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몇 사람이 읽어야 할까
[헌책방에서 책읽기 2] 오태석 외 연극인 10인, 《무대 밖의 모놀로그》(고려원,1978)
연극하는 사람들이 연극 아닌 글로 이야기를 풀어 보인다. 왜 연극 아닌 글로 당신 이야기를 펼쳐 보일까. 연극으로는 성이 차지 않을까. 연극으로는 보여줄 수 없는 이야기 있기에 따로 글을 쓸까.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 춤을 춘다. 춤을 추던 사람이 꽃씨를 심는다. 꽃씨를 심던 사람이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던 사람이 시를 쓴다. 시를 쓰던 사람이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 아이를 낳는다. 아이를 낳던 사람이 밥을 짓는다. 밥을 짓던 사람이 글을 쓴다. 글을 쓰던 사람이 노래를 부른다.
삶은 실타래 되어 하나둘 이어진다. 연극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글과 연극이 만나는 대목 있다고 여겨, 새롭게 연극을 하듯 글을 썼겠지. 헌책방 책시렁에서 마주한 책 《무대 밖의 모놀로그》(고려원,1978)를 읽는다. 이 책도 새책방 책시렁에서 사라졌지만, 고려원이라는 출판사도 새책방 언저리에서 사라졌다. 연극하는 전무송 님 옆지기는 이녁한테 “나는 연극배우와 결혼했지, 장사꾼하고 결혼한 것이 아니에요(148쪽).” 하고 말했단다. 문득 내 옆지기를 생각한다. 내 옆지기는 어떤 사람하고 짝을 지어 시골집에서 살아갈까. 하루를 바칠 아름다운 집숲이나 밭뙈기 따로 없고, 그저 시골이기만 이 집에서 어떤 마음 되어 나와 아이들하고 하루를 부대낄까.
연극하는 손숙 님은 “이 연극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는 바로 시였고 가슴을 치는 감동이었다(205쪽).” 하고 말한다. 그렇구나. 연극으로 읊는 말이 시였기에 시와 같은 글을 쓰겠지. 시와 같은 연극이기에 시와 같은 노래를 부르고, 시와 같은 춤을 추며, 시와 같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하루를 보내겠지.
누군가 《무대 밖의 모놀로그》를 애틋하게 여겨, 2013년에 새롭게 내놓을 수 있으리라. 어쩌면 2058년쯤 이 책이 다시 태어날는지 모른다. 그러나 2100년이 되거나 2300년이 되어도 이 책은 다시 태어날 일 없을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는 책 될 수 있고, 헌책방 다니다 보면 이럭저럭 만날 만한 책이 될 수 있다. 반가이 맞아들일 책손이 십만이나 백만쯤 될 수 있고, 살가이 알아보는 책손이 한둘이나 열 몇쯤에서 그칠 수 있다.
책은 몇 사람이 읽어 주어야 할까. 책은 어떻게 곰삭혀야 아름다울까. 책은 사람들한테 어떤 이야기씨앗 남길까. 책은 우리 보금자리에 어떻게 스며드는 이야기밭이 될까. 무대 안에서 꿈을 노래하고 사랑을 속삭이던 열 사람 삶자락 조곤조곤 묻어난 묵은 헌책 하나 쓰다듬는다. 4346.3.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