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뿐인 지구
신영식 지음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34

 


돈 되는 농사 짓지 맙시다
― 하나뿐인 지구
 신영식 글·그림
 파랑새어린이 펴냄,2005.6.25./13500원

 


  신영식 님은 1991년에 《환경을 살리는 초록이네 가족》(새남)이라는 만화책을 내놓습니다. 1994년에는 《하나뿐인 지구》(푸른산)라는 만화책을 새롭게 내놓습니다. 그러나 두 만화책 모두 그닥 사랑받지 못한 채 새책방 책시렁에서 사라졌습니다. 1998년과 2005년에 다시 《하나뿐인 지구》(파랑새어린이)라는 이름을 달고 두툼한 ‘환경 이야기 만화책’으로 거듭 태어나는데, 이 만화책도 오래지 않아 조용히 사라집니다.


  만화책 《하나뿐인 지구》는 어린이 누구하고도 함께 읽을 만한 눈높이로 이 나라 숲살림과 시골살림과 도시살림을 보여주는 아주 아름답고 따사로운 이야기꾸러미입니다. 낱권책이 1991년에 처음 나온 만큼, 신영식 님은 1980년대부터 〈보물섬〉 잡지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아이들부터 이 땅 이 삶터를 슬기롭게 돌아보며 아름답게 살아갈 길’을 보여주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이러한 목소리와 숨결은 제대로 읽히기 아직 어려운가 봐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마을과 숲과 보금자리와 지구별 고루 돌아보는 일을 아직 할 수 없는가 봐요.


  가만히 돌아봅니다. 아이들이 학교나 집에서 받아본다는 ‘소년신문’에 생태와 환경을 슬기롭게 다루는 글이 거의 안 실립니다. 어른들이 학교나 집에서 받아보는 종이신문이나 누리신문에도 생태와 환경을 알맞고 올바르게 다루는 글이 거의 안 실립니다. 어린이도 어른도, 연예연과 운동경기 기사를 가장 많이 찾아서 읽고, 이 다음으로는 정치꾼 뒷이야기 기사를 많이 찾아서 읽으며, 이 다음으로는 주식이나 돈벌이나 경제개발과 얽힌 기사를 많이 찾아서 읽어요. 자기계발·처세·취미·글쓰기하고 얽힌 책을 읽는 일이 나쁠 일 없습니다. 다만, 이 울타리에 매인 채 둘레를 살펴보지 못한다면 무슨 보람이 있을는지 모르겠어요. 날마다 마시는 바람맛을 모르고, 늘 먹는 물맛과 밥맛을 모르며, 언제나 디디고 둘러싸이는 흙과 땅과 하늘과 햇살을 모른다면, 사람이 얼마나 사람답게 살아갈 만한지 모르겠어요.


- “밀물 때 잠기고 썰물 때 드러나는 갯벌은 뛰어난 하수처리장 역할까지 한단다.” “우와! 비단고둥이 그림 그린 것 좀 봐요.” “허허허, 그건 청소하느라 그런 거란다. 조개류나 게들은 하루에 두 시간 정보를 그렇게 돌아다니며 청소하지. 육지에서 흘려 보낸 온갖 오염물질을 말 없이 청소해 주는 고마운 청소꾼이야.” (34쪽)
- “독일은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모든 갯벌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서 탐사나 학습장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1993년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인정받아 한 해 60만 명이나 되는 외국 관광객까지 몰려와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지요.” “우와! 우린 왜 그렇게 못 하는 거지요?” “간척의 나라로 유명한 네덜란드에서는 제방을 헐어 다시 갯벌로 복원하는 자연회귀운동을 벌이고 있어요. 북해 연안 3국은 1982년 ‘갯벌 보호를 위한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고 갯벌 보호 협약을 만들었고요.” (35∼36쪽)

 

 


  면사무소나 군청이나 우체국에 가 보면, 정부에서 내놓는 여러 책자를 볼 수 있습니다. 정부간행물 가운데 꾸준히 나오는 한 가지로 ‘한미자유무역협정 홍보자료’가 있습니다. 정부에서 내놓는 홍보자료를 들여다보면, 자유무역협정을 해서 이 나라 살림이 나아진다 하고, 오늘날 같은 시골 농사일은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경쟁력 있는 대규모 농업’으로 바꾸어 외국으로 농산물 내다 팔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러나, 시골 흙일이란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이 아니에요. 시골 흙일이란 먹고살려 하는 일이에요. 삶을 짓듯 흙을 짓고, 삶을 가꾸듯 흙을 가꾸는 시골일이에요. 쌀까지 더한 식량자급율이 20% 겨우 넘는 한국에서 어떤 곡식이나 푸성귀나 열매를 외국에 내다 팔아야 할까요. 한국땅에서 난 곡식이나 푸성귀나 열매로도 한국사람이 먹을 만큼 못 거두는데, 이런 나라에서 돈벌이를 하자며 외국에서 농산물 내다 파는 대규모 농업을 하는 일이 얼마나 올바르거나 알맞을까요.


  정치를 맡거나 행정을 맡는 이들이 삶을 참 모릅니다. 교육을 맡거나 문화를 맡는 이들이 삶을 참 안 들여다봅니다. 예술을 하거나 사회운동을 하는 이들이 삶하고 좀처럼 가까이 다가서지 않습니다.


  석유에 기대는 삶은 석유재벌이 손바닥 살짝 뒤집어도 그예 뒤엎힙니다. 전기에 기대는 삶은 전기를 하루만 톡 끊어도 온통 엉망진창이 됩니다. 오늘 이곳에서 우리들은 ‘아직 돈이 있다’고 하면서 석유를 쓰고 전기를 씁니다만, 석유와 전기를 하루아침에 끊는다 할 적에, ‘주머니에 있는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은행계좌 숫자로는 기름보일러 못 돌리고 자가용 못 굴려요. 경제성장율과 주식투자로는 냉장고를 못 지키고 세탁기 못 돌려요.


  옳게 살아내고, 알맞게 살아가며, 즐겁게 어깨동무하는 삶을 헤아릴 때입니다. 대학교 졸업장이나 연봉 높은 회사원·공무원 되는 길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누릴 삶빛을 생각할 때입니다.


- “게들은 이곳이 삶의 터전이고, 이 갯벌의 주인이란다. 알겠니?” “주, 주인요? 에이, 게가 무슨.” (39쪽)
- “유명한 해수욕장도 여럿이고, 그러다 보니 인심 또한 후하고, 우리 고향은 그런 곳이지.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우리 고향땅에 핵폐기물, 이 세상에서 최악의 오염물질인 핵폐기물 처분장이 들어선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흠 그래서 반대하니까 어떤 원자력 박사가 이런 말을 하더라. 핵폐기물은 고준위, 중저준위, 저준위가 있는데, 저준위 핵폐기물은 가정에서 나오는 쓰레기보다도 더 깨끗하다는 거야, 글쎄. 허허허. 그래서 그 박사에게 항의를 했지. 그렇게 깨끗한 것이라면 당신 뒷마당에 묻지, 왜 우리 마을 뒷산에 묻으려고 애를 쓰는 거요? 그러니까 아무 소리도 못 하더라. 그 박사는 핵의 위험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거든.” (96∼97쪽)

 

 


  이웃한 여러 나라에서 경제개발을 하니, 이 나라도 경제개발을 했습니다. 이웃한 여러 나라에서 전기전자 제품 만들어 물질문명 사회 이룩한다 하니, 이 나라도 전기전자 제품 퍼뜨리며 물질문명 사회 이룩합니다. 그런데, 이제 이웃한 여러 나라는 ‘자연 되살리기’를 합니다. 한국이 뒤꽁무니 졸졸 따르던 이웃한 여러 나라는 바야흐로 경제개발이나 토목건살이나 물질문명 아닌 ‘자연을 살찌우고 보살피며 누리는 삶’으로 나아가는데, 막상 한국이라는 나라는 ‘자연을 더 망가뜨리고 괴롭히며 짓밟는 도시 사회’로 치닫기만 합니다.


  엊그제 아이들과 군내버스 타고 고흥읍에 마실을 가서 보니, 봉황교 언저리에서 어떤 토목건설을 합니다. 봉황교 언저리에는 제법 굵직한 나무가 여러 그루 우람하게 서서 어여쁜 나무그늘 베풀고 나무바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봉황교 언저리에서 뭔가 뚝딱거리면서 굵직한 나무를 몽땅 베었습니다.


  더 돌아보면, 고흥군청 공무원들은 고흥군 바닷가에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끌어들이려 했어요. 더 돌아보면, 고흥군청 공무원들은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인 바깥나로섬 봉래산 자락에 우주센터를 들여놓았어요. ‘우주 항공 시대’를 여는 일을 나쁘다고 말할 생각 없습니다. 다만, 우주 항공이건 무엇이건, 어떤 시설이나 건물을 국립공원에 함부로 지어도 되는지 묻고 싶습니다. 국립공원 바닷가와 멧자락과 숲과 들을 엉터리로 깔아뭉개면서 이런 시설 저런 건물 그런 찻길 마구 만들어도 되는지 묻고 싶습니다. 국립공원이 아닌 시골이라 하더라도, 나락을 거두고 푸성귀를 돌보며 열매를 따는 시골마을에 매연과 공해와 쓰레기 쏟아지는 시설이나 공장을 함부로 짓는 일이 우리 스스로 목숨을 갉아먹는 짓인 줄 얼마나 아는지 모르는지 묻고 싶습니다.


- “우리가 보지는 못했지만 이곳에는 천연기념물인 하늘다람쥐, 수달, 사향노루, 산양 같은 귀한 동물들이 사람들을 피해 숨죽이고 살고 있단다.” “참! 아까 저 위 계곡에서 발견한 원앙 서식지 말예요. 정말 환상이었어요. 수백 마리는 됐을 것 같아요.” “쉿! 쉬잇!” “아 참! 비밀로 하기로 했지요.” “보호구역으로 지정될 때까지는 절대로, 절대로.” (234∼235쪽)

 


  지난 삼월 끝무렵부터 들딸기꽃이 피고 앵두꽃이 핍니다. 이제 사월 막바지에 이르면 들딸기와 멧딸기 열매를 실컷 누릴 수 있습니다. 딸기라는 열매란, 이렇게 사월 막바지 즈음 되어야 맛보는 열매입니다. 자연 흐름이 이와 같습니다.


  딸기꽃 피는 곁에 탱자나무 마알간 꽃을 피우려고 봉오리 옴찔옴찔합니다. 탱자꽃 피어나려는 언저리에 찔레나무도 찔레꽃 피우려고 힘을 냅니다. 찔레나무에 머잖아 봉오리 틀 즈음, 감나무도 옅푸른 잎사귀 곱게 내놓겠지요. 들판에 멧자락에 새싹 돋고 새꽃 피어나는 흐름을 살피면서, 시골 흙일꾼이 밭을 갈고 논을 썰며 씨앗을 심습니다. 쌀 팔고 마늘 팔아 아이들 가르치기도 했지만, 시골 어르신들 이녁 딸아들 학교 보내는 데에 ‘쌀 안 팔고 마늘 안 팔았’으면 어떤 삶 누렸을까 하고 찬찬히 생각해 봅니다. 대학교 보내는 데에 돈을 안 쓰고, 도시에서 시집장가 가는 데에 돈을 안 쓰면서, 시골 흙일을 했으면, 시골마을 어르신들 삶이 어떠했을까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시골마을에서 손전화 쓸 일 없었고, 텔레비전 볼 일 없었으며, 따로 영화이니 책이니 없어도 즐거운 놀잇감 많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내려오는 일노래란, 무슨 일을 하건 스스로 삶을 즐기거나 가꾸면서 부르던 노래, 곧 삶노래입니다. 어떤 전문 노래꾼이 지어서 가르쳤기에 부르는 노래가 아닙니다. 아이들 재우며 부르는 자장노래를 꼭 학교를 다녀야 배우지 않습니다. 윷놀이 흙놀이 돌놀이 나무놀이 모래놀이 물놀이 들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다녀야 배우지 않아요. 살아가며 아이들 스스로 놀이를 새로 짓고 어린 동생한테 곱게 물려줍니다.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아이들 놀이가 사라진 까닭은 딱 하나입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놀이가 사라집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놀지 못해요.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숙제짐에 짓눌려요.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시골 떠나 도시로 갈 생각만 품어요.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어깨동무를 안 하고 동무끼리 점수따기를 겨룰 뿐이에요.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어른들 즐거운 일노래와 넉넉한 두레와 아름다운 품앗이가 사라진 까닭은 오직 하나입니다. 아이들을 도시로 보내느라 등허리 휘면서 땅 팔고 품 팔고 흙 팔고 곡식 팔았기에 모든 시골살이 시골문화가 사라집니다. 즐겁게 하는 일이 아니라 돈을 벌어서 배움값 대야 하니, 일노래 부를 겨를 없고 두레나 품앗이 할 틈 없어요. 더 빨리 심고 더 많이 거두어 더 돈을 벌어야 할 뿐이니, 삶이고 문화이고 일이고 뒤죽박죽 될밖에 없습니다.


- “왜 물이 흐르지 않나요?” “너희들이 아까 오다가 본.” “아, 팔당댐!” “그렇지. 그 댐이 물을 가둬 놨기 때문이지. 그래서 자정능력이 없어져 물이 썩게 된 거야. 게다가 사람들이 이 강물에다 오물을 흘려보내고 더럽히고 무관심해서 더욱 오염된 거지.” (265쪽)
- “자연을 파괴시키는 것은 비단 골프장뿐만이 아니래요. 설악산이 무너져 내리고 있대요. 개발사업, 관광휴양지란 이름으로 산을 마구마구 파헤치고, 깎아내고, 도려내고 있대요. 그 아름다운 산에 골프장이 생기고 호텔, 콘도, 오피스텔, 그리고 스키장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봉오리들을 무차별하게 허물고 계곡을 메우고 있대요. 설악산뿐만 아니라 전국의 이름 있는 산이 모두 그렇게 헐벗고 있대요. 자연을 파괴시키는 일은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354쪽)

 

 


  신영식 님 만화책 《하나뿐인 지구》를 생각합니다. 책이름 그대로 지구별은 하나뿐입니다. 지구별도 하나이고, 이 나라도 하나입니다.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목숨도 하나입니다. 우리 어버이 목숨도 하나이고, 우리 아이들 목숨도 하나예요. 한 번 찾아와서 누리는 삶도 똑같이 하나이지요. 어떤 삶을 누릴 하루일까요. 어떤 하루를 빛내면서 삶을 일굴 우리들일까요.


  시골마을에서 백 살 넘은 나무 한 그루 만나기 참 어렵습니다. 도시 아파트 꽃밭에서 백 살은커녕 열 살이나 스무 살 넘은 나무 한 그루조차 만나기 참 힘듭니다. 도시 한복판이든 시골 읍내나 면내이든, 나무 한 그루 정갈하게 아끼는 손길은 거의 안 나타납니다. 나무 설 땅을 자꾸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습니다.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자동차를 생각합니다. 사람들 걸어서 오갈 길을 내기보다는 자동차 오갈 길을 낼 뿐입니다. 할매와 할배뿐 아니라 아이들 누구나 즐겁게 걸어다닐 길이 아니라, 자동차와 경운기와 짐차와 트랙터가 쏜살같이 씽씽 달릴 길만 내는 토목건설이고 행정이고 문명입니다.


  무슨무슨 올레길이니 둘레길이니 마중길이니 하고 따로 돈을 들여서 ‘관광코스’를 만드는 짓은 참 서글픕니다. 길은 돈을 들여서 닦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길은 사람들 스스로 두 발로 걸어다니며 시나브로 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돈을 들여 길을 관광코스로 만들고, 이렇게 돈으로 만든 길에 다시 돈을 들여 관광을 하러 나들이 다닌다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서글픕니다.


  저마다 이녁 마을과 보금자리에서 즐겁게 걸어다닐 수 있어야 합니다. 제주를 가거나 지리산을 가야 하는 마실길 아니라, 도시에서는 골목길을 걷고 시골에서는 고샅길과 들길과 숲길 언제라도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 돈벌이 꾀하는 관광자원 아닌, 삶을 빛내는 보금자리를 돌볼 노릇입니다. 시골 흙일꾼이 ‘돈을 벌어 아이들 대학교 보내려’고 논밭에 농약을 쳐대지, 스스로 먹고 누릴 푸성귀와 곡식과 열매라면 굳이 농약을 쳐대지 않아요. 농약과 비료는 돈 때문에 씁니다. 도시에서뿐 아니라 시골에서도 ‘끝없는 돈벌이 굴레’에서 풀려나지 않으면, 그나마 시골마을 아름답고 깨끗한 숲과 들과 멧골마저 망가져서, 샘물이나 냇물을 못 마시고 맙니다. 논에 수도물로 논물을 대야 하나요. 밭에 수도물을 뿌려야 하나요. 삶을 생각하고, 흙을 생각하며, 숨결을 생각할 일입니다.


  돈 벌려는 농사 짓지 말아요. 밥 먹으려는 농사를 지어요. 돈 생각하는 농사는 그만두어요. 아이들과 함께 사랑스러운 나날 누리려는 농사를 지어요. 돈 되는 농사는 이제 그쳐요. 즐겁게 흙 만지면서 숲내음 마시는 농사를 지어요.


- “그 애한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유. 지난봄에 6살 된 동생이 농약 만진 손으로 고구마를 먹고 죽었지 뭐예유.” (279쪽)
- ‘용진이 할아버지는 컴컴해서야 경운기를 몰고 돌아오셨다. 논에 농약을 치고 오는지 역한 농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용진이 얘기를 하다가 죽은 용진이 동생 얘기가 나왔다.’ “푸우. 그놈이 농약 때문에 죽은 걸 생각하면 농약 사용을 말아야 하는디 말여유, 나도 농약을 치다가 몇 번이나 쓰러졌지만서도, 그러니까 농민은 목숨을 걸고 농사를 짓고 있는 거지유.” … “그렇게 해로우면 농약을 안 쓰면 되잖아요.” “농약을 안 뿌리고 농사를 어떻게 지어유? 이 늙은이 둘이서 일일이 잡초를 뽑고 버러지를 손으로 잡어유? 이미 이 땅은 화학비료에다가 갖가지 농약을 쓰지 않으면 안 되게끔 되어 버렸단 말여유! 농약이 땅과 물을 오염시키고, 생태계를 파괴하고, 대기오염까지 일으키고, 농산물을 오염시킨다는 거! 그런 거 아무리 무식한 농민이지만 다 알어유. 예전에야 메뚜기가 흔해서 벼가 익을 무렵이면 금세 커다란 댓병에 가득 잡았지유. 이젠 그 메뚜기도, 민물새우도, 반딧불이도, 거머리도 모두 사라졌지유. 그것들을 죽인 게 농약이라는 것을 우리 농민들도 다 알어유. 그러니께 익충은 농약에 잘 죽는디 병충과 병균은 농약에 강해 더욱 독성이 높은 농약을 많이 뿌리게 되는 거지유.” (281, 282∼283쪽)

 


  삼월 지나 사월 되니, 고흥 시골마을마다 한 분 두 분 농약을 뿌립니다. 이 마늘밭 저 마늘밭 온통 농약내음 번집니다. 마을마다 농약내음 번지면, 이제 들마실이나 들놀이 못합니다. 어른들이 농약을 뿌리건 말건 아이들은 잘 몰라서, 농약 드리운 흙을 아무렇지 않게 만지고, 농약 내려앉은 도랑물이나 냇물을 함부로 건드립니다. 게다가, 농약치기만 하지 않아요. 마을마다 지난해 쓰던 비닐을 태웁니다. 농약병을 태웁니다. 비료와 농약 담은 비닐푸대를 태웁니다. 끔찍한 연기가 온 마을 떠돕니다. 시골집에서 문 꽁꽁 닫아걸고 숨어도 농약내음과 비닐과 플라스틱병 타는 내음이 스며듭니다. 시골에서 살더라도 곧잘 숨이 막힙니다. 도시에서는 끝없이 흐르는 자동차물결이 내뿜는 배기가스와 시멘트건물 호르몬으로 숨막히게 한다면, 시골에서는 농약과 비닐 태우는 연기로 숨막히게 합니다.


  너무 마땅한데, 내다 팔려고 심으니 비닐농사 짓습니다. 식구들 먹고 이웃이나 동무한테 나눠 줄 만큼 심을 적에는 비닐농사 지을 까닭 없습니다.


  논밭에서 돋는 풀 가운데 못 먹을 풀 없습니다. 잡풀이 있을 수 없습니다. 논밭에서 돋는 모든 풀은 한약 재료로 쓸 뿐 아니라, 몽땅 나물입니다. 예전에 시골일 거드는 일소를 키울 적에는 논밭에서 돋는 풀을 뜯어 소한테 먹였겠지요. 풀을 먹는 소는 아플 일 없었고, 풀을 먹는 사람은 아플 까닭 없었습니다.


  삶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토목건설을 좋다 나쁘다 말하기 앞서, 삶을 어떻게 지을 때에 즐거운가 하고 헤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밥 한 그릇 되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되새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돈을 버는 삶 아닌, 밥을 짓는 삶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식이나 정보로 가득한 책 아닌, 자기계발이나 처세로 치닫는 책이 아닌, 삶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이웃과 동무하고 어깨동무하는 따사로운 꿈을 보듬는 책을 가까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환경책이란 삶책입니다. 환경이란 삶이니까요. 삶책이란 숲책입니다. 삶을 일구는 밑바탕은 숲이거든요. 곧, 환경책이라 하면 숲을 이야기하는 책이요, 숲을 돌보며 지키는 길 밝히는 책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어떤 숲을 생각하고 짓고 보듬고 누릴 때에 즐거운 삶 되는가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4346.4.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3-04-17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그림도, 신영식이라는 이름도, 낯익다 했어요. 아쉽게 품절이군요.

숲노래 2013-04-17 08:05   좋아요 0 | URL
이 만화책 사 둔 지는 퍽 오래되었는데...
이제서야 느낌글을 써요 ㅠ.ㅜ

저 세 권 모두... 헌책방에서만 만날 수 있으니...
앞으로라도 다시 나올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아요...
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