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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데의 꿈은 분수다 ㅣ 애지시선 43
정덕재 지음 / 애지 / 2012년 9월
평점 :
시와 하늘
[시를 말하는 시 18] 정덕재, 《비데의 꿈은 분수다》
- 책이름 : 비데의 꿈은 분수다
- 글 : 정덕재
- 펴낸곳 : 애지 (2012.9.25.)
- 책값 : 9000원
하늘을 바라보면서 걷습니다.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구름이 가득 덮어 하얗게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야말로 따스한 날씨 되려는지 안개가 뒤덮은 하늘을 바라봅니다.
빨래를 널며 안개를 바라봅니다. 빨래 너는 아버지 쳐다보다가 슬금슬금 마당으로 내려서는 아이들을 마주봅니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잘 놀면서, 굳이 아버지 있는 둘레에서 놀려 합니다. 그래, 그러려무나.
마당에 놓은 평상에 앉습니다. 봄안개 짙게 드리우는 아침과 낮과 저녁 동안, 가깝고 먼 멧자락에 걸쳐 수많은 멧새 노랫소리 울립니다. 우리 집 처마 밑에서도 새로 깐 새끼 제비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어미 제비 소리는 아닙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어미 소리인지 새끼 소리인지 가눌 수 있어요. 멧자락부터 울려퍼지는 멧새 노랫소리도, 어미새인지 새끼새인지 헤아릴 수 있지요.
마음이 있으면 듣고, 마음이 없으면 못 듣지 싶어요. 꼭 시골에 있기에 듣는 새소리하기보다, 시골에 있더라도 마음이 없으면 못 듣는 새소리요, 도시에서 살더라도 마음이 있으면 넉넉히 듣고 누리는 새소리라고 느껴요. 도시에도 참새와 까치와 비둘기 있고, 박새와 직박구리 있으며, 때로는 딱따구리까지 도시에서 볼 수 있어요. 누렁조롱이가 곧잘 아파트 툇마루에 둥지를 튼다고도 해요.
그러니까, 시골에 살더라도 누구는 새소리하고는 동떨어진 채 하루를 보내요. 도시에 살더라도 누구는 늘 새소리와 마주하면서 살아가요.
.. 속이 쓰리다 / 그 속이 어느 속인지도 모르고 / 보령제약 겔포스를 먹는다 / 특허 받은 위장약 겔포스는 / 인산 알루미늄겔과 수산화마그네슘 / 시메티콘과 파라옥시젠조산메틸이 주원료다 / 이름도 생소한 것들이 / 사람 속을 어찌 알고 달래는 것일까 .. (속)
하늘숨 쉬는 사람이 있어요. 하늘바람 마시는 사람이 있어요. 하늘노래 부르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 어른들은 어떤 숨을 쉬나요. 하늘숨 쉬나요, 아니면 자가용숨이나 버스숨 쉬나요. 우리 아이들은 어떤 바람을 마시나요. 하늘바람 마시나요, 아니면 영어바람이나 입시바람 마시나요. 우리 사람들은 어떤 노래 부르나요. 하늘노래 부르나요, 아니면 돈노래나 아파트노래 부르나요.
이 나라에서는 어떤 숨을 쉴 수 있나요. 이 겨레는 서로 어떤 바람을 마시는가요. 이 땅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노래를 부를 만한가요.
..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는데 / 밖에서 / 내가 잘 아는 사람 험담하는 얘기가 들려 / 나가지도 못하고 / 냄새만 맡고 있다가 / 와락 / 물을 내렸다 .. (화장실에서)
정덕재 님 시집 《비데의 꿈은 분수다》(애지,2012)를 읽으며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내가 아이들과 살아가는 고흥 시골마을 하늘이건, 이 나라 사람들 가장 많이 몰려서 살아가는 서울 하늘이건, 다 같은 하늘입니다. 한국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이건, 미국이나 이라크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이건, 모두 같은 하늘입니다. 남녘땅을 흐르는 구름이건 북녘땅을 흐르는 구름이건, 모두 같은 하늘을 흐르는 구름입니다.
햇살은 영국이든 뉴질랜드이든 칠레이든 부탄이든, 골고루 돌면서 골고루 따순 기운 나누어 줍니다. 빗물은 지구별 골골샅샅 돌고 돕니다. 꽃가루는 지구별 어디에나 흩날립니다. 지구별은 한덩어리 흙이면서 풀이고 나무입니다. 지구별은 모두 같은 숨결로 이루어지고, 저마다 같은 숨소리를 냅니다.
한국사람도 일본사람도 숨이 막히면 죽습니다. 사람도 풀도 벌레도 새도, 바람을 못 마시면 목숨이 끊어집니다. 한국사람도 중국사람도 물이 없고 밥이 없으면 굶거나 말라서 죽습니다. 사람도 흙도 하늘도 서로서로 싱그럽게 빛날 때에 비로소 고운 숨결 됩니다.
정덕재 님은 비데가 분수 되는 꿈을 꾼다고 시를 쓰는데, 비데도 분수도 모두 같은 몸이라고 느껴요. 큰 폭포나 작은 폭포 따로 없어요. 모두 같은 폭포이고 물줄기입니다. 실비나 소낙비나 모두 같은 비요, 다 같은 물방울이에요.
시골사람 도시사람 따로 없이, 모두 사람입니다. 시골마을 도시동네 따로 금 그을 수 없는, 다 같은 보금자리입니다.
.. 예전에 서울 갈 때 / 돈은 두 군데 주머니에 나누어 넣거라 / 어머니는 당부했다 .. (지방사람 서울 가다)
시골에 공장 지으면 도시 한복판서 살아가는 사람은 공장 매연 안 마실까요? 아니에요. 도시사람은 ‘시골에 공장 있는 나머지, 시골 흙·물·바람 더럽히는 공장 때문에, 더러워진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를 먹어야’ 합니다. 시골에 골프장 짓고 발전소 지으니, 도시사람은 그저 돈만 잘 벌면 될까요? 아니지요. 도시사람은 ‘시골에 지은 골프장서 뿌려대는 농약 때문에 물이 망가지고, 물이 망가지니 시골서 거두는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 또한 망가지니까, 도시서 사먹는 모든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는 농약덩이가 되고 말’지요. 도시사람은 맛난 능금이나 배나 복숭아나 딸기를 먹지 못해요. 늘 농약덩이를 먹지요.
시골 깊은 두멧자락에 자가용 들어서지 못한대서, 시골사람이 늘 맑은 바람을 마시지는 못해요. 같은 하늘이거든요. 도시에 그득그득 넘치는 자동차가 내뿜는 배기가스는 흐르고 흘러 시골까지 닿아요. 땅밑으로 스며들어 시골로 젖어들어요.
거꾸로 헤아려 볼까요. 시골에서 아름답게 흙 일구는 손길 하나 있어, 도시에서도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 어여쁘게 보금자리 돌보는 몸짓 하나 있어, 시골에서도 즐겁게 구슬땀 흘릴 수 있습니다.
쓰레기는 쓰레기를 낳아요. 사랑은 사랑을 낳아요. 돈은 돈을 낳지요. 평화는 평화를 낳아요. 권력다툼은 권력다툼과 전쟁과 온갖 무기를 낳아요. 꿈은 꿈을 낳고, 이야기는 이야기를 낳으며, 평등과 통일은 평등과 통일을 낳겠지요. 두레는 두레를 낳고, 어깨동무는 어깨동무를 낳는답니다.
.. 가끔 슈퍼마켓 앞에 앉아 / 캔맥주를 마시고 있으면 / 길 가는 낡은 술집 주인이 합석한다 / 지방주재시인의 유일한 독자는 / 반겨주는 술집 주인뿐, / 술집 주인마저 제 술집을 뒤로하고 / 거리의 파라솔 아래 앉아 있는 / 이곳은 지방이다 .. (지방주재시인)
시인 정덕재 님도 설마 걸상을 걷어차나요. 걸상 걷어차지 말아요. 걸상 아야 해요. 게다가, 중학교 1학년 사내아이가 걸상 걷어차는 슬픈 발놀림 물려받네요. 하루하루 사랑을 누리면서 사랑을 물려주기를 빌어요. 언제나 평화를 빛내면서 평화를 물려주기를 빌어요.
재미나고 아름답게 누리는 삶 되어, 재미나고 아름답게 영그는 싯말 되기를 빌어요. 살갑고 따스하게 즐기는 삶 되어, 살갑고 따스하게 엮고 맺는 싯노래 되기를 빌어요. 꾸밈없이 쓸 수 있는 시에, 사랑 한 자락 담아 보셔요. 수수하게 쓸 수 있는 시에, 꿈 한 꾸러미 실어 보셔요. 물 한 모금, 바람 한 모금, 햇살 한 모금, 흙 한 모금, 찬찬히 마시면서 싯결 보듬어 보셔요.
.. 중학교 3학년 아들 녀석이 / 방문을 세게 닫아버리자마자 / 한바탕 소리가 난다 / 분명 의자를 걷어차는 소리일 것이다 / 의자의 고난시대는 중학교 1학년 때 시작되었다 .. (의자의 고난시대와 안락)
서울도 지방도, 또 서울도 시골도, 또 서울도 변두리도, 또 서울도 서울 아닌 데도 없어요. 모두 아름다운 보금자리입니다. 모두 즐거운 이야기마당입니다. 모두 사랑스러운 마을입니다. 고즈넉하게 바람 부는 한갓진 마을에서 살랑살랑 감겨드는 봄바람 함께 누리면 좋겠습니다. 사월 한복판, 들판 무슨 풀을 뜯어서 먹어도 모두 싱그러우면서 맛난 푸른 내음 넘칩니다. 4346.4.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