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

 


  새책방이나 도서관에서 사다리를 보는 일은 드물다. 헌책방을 찾아가면 아무리 조그마한 곳이라 하더라도 으레 사다리를 본다. 왜 새책방이나 도서관에는 사다리가 없기 일쑤이고, 헌책방에는 사다리가 어김없이 있을까. 새책방이나 도서관도 책꽂이 꾸준히 늘리면서 ‘새로 나오는 책’을 더 차곡차곡 갖출밖에 없고, 이러다 보면 저절로 사다리 놓으면서 위쪽까지 살피도록 할 노릇 아닐까.


  사다리 없는 새책방과 도서관을 헤아려 보면, 새책방이나 도서관에서는 ‘새로 나오는 책이 늘어날’ 때에 ‘예전에 있던 책’을 줄이곤 한다. 날마다 새로 나오는 책 있으니, 새책방도 도서관도 책시렁 늘어나야 하지만, 한국에서 새책방이나 도서관은 책시렁을 좀처럼 늘리지 않는다. ‘오래도록 제자리 지키던 책’을 빼낼 뿐이다.


  헌책방도 ‘오래 묵은 책’을 치우곤 한다. 헌책방이라고 책을 자꾸자꾸 끝없이 쌓을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책을 비워 새로 들이는 책 꽂아야 한다. 그런데, 헌책방은 되도록 책을 덜 버리려 하고, 헛간을 늘려 ‘책방 책시렁에서 치워야 하는 책’이라든지 ‘새로 들이는 책’을 두려 한다. 책방에 빈틈 하나 없도록 빼곡빼곡 책시렁을 마련하고, 천장에 닿도록 책이 올라간다. 이러다 보니 헌책방에는 사다리가 있어야 한다. 헌책방 일꾼은 천장 높은 가게를 좋아한다. 헌책방 책시렁은 한 해 두 해 흐르면서 천장까지 닿는다.


  헌책방마실이 즐거운 까닭 곰곰이 돌아본다. 헌책방은 ‘처음 갖춘 책’부터 ‘새로 들이는 책’까지 알뜰살뜰 있다. 새책방과 도서관이 책을 안 아끼는 곳은 아니지만, 헌책방이 책을 아끼는 품이나 손길이란 매우 정갈하며 알뜰하다. 나는 헌책방마실 할 적마다 늘 이러한 품이나 손길을 느끼며 고맙다. 책 하나 만날 적에도 즐겁고, 책을 아끼는 품과 손길을 느끼면서 ‘책을 읽는 새로운 빛’을 받아먹는다.


  종이꾸러미도 책이고, 종이꾸러미 다루는 손빛도 책이다. 글월마다 글빛이 피어나고, 손길에서 손빛 새록새록 돋는다. 헌책방과 함께 오랜 나날 씩씩하게 살아온 사다리 나뭇결 쓰다듬으면서 책시렁과 책 모두 새삼스레 어루만진다. 4346.5.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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