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헌책방 마실

 


  비가 뿌리는 토요일 아침, 아이들과 길을 나선다. 날이 맑다면 마당에서 아이들 놀게 하다가 밥을 먹이고, 밥을 먹은 뒤에는 들마실 나가면 된다. 비가 뿌리면서 바람도 드세게 부니, 오늘은 하루 내내 집에만 있을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고흥읍에서 시외버스 타고 순천까지 마실을 가 보기로 한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읍내로 군내버스 타고 나가니 좋아라 하다가, 시외버스를 타니 멀미를 하는지 고단한 얼굴이 된다. 그래, 군내버스까지는 좋지만, 한 시간 달리는 시외버스는 좀 힘들지. 게다가 너희들은 순천 헌책방 마실을 마친 뒤에 다시 이 시외버스를 타고 고흥으로 돌아와야 한다구.

 

  아이들한테는 들판이고 숲이고 바다이고, 또 헌책방이고 놀이공원이고 할머니 할아버지 댁이고, 딱히 대수롭지 않다. 아이들한테는 어디이든 놀이터이다. 아이들로서는 어디이든 노래하고 춤추며 뒹굴고 싶은 놀이터이다. 아이들은 즐겁게 놀면 즐겁고, 맛있게 먹으면 맛있다. 아이들하고 굳이 어디를 찾아가야 하지 않다. 아이들한테 꼭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다. 아이들은 스스로 가고픈 데를 찾아서 놀고, 아이들은 스스로 보고픈 것을 찾아서 본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다치지 않거나 걱정할 것 없는 보금자리와 마을살이 일구면 된다. 다른 모든 것은 아이들 스스로 알아서 한다.


  헌책방은 아버지가 가고 싶으니 간다. 좀 먼 바깥마실 또한 아버지가 가고 싶으니 간다. 아버지 혼자 두 아이 당차게 데리고 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다닌다. 내 어릴 적에 어머니가 나랑 형 둘을 데리고 씩씩하게 잘 다니셨다고 떠올리면서 마실을 한다. 그런데, 워낙 오래도록 시골집에서 지내고, 더러 읍내나 면소재지 살짝 들른 탓일까. 큰아이가 가게 화장실 쓰기를 꺼린다. 밖에서 쉬를 누고 싶다 한다. 문득 그럴 만하겠다고 느낀다. 시골집에서 아이들은 마당이나 마루를 바라보는 훤히 트인 자리에서 쉬나 똥을 눈다. 때로는 마당 한쪽이나 뒷밭에서 쉬나 똥을 눈다. 높은 벽으로 꽉 막힌 좁은 자리가 아이들한테는 안 달가울 수 있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밖이 훨씬 좋으니, 게다가 시골에서는 일부러 밭에 쉬를 누고 거름자리 만들기까지 하니, 도시에 마실을 가서 볼일 보기란 그리 즐겁지 않다.


  집으로 돌아오고 보니, 참말 집이 가장 좋다. 그냥 집에서 놀걸 그랬나. 여름에 찾아들 장마철에도 으레 집에서 놀 텐데, 비오는 시골집을 누릴 때가 한결 나았으려나. 그래도 아버지는 너희 둘 데리고 살짝 먼 나들이 다녀오고 싶었으니, 아버지를 귀엽게 봐주기를 바란다. 봄비 쏟아진 오늘 하루 살짝 다른 바깥마실 해 보고 싶었으니, 아버지를 예쁘게 헤아려 주기를 바란다. 4346.4.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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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4-07 08:58   좋아요 0 | URL
책방 놀이터 같네요. 아이들이 재밌겠어요.
가끔 나들이를 해야 집의 소중함과 편안함을 알게 되죠.
누군가가 쓴 글, 여행을 떠나는 건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다, 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

숲노래 2013-04-07 09:13   좋아요 0 | URL
집으로 돌아오려고 여행을 떠난다니... 음... 그러면 집에서 여행을 해도 되겠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