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어느 분 글을 읽고 댓글을 남기고 싶었으나, 댓글을 쓸 수 없어 방명록에 글을 남기고 나서, 문득 이것저것 떠올라, 그 방명록에 남긴 글에 살을 입혀 글 하나를 적어 보았습니다. 책과 삶과 사랑과 이야기를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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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을 넘어서는 책

 


  종이책을 넘어서려는 전자책이 춤을 춥니다. 책과 얽힌 일을 다루는 중앙정부에서는 앞으로 ‘전자책’을 더 크게 북돋우려고 애씁니다. 중앙정부가 아니더라도, 종이책을 내려놓고 ‘책이야기잔치(북콘서트)’라든지 ‘책방송’을 꾀하는 이들이 있어요. 한 사람 두 사람 저마다 손에 쥐고 읽을 때에는 종이책이라지만, 라디오에서 누군가 책을 읽어 주어도 ‘소리책’이에요. 누군가 종이책을 읽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줄 때에도 ‘말책(이야기책)’이 돼요.


  우리 삶 어느 자리에나 책이 있어요. 나무를 베어 만든 종이책만 책일 수 없어요. 문화학자는 어려운 한자말 써서 ‘구비문학’이라고 하지만, 옛사람은 늘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를 물려주었어요. 종이에 담기는 옛이야기는 모두 입에서 입으로 대물림한 ‘문학’이에요. 곧, 종이책으로 앉히지 않아도 늘 ‘책’이던 이야기요, 이 이야기는 고스란히 삶이에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입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즐거워요. 구름 흐르는 빛을 올려다보며 마음이 트여요. 냇물 소리 듣고 냇물 한 줌 떠 마시면서 온몸이 시원해요. 유채잎 뜯어먹으니 배가 불러요.


  온누리에는 얼마나 많은 ‘책’이 있을까요. 누군가 개구리를 사진으로 찍고, 개구리 한살이를 들여다보고서 글과 사진으로 갈무리해야 책이 되지 않아요. 개구리를 늘 들여다보고, 개구리 노랫소리 즐기며, 개구리하고 논밭에서 뛰놀면 신나는 ‘개구리 책읽기 놀이와 삶’이 돼요. 불교를 다룬 책, 철학을 다룬 책, 인문학자가 주고받은 말 담은 책, 이런 책 저런 책을 읽어야 책이지 않아요. 할머니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김치 담그고 반찬 빚는 솜씨 익힐 때에도 책읽기예요. 아이들과 뒹굴며 함께 놀 때에도 책읽기예요. 한편으로는 책쓰기가 되기도 해요. 밥 한 그릇 지어 식구들과 함께 먹을 때에도 책쓰기가 되고, 아이들한테 자장노래 불러 줄 적에도 책쓰기가 돼요.


  삶이 즐거울 때에 책이 즐겁고, 책이 즐거우면서 삶 또한 즐거웁구나 싶어요.


  여섯 살 된 큰아이한테 오늘 처음으로 ‘외발 샛자전거’를 제 자전거와 자전거수레 사이에 붙이고 면소재지 우체국에 다녀왔어요.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다니다가, 이제 큰아이가 많이 커서 20킬로그램 넘다 보니, 두 아이를 나란히 수레에 못 태우겠더군요.


  일찍 장가간 동무들은 아이들이 어느새 대학생인데, 우리 아이는 큰아이가 여섯 살이랍니다. 그래도 하루하루 늘 들여다보고 함께 복닥이면서, 저 스스로 새롭게 배우고 나눌 수 있어 즐거워요.


  책이라 하면, 나무를 베어 빚은 종이책만 책일 수 없다고 느껴요. 종이책 10만 권을 읽는다 하더라도, 사람책은 거의 안 읽는다면, 사랑스러운 벗책도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푸른 나무와 풀과 꽃으로 이루어진 책 또한 못 읽는다거나, 하늘책 별책 달책 구름책 바람책 흙책 물책 …… 온갖 책들을 골고루 사랑하지 못하면, 얼마나 따분하고 아쉬운 나날이 될까요. 온누리 온갖 책 찬찬히 즐기면서 하루하루 누릴 때에 비로소 오롯이 한 사람 되는구나 싶어요.


  눈이 어두워지면서 글을 읽기 어렵다면, 아름다운 노래 들려주는 소리책이 있어요. 이를테면, 제비라든지 귀뚜라미라든지 풀무치라든지 참새라든지. 참새도 노랫소리 참 곱잖아요.


  즐거운 삶책으로 하루하루 아름다운 이야기 여밀 수 있어요. 고운 봄날 천천히 저물어 저녁 다가옵니다. 밥 맛나게 먹어요. 서로서로 기쁘게 노래하고, 살가운 노래 들으며 밥 맛있게 나눠요. 4346.3.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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