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손과 책방

 


  책손에 따라 책이 달라집니다. 책을 읽는 사람 마음결에 따라 책이 달라집니다. 갓 나온 책이건 오래 묵은 책이건, 살뜰히 집어서 살며시 읽는 손길 있을 때에 비로소 ‘책’으로 태어납니다. 갓 나오든 오래 묵든, 건드리거나 들여다보는 사람 없으면, ‘책’이 아닌, 종이꾸러미조차 아닌, 나무숨결마저 아닌, 아무것 아닌 그야말로 아무것 아닙니다.


  책손에 따라 책방이 달라집니다. 책방으로 마실하는 사람 마음가짐에 따라 책방이 달라집니다. 새책방이건 헌책방이건 늘 같습니다. 새책방도 책을 다루고 헌책방도 책을 다룹니다. 갓 나와 반딱거릴 때에만 새책이 아닙니다. 책손이 아직 읽지 않은 책은 모두 새책입니다. 책손 한 사람이 읽어 처음으로 ‘책’이 된 책은 헌책이요, ‘책’이 된 책이 다시 새롭게 태어나도록 하는 자리가 헌책방입니다. 그러니까, 새책방에서도 누군가 선 채 책 하나 읽고 가만히 내려놓았으면, 이 책을 장만할 누군가는 새책 아닌 헌책을 사는 셈이지요. 곧, 헌책이란 비로소 책으로 태어난 나무숨결이고, 책으로 한 번 태어난 뒤에 여러 책손 마음결에 따라 아름다움이나 훌륭함이나 사랑스러움이나 따뜻함이나 넉넉함이나 슬픔이나 괴로움이나 미움 같은 온갖 이야기 빚는 새삼스러운 책으로 거듭나지요.

  책손이 책을 마무리짓습니다. 책손이 책방을 일굽니다. 책손이 있을 때에 책이 태어나고, 책손이 어떤 몸가짐인가에 따라 책방이 바뀝니다. 한국에서 책다운 책이 꾸준히 나온다면, 책손이 책손답게 삶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한국에서 씩씩하고 꿋꿋한 책방 골골샅샅 있다면, 책손이 책손스러운 꿈과 믿음과 사랑을 슬기롭게 돌본다는 뜻입니다. 4346.3.2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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