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요리의 숲 1
히데지 오다 글.그림 / 삼양출판사(만화)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228

 


우리는 숲사람
― 미요리의 숲 1
 오다 히데지 글·그림,박선영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2008.2.23./4500원

 


  꽃빛처럼 고운 맛을 누리는 봄입니다. 봄에 들판에 피어나는 풀은 모두 나물로 뜯어서 먹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봄에 온 들판 가득 빛내는 들꽃은 풀잎과 함께 달달하며 싱그러운 꽃맛 베풉니다. 민들레를 따서 먹으면 민들레맛입니다. 진달래를 따서 먹으면 진달래맛입니다. 매화는 매화맛이요 살구꽃은 살구맛이에요. 앵두꽃 살며시 따서 먹으면 앵두맛이 새삼스럽게 감돕니다.


  봄날 들풀과 들꽃 한껏 누리고 보면, 왜 벌과 나비가 꽃가루를 먹으며 이녁 숨결 잇는가 헤아릴 수 있습니다. 벌과 나비뿐 아니라 우리 사람들도 꽃가루를 먹이며 숨결 이을 수 있어요. 쌀밥만 먹어야 하지 않아요. 소나 돼지를 잡아 뭍고기를 반드시 먹어야 하지 않아요. 바다에서 물고기 낚아서 꼭 먹어야 하지 않아요. 풀과 나무가 땅에 뿌리를 박아 햇볕과 빗물과 바람 먹으며 씩씩하게 자라듯, 사람 누구나 빗물과 햇볕과 바람 먹으며 씩씩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 “그럼 이걸 차고 다녀오렴.” “고, 곰?” “뭐, 이 근처엔 좀처럼 나타나진 않지만 말이야.” “좀처럼.” “하지만 숲속에는 숲의 주민들이 많이 있단다. 인기척도 없이 갑자기 갔다가 놀래키면 안 되잖니. ‘도쿄에서 왔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하고 인사하고 오렴.” (11쪽)
- ‘나의 숲이, 댐에.’ “있잖아, 미요리. 어째서 인간이라는 생물은, 이렇게 소중한 것을 파괴하는 걸까? 정말 알 수 없는 생물이야. 대체 왜.” (69쪽)


  밥을 안 먹고 어떻게 사느냐고 물을 수 있겠지요. 그래요, 오랜 나날에 걸쳐 사람 몸뚱이는 밥을 먹는 틀에 맞추어졌으니, 이제 먼먼 아스라한 옛날처럼 빗물이랑 햇볕이랑 바람만 먹으면서도 목숨 못 이을 만하다 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가만히 마음을 기울여 보셔요. 조용히 생각을 갈무리해 보셔요. 누군가 나를 맑은 눈빛으로 사랑해 줄 때에 어떤가요.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른 적 있는지 없는지 떠올려요. 환한 웃음으로 사랑을 속삭이는 옆지기 있고 아이들 있으면, 참말 밥이 없어도 배고프다는 생각이 안 들지 않나 헤아려 봐요.


  사람을 살찌우는 가장 밑바탕 되는 기운은 사랑입니다. 사랑과 함께 믿음입니다. 사랑, 믿음과 함께 꿈입니다. 사랑, 믿음, 꿈과 함께 생각입니다. 즐겁고 좋으며 푸르고 맑은 생각을 품에 안아요. 허둥지둥 아무 생각 없이 입에 퍼넣지 말아요. 즐겁게 하루 열자는 뜻으로 좋은 마음이 되어요.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아끼며 동무를 보살필 줄 아는 마음이 되어요. 온누리 해맑게 빛내는 길을 걸어요. 오늘날 지구별은 석유 하나를 놓고 전쟁무기 잔뜩 만들어 싸움을 벌이는데, 이 싸움판 그치게 할 아름다운 길을 저마다 슬기롭게 생각해요.

 


- “당신 같은 사람, 엄마도 아냐! 나한텐 애초부터 엄마 따윈 없었어! 난 누구의 아이도 아냐! 누구에게서도 태어나지 않았어! 난, 난, …….” (21쪽)
- “못된 인간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인간도 있는 거야! 그건 어린애도 안다구! 남자한테서 버림받았다고 죽다니, 정말 바보야! 완전히 사라지지 못하는 건 후회하기 때문이지? 뭔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거 나야? 자기가 죽은 걸 남자 탓으로 돌리고. 그렇게 누구 탓으로 돌린다고 일이 해결돼? 그렇지 않다는 거 알고 있잖아?” “어서 가지고 가.” “나도 엄마한테서 버림받았어! 아빠한테서도! 화난다고 죽다니! 죽어서 복수한다는 게 말이 돼? 난 약한 인간들이 정말 싫어!” (92∼93쪽)


  석유 때문에 전쟁무기 자꾸 만들어 싸움을 벌인다면, 이 싸움 그치게 하는 길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바로, 석유 안 쓰는 삶입니다. 석유 없이 지내는 삶입니다.


  석유를 안 쓰자면 자가용 안 몰면 됩니다. 석유를 안 쓰자면 전기 안 쓰면 됩니다. 석유를 안 쓰자면 시골마을에서 작은 땅뙈기 손수 일구거나 들판에서 나물 뜯으며 조그마한 살림 꾸리면 됩니다.


  뚱딴지 같은 소리일까요? 그렇지만, 나는 올여름에도 지난여름처럼 큰 비바람 찾아오는 날을 기다립니다. 지난여름 큰 비바람 찾아들 적, 마을 어르신들은 아무 걱정 없이 낮잠을 즐겨요. 큰 비바람 찾아들며 전깃줄 끊어져 텔레비전 못 보니, 마을 어르신들은 연속극도 못 보며 심심하다 여길 수 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아요. 전기 없이 여러 날 지내면서 서로서로 재미나게 어울려 놀거나 일해요. 마을 빨래터 샘가에서 물을 길어다 써요. 밥은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끓이면 되고, 반찬은 김치 하나로 넉넉해요.


  흙이랑 살아가면, 풀과 나무랑 살아가면, 곧 스스로 숲터 이루어 숲마을에서 숲사람 되어 살아가면, 석유이든 돈이든 무엇이든 놓고 싸움판 벌일 일 없습니다. 시골살이 무너뜨리거나 망가뜨리면서 사람들 모조리 도시로 끌어들이니까 자꾸 싸움판이 벌어져요. 도시가 생기면서 싸움이 생겨요. 도시가 커지면서 싸움이 커져요. 도시는 스스로 밥·옷·집을 마련하지 못하기에, 모두 시골에서 밥·옷·집을 돈으로 사들여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돈을 벌어야 밥·옷·집을 장만할 수 있으니, 이웃이나 동무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이 아닌, 이웃이나 동무를 밟고 올라서는 길로 접어들고 말아요. 오늘날 아이들은 초등학교 적부터 이웃이나 동무를 밟고 올라서도록 등떠밀려요. 시험공부에 얽매이지요. 시험점수에 옭매이지요.

 

 


- “숲에는 여러 가지 약초들이 자생하고 있어서, 대개의 병들은 고칠 수가 있단다. 부작용도 적고 말이야. 아마 병원 안 가고 살기로는 일본 최고일 게다. 뭐, 옆마을에라도 가지 않으면 병원도 없으니.” (31쪽)
- “10년 전 꽃구경 갔을 때, 넌 숲의 주인으로 뽑혔단다. 그건 환각이 아니야. 그 숲은 내 거지만 말이야.” “네? 할머니 거라구요?” “언젠가는 미요리에게 물려줄 생각이란다. 숲을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인간 하기 나름이니까, 숲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들을 수 있는 사람이 가져야 하지 않겠니?” “네? 그 숲을 내게?” “그렇단다. 미요리의 숲이야.”  (49∼50쪽)


  벌과 나비는 서로 다투지 않습니다. 들판에 꽃이 흐드러지거든요. 들판에 피어나는 모든 꽃마다 들러 꽃가루나 꿀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애써 돌아다녀도 백 송이나 천 송이 들를까 말까 되겠지요. 들판에 피어나는 꽃은 수백억 수천억, 아니 숫자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요.


  앵두나무 한 그루에 앵두꽃 얼마나 많이 피는가요. 들딸기나 멧딸기는 꽃송이 얼마나 많이 벌어지나요.


  들과 숲은 꽃바다입니다. 벌도 나비도, 여기에 사람도, 모두모두 꽃가루랑 꿀 즐기라면서 어마어마하게 꽃바다 이룹니다. 꽃잔치입니다. 꽃누리입니다. 꽃나라입니다. 알록달록 이쁘장한 꽃들이 우리를 부릅니다. 어서 와요, 어서 와서 우리 숨결 나누어 받아요, 우리와 함께 빗물과 햇볕과 바람 먹으며 환하게 웃어요, 하고 부릅니다.


  숲길 걷는 사람은 숲바람 마십니다. 들길 걷는 사람은 들바람 마십니다. 숲에서 일하는 사람은 숲사람 됩니다. 들에서 일하는 사람은 들사람 됩니다. 숲이나 들에는 병원이 없고 약국이 없으며 한의원도 없습니다. 숲이나 들에는 부엌도 없지만 식당이나 편의점도 없습니다. 그런데, 숲이나 들에는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숲이나 들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아프지 않습니다. 숲이나 들에서 살아가는 짐승과 새와 벌레는 아플 일 없습니다.


  도시에는 병원 많고 약국이랑 식당이랑 편의점이랑 엄청나게 많습니다. 도시에는 아픈 사람투성이요, 도시에는 앓는 사람 한가득입니다. 도시에는 맑은 바람이 깃들지 못합니다. 도시는 어디에나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땅바닥을 덮는데다가, 살림집은 시멘트와 쇠붙이와 플라스틱으로 꽁꽁 싸맵니다.


  도시에서 아이들이 앓습니다. 아토피를 앓고 까닭 모를 병치레 찾아듭니다. 시골 아이들은 폐렴이건 고뿔이건 걸릴 일 없지만, 도시 아이들은 온통 병치례입니다. 그런데, 막상 도시 어른들은 아픈 도시 아이들 제대로 건사하는 길을 찾지 않습니다. 도시 어른들도 늘 아픈 몸이면서, 아픈 몸으로 도시에서 돈 벌 생각에만 사로잡힙니다. 돈이 없으면 시골로 가고파도 못 가는 줄 잘못 생각합니다. 시골살이는 돈살이 아닌 숲살이인 줄 깨닫지 못해요.


 아마, 어느 누구도 시골살이나 숲살이를 안 가르쳤으니 모를 수 있어요. 아무래도,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와 회사에서조차 어느 누구도 시골살이나 숲살이를 안 가르쳤으니 모를밖에 없어요. 교과서에 없잖아요. 책에도 안 나오잖아요. 도서관에서 숱한 자료 뒤져 보셔요. 시골살이와 숲살이 옳고 슬기롭게 다룬 책이나 자료 있나요?

 

 


- “너희들 왜 따라오는 거야? 조사에 방해되니까 그만 가 봐!” “아저씨들이 제대로 조사하는지 어떤지 감시하는 거예요! 엉터리로 조사해서 검독수리를 못 보고 지나칠까 봐!” (108쪽)
- “엄마는 사랑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니까. 그게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니까. 늘 자식은 뒷전이잖아! 부모의 책임을 다하면서 사는 건 싫은 거지? 엄마도 선생님도, 자기 인생이 그 어떤 누구의 인생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이 세상은 나 혼자만 사는 것도 아니고, 또 인간만이 살고 있는 게 아니란 생각, 해 본 적 없어?” (164∼165쪽)


  오다 히데지 님 만화책 《미요리의 숲》(삼양출판사,2008) 첫째 권을 읽습니다. 만화책 《미요리의 숲》은 만화영화로도 나왔습니다. 만화영화도 제법 잘 만들었구나 싶지만, 만화영화보다 만화책이 한결 깊으며 너른 이야기 들려줍니다. 시골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숲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삶이 무엇인지 밝힙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드러냅니다. 꿈이 무엇인지 나즈막한 목소리로 노래합니다.


- “선생님. 큰일났어요. 숲이 화가 났어요. 칼 버리고 도망가요.” “뭐?” “서두르지 않으면 큰일난다구요. 숲이 분노에 떨고 있어요.” (173쪽)


  만화책 《미요리의 숲》에 나오는 미요리네 할머니는 미요리한테 말합니다. 손녀한테 언젠가 ‘내 숲(할머니 숲)’을 ‘미요리 숲’이 되도록 물려줄 생각이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옆에서 들은 미요리네 할아버지는 ‘그 숲은 내(할아버지) 앞으로 등기가 된 땅이라구!’ 하고 끼어듭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말은 들은 척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숲임자라 할 사람은 ‘등기서류 한 장’으로 가름할 수 없으니까요. 숲임자는 숲을 사랑하는 사람이니까요. 숲임자는 숲사람이요 숲넋입니다. 숲사랑을 펼치며 숲꿈을 꿀 때에 비로소 숲임자예요. 숲마음 느끼고 숲이야기 길어올릴 때에 비로소 숲임자예요.

 


- “미요리가 딴 아이 같아요.”“음식 때문인가? 이곳 농산물을 먹은 몸과 햄버거나 콜라로 된 몸은 당연히 다르지. 음식은 중요한 거다. 너(미요리 엄마)도 여기 살지 그러니?” (179쪽)
- “정말로 괜찮겠니?” “적어도 1년은 있을 거예요. 가을 숲과 겨울 숲, 봄 숲도 보고 싶으니까요. 내년에는 벚꽃도 필 거고.” “호오. 뭐, 떨어져 있다 해도 한 하늘 아래에 있는 거니까. 언젠가는 엄마한테도 전해질 거다.” ‘하늘, 바람.’ (186쪽)


  봄 여름 가을 겨울 다릅니다. 철은 모두 다릅니다. 다 다른 철이요, 다 다른 달입니다. 같은 봄이라 하더라도 삼월과 사월과 오월은 달라요. 삼월에서 사월로 접어들 무렵, 아아, 봄들은 얼마나 싱그러우며 환한 빛으로 거듭나는지요. 잔잔하게 맑고 빛나던 삼월이라면, 한껏 눈부시게 무지개빛 되는 사월이라 할까요. 곧 다가올 오월에는 푸른 물결 온누리에 가득하면서 쏴르르 숲바람 시원하게 불겠지요.

  만화책 덮고 생각합니다. 만화책 내려놓고 아이들 손 맞잡으며 들길 걷자고 나들이 나옵니다. 호젓한 들길에서 아이들한테 속삭입니다. 얘들아, 이 시골마을에서 우리 이름으로 등기 된 땅은 아직 없어,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들마실을 하면 온 들판이 우리 것이란다, 우리가 숲마실을 하면 온 숲이 우리 것이 되지, 들꽃을 먹고 숲나물 먹자, 들바람 마시고 숲햇살 먹자, 우리 집 처마 밑에서 알을 낳는 제비들이 저기 이 들판에서 다 함께 놀자고 부르는구나, 우리도 제비와 함께 노래하면서 달리기 놀이 해 보자! 4346.4.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부디 이 만화책 다시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