느냐는 마음에 달린다. 제비꽃을 바라보며 털제비꽃이라고까지 가를 수 있고, 큰털제비꽃이라고 또 가를 수 있다. 누군가는 제비꽃이라고도 말하지 않고 들꽃이라 말할 수 있고, 누군가는 그냥 ‘꽃’이라고만 말할 수 있다. 아마, 어느 누군가는 꽃이라고도 않고 ‘목숨’이나 ‘숨결’이라고도 하겠지.


  아직 이름을 잘 모르는 어느 풀포기 어느 하얀 꽃송이에 내려앉은 흰나비를 바라본다. 흰나비는 배추흰나비인가? 배추흰나비가 맞는 듯하지만 그냥 ‘흰나비’라 하자. 더 단출하게 ‘나비’라 해도 좋다. 흰꽃에 흰나비가 앉는다. 흰꽃 물결치는 곳에 흰나비 앉는다. 흰꽃물결 사이에서 흰나비는 거의 안 드러난다. 이러다 문득, 흰꽃이 꽃대를 올리고 잎사귀를 퍼뜨리자면 ‘푸른 빛깔’ 있어야 하고, 푸른 빛깔이란 줄기와 잎사귀로구나 하고 느끼면서, 둘레에 푸른 물결 가득한 흰꽃송이에 흰나비 내려앉기를 기다린다.


  곱구나. 흰꽃도 흰나비도 푸른 잎사귀도. 4346.6.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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