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핑계

 


  오늘은 아침부터 바람 되게 분다. 아침에 편지꾸러미 싼 다음, 우체국에 들러 책을 부치고 나서, 아이들 자전거에 태워 이웃 풍양면 별학산 너머까지 마실을 해 볼까 생각했으나, 바람을 핑계 대고 길을 나서지 않는다. 봄바람치고 너무 되게 불어, 이 바람으로는 두 아이 태운 자전거 끌다가 아주 ‘바람 맞고’ 애먹을까 싶더라.


  그러나 다 핑계이지. 태풍이 온 날에도, 한겨울에도, 비가 오거나 눈이 오더라도 자전거를 몰았으면서 고작 봄바람 갖고 뭘. 외려, 바람 분다며 아이들 바람 느끼기도 해야 한다면서 자전거 씩씩하게 몬 적도 있잖나.


  깊은 밤 되니 바람이 조용하다. 바람 한 점 없다. 별빛 초롱초롱 맑다. 시골 밤하늘 별을 올려다볼 적마다, 참말 ‘초롱초롱’이라는 낱말 아니고는 별빛을 못 가리겠다고 느낀다. 옛사람은 어쩜 낱말 하나 이렇게 싱그럽게 빚었을까. 오늘 살아가는 나는 옛사람이 빚은 ‘초롱초롱’에 이어, 어떤 새 낱말 맑게 빚으며 저 별빛을 가리킬 수 있을까. 아이들과 잠자리에 누워 자장노래 부르면서 곰곰이 헤아려 보아야겠다. 아이들한테 물어 봐야지. 얘들아, 밤하늘 별빛 어떻게 보이니? 4346.4.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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