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밤길
고흥으로 아이들 보러 나들이를 한 이모와 이모부를 배웅하러 읍내에 간다. 이모와 이모부 태운 시외버스가 읍내를 벗어나려 할 때에, 여섯 살 큰아이는 울먹울먹하는 얼굴이 된다. 큰아이를 안고 달랜다. 읍내에서 저녁을 먹는다. 저녁 여덟 시 반, 읍내에서 마을로 돌아오는 마지막 군내버스를 탄다. 집으로 돌아오는 어둑어둑한 길, 군내버스에 탄 손님은 우리 네 식구 말고 두 사람. 이분들은 포두면 소재지에서 내린다. 이제 군내버스에는 우리 식구만 있다. 호젓한 밤길을 군내버스 천천히 달린다. 고당마을 지나고 봉동마을 지난다. 이제 봉서마을에서 동백마을 쪽으로 꺾으면 된다. 그런데, 군내버스가 동백마을 쪽으로 안 꺾고 도화면 소재지 쪽으로 내처 달린다. 어라. 버스 일꾼이 우리가 어디에서 내리는 줄 모르시나. 서둘러 단추를 누른다. 우리는 안쪽 마을로 들어가야 하는데 더 가면 안 된다고 부른다. 버스 일꾼은 우리가 면소재지로 가는 줄 알았단다. 아니, 면소재지까지는 버스삯 1800원이고, 동백마을은 버스삯 1500원인데, 이를 헷갈리시다니.
넓지 않은 시골길에서 버스가 꺾어서 달릴 수는 없는 노릇. 우리는 황산마을에서 내린다. 삼십 분 남짓 걸어서 돌아가야 하지만 괜찮다 얘기하고 내린다. 밤비 내릴듯 말듯 하는 밤길에 선다. 졸린 두 아이는 걷다가 안기다가 업히다가 하면서 논둑길을 함께 지나간다. 저 멀리 마을 등불 보이는 데 빼고는 모두 깜깜한 어둠이 드리운다. 개구리들 신나게 노래한다. 구름이 안 끼었으면 밤별 흐드러진 논둑길 밤마실이 되었을 테지만, 구름이 잔뜩 낀 밤마실은 또 이런 밤마실대로 좋다.
작은아이는 이내 잠이 든다. 큰아이는 씩씩하게 걷는다. 마을 어귀에 이를 무렵 작은아이를 옆지기가 업고, 이때부터 큰아이는 아버지 품에 안긴다. 오늘 하루 이모랑 이모부하고 잘 놀았고, 아침에도 아주 일찍 일어나서 이제껏 낮잠 없이 잘 견디며 놀았지? 새근새근 잘 자렴. 집으로 돌아가서 잠자리에 누워 빗소리 들으며 잠들렴. 코코 자고 일어나면, 오월 빗물 먹고 들딸기 한껏 붉게 무르익는단다. 이 비 그친 뒤 다 같이 들딸마실 가자. 4346.5.1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