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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쥐 털가죽
미야자와 겐지 지음, 이경옥 옮김, 김선배 그림 / 우리교육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59
하늘을 먹고 땅을 마시고
― 빙하쥐 털가죽
미야자와 겐지 글,김선배 그림,이경옥 옮김
우리교육 펴냄,2006.5.10./1만 원
미야자와 겐지 님이 쓴 글에 김선배 님이 그림을 붙인 《빙하쥐 털가죽》(우리교육,2006)을 읽습니다. 사람과 숲과 목숨과 짐승과 이웃과 삶터를 찬찬히 아우르는 살가운 이야기에 푸른 빛 넘치는 그림이 잘 어울리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살짝 궁금합니다. 아름다운 글에 아름다운 그림 엮어 그림책 하나 빚었는데, 이 그림책 읽을 아이들은 마음속으로 어떤 꿈을 꿀 만할까요. 미야자와 겐지 님 글에 꼭 그림을 붙여야 할까요. 미야자와 겐지 님 글에는 어떤 그림을 붙일 때에 아름다울까요.
.. “또 빙하쥐 목 부분 털가죽으로 만든 옷도 있다네.” “대단하십니다. 빙하쥐 목 부분 털가죽은 비쌀 텐데요?” “450마리 분이야. 어떤가. 이 정도면 괜찮겠나?” “괜찮고말고요.” “나는 말이야, 주로 검은여우를 잡을 생각이라네. 검은여우 털가죽을 900장이나 가져오겠다고 내기를 했거든.” .. (17쪽)
밥을 먹습니다. 내가 먹는 밥 한 그릇에는 나락알 아마 천쯤 깃들지 않을까요? 아니, 오백이나 삼백 알쯤 깃들까요? 어쩌면 내 밥그릇에 깃든 밥알은 450알쯤 될는지 모릅니다.
시골집에서 밥을 차리며 풀을 뜯습니다. 옆지기와 나란히 풀을 뜯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풀을 뜯기도 합니다. 쑥도 뜯고 돗나물도 뜯으며, 미나리와 별꽃나물과 갈퀴나물과 갈퀴덩굴을 뜯습니다. 소리쟁이도 뜯고 고들빼기도 뜯으며, 좀꽃마리와 유채잎과 민들레잎과 부추잎과 초피잎을 뜯습니다.
나락 거두어 껍질 벗긴 쌀알로 지은 밥을 먹는 내 몸은 들판에서 봄 여름 가을 살아낸 숨결로 이루어집니다. 겨울 이기고 봄에 돋은 풀을 반찬으로 먹는 내 몸은 겨울내음과 봄바람 깃드는 숨결로 새삼스럽습니다.
식구들과 함께 읍내로 마실을 가서 읍내 어느 밥집에 들러 바깥밥 사먹을 때에는, 바깥에서 사먹는 밥이 내 몸으로 스며들어 내 몸 한 자리를 이룹니다. 내가 먹는 밥은 언제나 내 몸입니다. 내가 마시는 물은 늘 내 몸입니다. 내가 들이켜는 바람은 노상 내 몸이에요.
읍내 한쪽 귀퉁이에서 구백 해 가까이 살아온 느티나무 곁에 서서 옅푸른 느티잎 톡톡 따서 먹습니다. 느티꽃 피고 지는 이맘때 느티잎은 매우 보드라우면서 싱그러운 맛입니다. 느티잎 훑으며 몸으로 받아들일 적마다, 권정생 할아버지가 어린 나날 느티떡 해 먹으며 굶주림을 이겼다고 하는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서울마실을 하다가 어느 아파트마을 한쪽 조그마한 뒷동산에서 자라는 진달래나무 보고는 진달래잎 몇 따서 먹습니다. 진달래잎은 내 몸으로 스며들어 내 살결이 되고 피가 되며 숨결로 다시 살아납니다. 부산마실을 하면서 어느 언덕배기 조그마한 공원에서 자라는 사철나무 보고는 새로 돋는 사철나무잎 뜯어 먹습니다. 사철나무 푸르디푸른 잎사귀는 내 몸으로 젖어들며 내 살갗이 되고 머리카락이 되며 발톱이 되어요.
시골집에서 아이들과 해바라기하며 뛰놀 적에 내 마음은 고스란히 아이들 마음과 만나서 하나가 됩니다. 서울이나 부산이나 인천이나 순천이나 어디에서나 반가운 님들 마주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을 적에 내 마음은 시나브로 좋은 이웃들 마음과 만나서 하나가 됩니다. 마음으로 품는 생각이 내 삶으로 드러납니다. 마음으로 담는 생각이 내 말로 나타납니다. 마음으로 받아안는 생각이 내 눈길과 손길과 발걸음이 됩니다.
.. “어이, 곰들이여! 너희들이 한 일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우리도 어쩔 수가 없어. 살아가려면 옷을 입어야 하지 않겠나. 너희들이 물고기를 잡는 것과 같아. 하지만 앞으로는 너무 지나치지 않게 조심할 테니 이번만은 용서해 다오.” .. (34쪽)
미야자와 겐지 님은 어떤 마음 되어 이야기 한 자락 글로 남겼을까요. 미야자와 겐지 님 글을 읽은 김선배 님은 어떤 마음 되어 이야기 한 자락 그림으로 붙이자고 생각했을까요. 《빙하쥐 털가죽》은 어떤 그림책으로 아이들이 누릴 만할까요. 아이들은, 또 어른들은 이 그림책 하나 펼치면서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사랑을 나눌 때에 아름다울까요.
사람들은 왜 밥을 먹을까요. 사람들은 어떤 밥을 왜 먹을까요. 사람들은 어떤 밥 한 그릇 어떻게 먹으려고 어떤 일을 어느 곳에서 하는가요. 사람들은 어떤 밥 한 그릇 생각하면서 이녁 일거리를 찾고 이녁 놀잇감을 살피며 이녁 보금자리를 보듬을까요.
하늘을 먹는 사람입니다. 땅을 먹는 나무입니다. 하늘을 마시는 사람입니다. 땅을 마시는 벌레입니다. 하늘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땅을 나누는 풀입니다. 하늘을 먹으며 하늘사람 됩니다. 하늘을 마시며 하늘빛 품에 안습니다. 하늘을 나누며 하늘사랑 빛냅니다.
누군가는 빙하쥐 사백쉰 마리를 잡아죽여 털가죽 얻은 다음 옷 한 벌 짓습니다. 누군가는 모시풀 한 아름 꺾어 모시줄기에서 실올 얻은 다음 옷 한 벌 짓습니다. 누군가는 아름다운 생각 그러모아 삶을 짓겠지요. 누군가는 따사로운 생각 갈무리하며 삶을 지을 테지요. 그리고 또 누군가는? 어떤 삶을 생각하며 어떤 삶 짓는 하루 될까요? 4346.4.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