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쓰기
― 다른 사람 사진을 얻을 때에

 


  사진을 한 장 찍기까지 사진쟁이 한 사람은 무엇을 하는가 헤아려 본다. 아마, 사진기가 있어야 사진을 찍는다고 여기겠지. 그런데, 사진기가 있기 앞서,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무엇을 사진으로 담고 싶은가’ 하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 무엇을 사진으로 담고 싶은가 하는 생각이 있자면, 한 사람으로서 살아온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곧,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사진기가 있어도 사진을 못 찍는다. 이야기를 스스로 일구면서 살아오지 못한 사람은, 사진기 있고 ‘무엇을 사진으로 담고 싶은가’ 하는 생각을 품더라도, 스스로 즐겁고 아름답게 사진을 찍지 못한다.


  곧, 사진길 걷는 사람으로서 맨 먼저 갖출 대목은 삶이다. 스스로 즐기고 사랑하는 삶이 있어야 한다. 이런 다음에, 이녁 삶을 사진으로 나타낼는지 글로 나타낼는지 노래나 춤으로 나타낼는지, 아니면 조용히 살림 꾸리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하루하루에 살며시 나타낼는지 하고 가눌 수 있다. 삶이 있어 이야기 있은 뒤, 생각을 추스르고 나서 사진기를 장만했으면, 필름으로 사진을 찍으려는지 디지털파일로 사진을 찍으려는지 가눈다. 어떻게 남길 사진을 찍으려 하는가를 가누었으면, 사진기 다루는 법을 익힌다. 사진기 다루는 법을 살뜰히 익힌 뒤에는, 바지런히 사진마실을 누린다. 집에서 아이들 찍는 사진일 때에도, 부엌과 방과 마당과 이웃집 바지런히 오가며 사진마실 누린다. 어떤 사진이건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마실을 누린다.


  꾸준히 사진마실을 누리면서 사진을 한 장 두 장 찍으면, 어느새 사진이 모인다. 이렇게 모인 사진으로 새삼스레 ‘사진 이야기’ 한 타래 빚는다. 사진 이야기를 한 타래 빚으면, 둘레에서 내 사진을 알아보기도 하고, 둘레에서 내 사진을 알아볼 때가 되면, 나한테서 사진을 얻고 싶다는 사람이 나온다.


  신문이나 잡지나 매체에서 사진을 얻고 싶다면서 나한테 찾아오면, 나는 그동안 찍은 사진 가운데 몇 가지 추려서 보여주겠지. 그러니까, 누군가 사진쟁이 한 사람한테서 사진 한 장 얻는 일이란, 사진쟁이 한 사람이 살아낸 기나긴 나날과 오랜 다리품과 깊은 사랑과 꿈 가운데 한 자락 얻는 셈이다. 사진 한 장 달라고 섣불리 바랄 수 없는 노릇이다. 사진 한 장 얻었으면 마땅한 값을 치를 생각이 있어야 한다. 사진값 치를 생각 품지 않고서 함부로 사진을 보여 달라 해서는 안 될 노릇이다. 사진 한 장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톡톡히 사진값을 치러야 마땅하다. 사진 한 장 보여주려고 ‘여태껏 찍은 사진 가운데 몇 장 추리기’까지 또 오랜 손품을 들이고 마음을 쓰며 말미를 내야 했으니까.


  그런데, 한국에서는 다른 사람 사진을 얻으려는 이들이 ‘사진쟁이 한 사람 삶과 생각과 사진’을 너무 우습게 여기는 듯하다. 사진 한 장 쉽게 태어나지 않는다. 남한테 보여주면서 빌려주거나 팔 만한 사진은 하루아침에 짠 하고 태어나지 않는다. 사진이 어떻게 태어나는가를 찬찬히 헤아린 이들은 사진쟁이한테서 사진 한 장 얻을 때에 알맞게 값을 치르려고 애쓴다. 사진이 어떻게 태어나는가를 제대로 헤아리지 않거나 슬기롭게 헤아리지 못한 이들은 사진쟁이한테 우악스레 사진을 달라고 바란다.


  다시금 생각한다. 시인한테 시 한 가락 써 달라고 함부로 바랄 수 있는가. 작곡가한테 노래 하나 써서 달라고 함부로 바랄 수 있는가. 요리사한테, 또 집살림하는 이한테 밥 한 그릇 차려 달라 바라면서 한번 기다려 보자. 밥 한 그릇 차리기까지 얼마나 품을 들여야 하는가. 밥을 할 먹을거리를 미리 저잣거리에 가서 장만해야 하고, 먹을거리를 손질해야 하며, 지지고 볶고 끓이고 데치고 무치고 버무리면서 적잖이 품을 들여야 한다. 밥 한 그릇 얻어먹으며 밥값 안 치러도 즐거운가? 그러니까, 밥 한 그릇 대수롭지 않으니, 사진 한 장 거저로 얻어 써도 대수롭지 않은가? 시인한테서 시 한 가락 거저로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시골 흙일꾼한테서 무 한 뿌리나 배추 한 포기나 쌀 한 줌 거저로 얻어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바닷가 고기잡이한테서 물고기 한 마리 거저로 얻어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4346.5.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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